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이 꽃핀 까닭

2019.12.09 공감 최신호 보기

▶KBS

최근 막을 내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4주 연속 화제성 1위를 차지했다. 근래에 보기 드문 수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마지막 회에서는 처음부터 드라마 속에 흩어져 있던 단서들이 모두 완벽하게 매듭지어지면서 많은 시청자의 호평을 받았다. 출연자들도 화제여서 공효진, 강하늘, 이정은이 모두 높은 관심을 받았다. 2019년 지상파 드라마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이 드라마는 멜로와 스릴러, 코미디가 혼합된 스타일로도 화제였다.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옹산이라는 가상 마을을 배경으로 고아 출신 비혼모 동백이와 그녀를 사랑하는 순경 황용식의 멜로드라마에 동백이를 노리는 연쇄살인범 까불이의 이야기가 얽히며 굉장히 기묘한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 <동백꽃 필 무렵>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옹산이라는 마을의 여성들이다. 이들은 여느 한국 드라마에서 볼 수 없던 여성들로 주체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기적이고 편파적이며 누구보다 솔직하다. 이런 지점이 드라마 속 여성들을 ‘여성의 적은 여성’으로 보이게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은 여성들의 모습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옹산의 여자들이 비혼모에 대한 편견을 숨기지 않고, 그럼에도 ‘6년을 부대꼈으면 식구지’라는 논리로 동백이를 지켜나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라서 어떤 작품보다 현실적이었던 셈이다.

편견에서 비롯된 혐오와 싸우는 법
하지만 이 드라마가 올해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이유는 드라마의 면면이 모두 ‘편견에서 비롯된 혐오’와 싸우는 사람들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고아로 자란 비혼모로서 먹고살기 위해 술집을 운영하는 동백이는 자기 정체성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데도 동네 사람, 같은 여성들, 외지인, 심지어 경찰로부터도 편견의 시선을 받는다.
동백이와 함께 지내는 향미 역시 근본을 알 수 없는 여성이라는 편견 속에 살아간다. 이들은 그저 남보다 가난하고 남들과 다른 환경에서 자랐을 뿐인데 그 환경 때문에 사람들에게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다.

여기서 연쇄살인범 까불이의 존재가 중요하다. 드라마에서 까불이의 연쇄살인은 그 방법에는 공통점이 있지만 피해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없었다. ‘까불지 마’라는 메모가 유일한 연결고리이자 단서인 연쇄살인은 사실상 혐오 범죄 그 자체다. 마지막에 범인의 정체와 살인하는 이유가 드러나는데, 핵심은 ‘네 주제에 누굴 동정하냐’는 이유로 연쇄살인을 저질렀다. 작가는 이 살인마에게 특별한 사연을 부여하지 않으면서 그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반사회적인 일인지, 온갖 이유를 들어도 결국 범죄는 범죄일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동백꽃 필 무렵>의 정의란 범죄에 대해 이해받기 전에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드라마의 핵심 주제는 편견과 혐오다. 피해자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 주로 서비스업에 종사하거나 사회적 약자라는 점 등이 드라마 속 연쇄살인을 혐오 범죄로 지목하는 근거다. 물론 여기서 더 중요한 사실은 동백이가 이런 난관을 누구의 도움도 아닌 스스로 헤쳐나간다는 점이다. 황용식이라는 남자 주인공은 그가 앞서서 동백이를 지켜주려 하지만 그때마다 위기를 극복하거나 자신을 향한 편견과 맞서 싸우는 것은 동백이 자신이었다. 황용식은 결과적으로 동백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를 응원하고 믿는 역할을 하며, 오로지 동백이가 자신의 서사 주인공이 되는 것이 <동백꽃 필 무렵>의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이 드라마의 카타르시스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 여성이 성장하는 이야기 혹은 각성하며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는 이야기, 그 과정에서 동료를 찾는 이야기가 바로 <동백꽃 필 무렵>이 거둔 성취다. 요컨대 우리는 여기서 혐오와 싸우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드라마 속 동백이, 현실의 동백이
하지만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드라마에서 동백이는 든든한 ‘언니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편견과 혐오에 맞서며 생존하지만, 현실에서 여성들은 자신을 향한 혐오를 버티고 버티다 결국 죽음을 택한다. 설리와 구하라의 사례가 상징적으로 이해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 때문이다. 혐오는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이고, 이 리얼리티(사실성)는 이야기보다 훨씬 강력하고 교묘하게 일상에 존재한다. 드라마에서 동백이는 사랑받지만 현실의 동백이는 사랑받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그들을 향한 혐오에 맞서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현실에서는 그 당연한 일조차 당사자 스스로가 그럴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고아면 나대지 않는다, 비혼모라면 적어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가난하니까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기 욕망을 드러내면 안 된다 등등. 이런 게 바로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동백꽃 필 무렵>의 높은 시청률과 사회적 반향은 오히려 다른 교훈을 찾게 한다. 우리는 외부의 편견과 혐오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혐오와 편견에 맞서야 한다. 동백이가 자기 자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는 그 자신의 변화 덕분이기도 했지만, 주변인들의 성찰 때문이기도 했다. 자기를 돌아보고 내면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연대할 수 있다. 이 연대로 우리는 비로소 함께 살아볼 만한 여지를 얻는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공동체는 더 많은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에 없던 설정과 방식으로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에서 뭔가를 배워야 한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차우진_ 음악평론가. 미디어 환경과 문화 수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한국의 인디 레이블> 등의 책을 썼고, 유료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서 <음악 산업, 판이 달라진다> 리포트를 발행했다. 현재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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