‘물산업’ 물로 보지마세요

2019.12.09 최신호 보기



“전 세계 40억 명이 1년 중 한 달 이상은 물 부족에 시달리고 21억 명은 깨끗한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한다.” 3월 22일 ‘세계 물의 날’을 맞아 유엔(UN)은 ‘2019년 세계 물 보고서’를 공개하고 세계 곳곳에서 물 부족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래에는 물을 두고 국가 간 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는 유엔의 엄중한 경고다. 우리나라는 이제껏 과도한 물 수요량 등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심각한 ‘물 스트레스 국가’인데도 부처마다 관리가 분산돼 정책에 혼선이 오는 등 효율적인 물관리가 어려웠다. 1991년 낙동강 수질 사고 이후 20여 년간 물관리 이원화 원칙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문재인정부는 물관리 일원화로 향후 30년간 총 12조 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추가적인 댐 건설 없이도 연간 약 12억 2000만 톤의 물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세계 수자원 수요만큼 안정적 공급이 어려워지자 물산업이 환경 변화에 따라 급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성장동력이자 환경·신산업 공존이라는 적극적 관점 변화에 공감하고 조성한 국가물산업클러스터를 다녀왔다. 물 관련 핵심기술, 물산업 육성 등의 정책 연구를 시행 중인 한국수자원공사 케이워터연구원 박재영 원장을 만나 빅데이터를 활용해 물순환 전 과정을 한 번에 분석하는 과정에 대해 들었다.

▶국가물산업클러스터는 롯데케미칼 등 27개의 물 관련 기업을 유치했다. | 한국환경공단

대구 국가물산업클러스터를 가다
과거에는 물을 사 먹는 시대가 온다고 했을 때 다들 믿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그런 시대가 왔다. 이제는 물이 산업이 되는 시대다. 현재 지구에 있는 물의 양은 13억 8600만km³. 이 중 97%가 바닷물이고,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담수는 3500만km³에 그친다. 담수의 70%가량이 빙산, 빙하이기 때문에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환경오염 등으로 인류의 물 부족 현상은 심화될 전망이다. 20세기 동안 전 세계 인구는 3.7배 증가한 반면 취수량은 6.7배 늘었으며, 2030년에는 전 세계 수자원 수요의 60% 정도만 안정적 공급이 가능할 전망이다.

 2010~2030년 전 세계 물 분야 투자 10조 달러
이러한 환경 변화에 따라 물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산업의 대표적인 종류는 상수도 사업, 해수 담수화 사업, 수처리 필터다. 투자 전망 또한 밝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2030년 사회기반시설 전망>에 따르면, 2010~2030년 전 세계 물 분야에 대한 투자는 10조 달러로 통신(8조 2000억 달러), 교통(5조 4000억 달러), 전기(4조 2000억 달러)를 앞선다. 한국수출입은행과 미래에셋대우 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 물산업은 석유, 자동차, 전력, 정보기술(IT) 분야에 이어 다섯 번째로 규모가 큰 산업이다. 환경부는 2017년 업무 보고에서 물산업을 친환경차, 생물산업, 기상산업과 함께 4대 환경 신산업으로 분류했다. 아울러 세계 주요 국가들은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중·소규모 영세성과 비효율성을 해소하기 위해 광역화를 추진하며 상하수도 통합으로 운영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기업을 견제하고 자국 기업에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영국은 지자체별 사업구조에서 1973년 10개의 유역 중심 사업구조로 광역화했고, 프랑스도 3만 6000여 곳의 지자체 분절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전문 기업으로 위탁하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물을 보호·규제 대상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성장동력이자 환경·신산업 공존이라는 적극적인 관점 변화에 공감하고 조성한 곳이 국가물산업클러스터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3월 22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세계 물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역대 정부는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한편 재해 예방을 위해 노력해왔다”면서도 “이제 새로운 계획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기존 물산업은 댐·하천·상하수도에서 수도꼭지에 닿는 물순환 분야에 한정됐지만, 최근 스마트 물 관리부터 에너지 분야까지 확대되면서 시장 규모도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현재 물산업 세계시장 규모는 7000억 달러가 넘고 2022년까지 연평균 4% 이상 성장을 보일 것이다. 정부는 기술 경쟁력을 갖춘 물기업의 세계시장 진출을 전략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3월 22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세계 물의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세계 물의 날은 물의 소중함을 알리고 세계 각국의 관심과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유엔이 정한 날이다. | 청와대

