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회포를 풀고 싶은데, 주머니에는 1만원짜리 한 장밖에 없다. 어디를 가야 할까. 서울 광장시장에 있는 박가네 빈대떡에 가면 1만원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박가네 빈대떡은 2002년 광장시장에 처음 자리를 잡은 이후 10년째 빈대떡 한 장에 ‘4천원’이란 가격을 고수하고 있다. 막걸리와 소주의 메뉴가격이 한병당 3천원인 점을 감안해서 4천원으로 정했다. 막걸리 두 병에 빈대떡 한 장이면 딱 만원이다.
박금순 사장은 “광장시장을 찾는 어르신들은 경로우대권으로 지하철을 이용하시니, 단돈 만원만 있으면 빈대떡과 술, 시장 나들이가 가능하도록 가격을 정했다”고 했다. 가게 안에는 혼자 혹은 둘이서 빈대떡을 앞에 두고 술잔을 기울이는 노인분들이 많았다.
서울 광장시장에 있는 ‘박가네 빈대떡’의 박금순 사장이 빈대떡을 부치고 있다.
10년 동안 빈대떡 가격을 유지해 온 비결은 ‘제철에 재료를 미리 사두는 것’이다. 빈대떡의 주재료는 배추, 양파, 녹두다. 이 재료를 제철에 현금으로 대량 구입해 대형 냉장고에 저장해 놓고 쓰는 방법으로 원가를 낮췄다.
실내와 노점 두 곳에서 손님을 맞는데, 노점에서는 주로 빈대떡이 팔린다. 노점의 하루 평균 매출은 2백50만원에서 3백만원이다.
박 사장은 “보통 전통시장에는 싼 맛으로 오시지 않느냐”며 “이제는 채산성이 맞지 않지만 오랜 단골들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입소문과 언론 소개를 통해 알려지면서 외국인도 많이 찾는다. 손님 10명 중 반 정도가 외국인일 경우도 있다고 한다.
찾아가는 길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 5가역 하차 후 8번출구로 나와 직진. 왼쪽에 보이는 광장시장으로 20미터 들어가면 나온다. | 문의 ☎02-2267-0614
부산 장전상가시장의 터줏집도 저렴한 가격과 푸짐한 인심으로 인기를 얻은 점포다. 돼지국밥 한그릇에 4천원이다. 추가로 국과 밥, 반찬은 무한 제공된다. 1998년 문을 열 당시부터 지켜온 원칙이다. 낮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정희영 사장은 “많이 파는 것”이라고 했다. 대학가 앞에서 오랜 시간 ‘많이 팔기’ 위해서는 음식 맛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터줏집은 아무리 물가가 올라도 돼지사골을 이용해 돼지국밥 국물을 우린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부산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국밥집 중 하나였던 터줏집이 부산을 넘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지난 2006년부터다. 방송의 식당 소개 프로그램에 소개되더니 여행 잡지 등 각종 매체에 소개됐고, 급기야는 후지 TV 등 일본 매체에도 소개됐다. 지금은 지도를 들고 찾아오는 일본 여행객과 부산대에서 유학 중인 중국인 학생 등 외국인 손님의 비중이 만만치 않다.
찾아가는 길 부산 지하철 1호선 장전역에서 걸어서 4분 거리. 장전상가시장 입구
문의 ☎051-581-1578
김해 동상시장의 유성식육점은 아예 외국인 특화 마케팅으로 성공을 거둔 점포다. 오경란 사장은 베트남어를 비롯해 중국어,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손님을 맞는다.
오 사장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홍콩, 태국, 캄보디아 등 각 나라의 전통시장을 수시로 다녀왔다”고 했다. 나라별로 전통시장에서 어떤 부위의 고기가 잘 팔리고 얼마에 팔리는지 조사하고 나서,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점포 운영에 적용했다.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돼지 간, 염통, 엉덩잇살 등의 부위를 싸게 팔기 시작한 것이 그 예다. 한국인이 잘 안 먹는 돼지기름, 소기름은 아예 무료로 준다. 알음알음으로 소문이 퍼져 이제는 가게에서 두 시간 거리 떨어진 곳에서도 손님이 찾아온다. 혼자 사는 근로자도 소량 단위로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천원 단위로 포장해 제품을 파는 것이 특징이다.
오 사장은 “단순히 장사를 하는 것만이 아니라 손님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함께 잘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추운 날씨에 슬리퍼를 신고 온 외국인 근로자를 보면 운동화를 내어주고, 비를 맞고 오면 우산도 내어주는 등 진심으로 다가서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한다. 요즘은 점포 매출의 90퍼센트가 외국인 손님에게서 나온다. 오 사장은 “시장경영진흥원에서 연 워크숍 등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여러 가지를 배운 것이 아주 큰 도움이 됐다”며 “원하는 상인들이 있다면 지금까지 쌓은 노하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찾아가는 길 김해시 동상동 김해 동상시장 입구에서 7번째 가게.
문의 ☎055-332-3592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성공을 거둔 가게도 있다. 목포 종합수산시장의 해양수산이다. 홍어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점포다. 김하경 사장은 시장경영진흥원에서 실시하는 상인정보화 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들으며 인터넷 쇼핑몰운영 노하우를 익혔다. 2백만원을 들여 사이트도 구축했지만, 문제는 고객들의 인식이었다.
사람들이 최하 2만원대부터 비싸게는 50만원대까지 하는 홍어를 개인 사이트에서 구매하는 것을 꺼린다는 걸 알게 된 김 사장은 에스크로 서비스를 도입했다. 에스크로 서비스는 구매자가 낸 거래대금을 금융기관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 일단 맡기고, 물품이 배송됐는지 확인하고 나서 대금을 판매자에게 지불하는 제도다. 사기 피해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그 결과 현재 해양수산의 매출 중 90퍼센트가 인터넷 쇼핑몰(www.honga.co.kr)과 전화주문을 통한 판매분이다.
2005년 홈페이지 개설 이후 전국 곳곳에 천명이 넘는 단골들이 확보됐지만, 요즘도 인터넷을 통한 홍보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김사장은 “홍보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품질”이라며 “한국에서 제일 질 좋은 홍어를 파는 쇼핑몰이 목표”라고 했다.
찾아가는 길 목포시 동명동 동명4거리 부근에 있는 종합수산시장 II 라인 내 위치
문의 ☎061-243-3793
글·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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