세계 최초로 물산업 전주기 지원
국내 최초로 물산업 기술·제품 개발부터 실증시험, 성능 확인, 해외 진출까지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국가물산업클러스터는 2016년 공사를 시작해 2019년 9월 4일 개소했다. 클러스터에는 물 관련 연구개발(R&D) 및 실증화와 제조공장을 포함해 100여 개의 물 관련 기업이 들어설 예정이다. 대구시는 현재 기업 집적단지에 롯데케미칼 등 27개의 물 관련 기업을 유치했다. 대구 달성군 구지면 응암리에 자리한 클러스터를 11월 4일 방문해 실증화 시설을 둘러봤다.
실증화 시설은 개발된 기술 및 제품의 성능 확인을 원하는 물기업과 연구기관 등에서 이용할 수 있다. 물산업클러스터는 네덜란드, 미국에도 있다. 하지만 정수와 재이용, 하수, 폐수 등이 한곳에 모여 물산업 전주기를 지원할 수 있는 시설은 이곳이 세계 최초다. 물산업클러스터 운영기관인 한국환경공단의 이치우 기업홍보부장은 “1만 개 기업을 대상으로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설문조사를 했다. 기술을 개발해도 실증상 적용할 데가 없다고 하더라. 개발이 왜 실패하냐면 나쁜 제품이어서가 아니라 실증화 자체가 안 되는 문제가 있었다. 하수, 폐수 재이용 산업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서도 이런 시설은 없다. 왜 못 갖추었냐 하면, 외국은 인공 처리되기 전의 원수(原水)가 없다. 선진국은 댐 물을 쓰지 않나. 댐 물은 맑아서 정화할 필요가 거의 없다. 반면 낙동강 물은 오염도의 등락 폭이 있다. 홍수 때는 탁도가 높다. 먹는 물을 공급하기 위해 처리 과정이 고도로 높아야 하고, 그런 기술에 대한 실증화 시설을 설치함으로써 인·검증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제품 성능 시험장이 곁에 있기 때문에 이곳에 입주한 기업들은 해외 진출에 날개를 달 수 있다. 이 부장은 “개발도상국에서는 물산업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산업이 발전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먹는 물의 수요가 급증하는 한편 세계 기후변화로 가뭄, 홍수가 나면 물의 관심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선진국들이 물산업을 포함해 사회 기반 산업에 대해 빈곤국에 지원을 한다.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기여도 할 뿐만 아니라 빈곤국에 안전한 물을 공급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물 관련 기술이나 제품을 판매하고 비용은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통해 받을 수 있다. 이윤 창출의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국가물산업클러스터 운영기관인 한국환경공단의 이치우 기업홍보부장이 소규모 정수처리 시설을 설명하고 있다.

동남아에 주요한 국가 주도형 수출 전략
실증화 시설을 거쳐 소규모 정수처리시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은빛의 소규모 정수처리시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500톤 규모의 시설에서 하루 2500명이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있다. 필터를 통해 지하수나 강물의 오염 물질을 걸러낸다. 이 시설은 물산업 관련한 각각의 기업들이 판매하는 제품을 결합한 것이다. 이 부장은 “배관, 밸브, 유량계, 탱크, 계측·측정 장비 등을 부착했다. 국민에게 공급하는 물은 매일 계측하며 이 수치는 모니터링된다. 우리나라가 사물인터넷(IoT) 강국이므로 안전한 물인지 계측해서 개인 휴대폰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오염됐다고 하면 저희가 해외에 알려주는 등 사후관리까지 하려고 한다. 이 시설 한 대가 3억 5000만~5억 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물산업과 관련해서는 국가 주도형 수출이 동남아시아에서 주요한 전략이다. 이 부장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왕족 체제, 당 집권 체제가 많다. 이런 나라에서는 아무리 큰 기업이라 해도 작은 물건을 팔기가 어렵다. 국가 주도형으로 공공기관에서 판로를 개척하면 쉽게 열리는 게 특징이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이라크에서 최근 대구 클러스터를 방문해 자신들의 하수처리장을 신설해달라는 제안을 했다.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인지 최대한 면밀히 판단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물산업클러스터의 핵심 역할을 할 ‘한국물기술인증원’이 11월 26일 개원했다. 대구시는 이날 물산업클러스터 워터캠퍼스에서 물 분야 자재·제품, 정수기 등의 인증에 대한 공정성 확보와 인증 전문성을 높이는 기관인 물기술인증원 개원식을 개최했다. 인증원은 2018년 6월 제정된 ‘물관리 기술 발전 및 물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됐다. 인증원은 수도용 제품의 위생안전인증(KC인증)을 비롯해 물 분야 기술·제품의 성능을 확보하기 위한 인·검증 업무와 연구개발, 물기업 해외진출 지원 등을 수행한다. 대구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실증·검증 시설이 갖춰져 국가물산업클러스터를 통해 미국위생재단(NSF)처럼 인증 자체를 세계적으로 브랜드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과 네덜란드 성공 사례 돋보여
물산업클러스터의 해외 성공 사례 중 하나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물산업 기술 분야의 ‘실리콘밸리’를 목표로 세계 최초로 물산업 기술 육성에 착수한 국가로, ‘메코롯’이라는 수자원 공기업을 중심으로 물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1993년부터 물 전문 벤처캐피털 ‘킨롯’을 설립해 신기술 사업화를 지원해왔으며 2001년부터는 격년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물산업 기술 엑스포 ‘와텍’을 개최한다. 메코롯을 중심으로 한 물산업클러스터를 통해 이스라엘은 현재 350여 개의 중소 벤처기업이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연간 2조 2000억 원 정도의 수출 성과를 내고 있다.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첨단 물산업 기술 분야를 육성해 8000명 이상의 고용 창출을 이루고 있다. 일찍이 이스라엘 정부는 국가 물산업 기술 육성을 위해 메코롯을 공기업으로 그대로 두는 것이 훨씬 가치가 크다고 판단하고 분할·민영화 방침을 철회했다.

또 다른 사례로 네덜란드가 있다. 네덜란드는 수도 회사들의 자유로운 국내 기업활동을 보장하되, 100% 정부 소유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1938년 229개였던 수도 사업자를 지속적으로 통합해 2010년 기준 10개의 지방공사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2003년 네덜란드 북부 프리슬란트주 레이우아르던시에 조성된 ‘워터캠퍼스 레이우아르던’은 유럽 내 대표적인 물산업클러스터다. 워터캠퍼스의 장점은 국가의 전폭적 지원 아래 기술개발 연구를 진행하며,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물기업을 육성하는 세계적 추세에 따라 국가물산업클러스터 또한 중소·벤처기업을 발굴해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글·사진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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