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원은 드라마 <더 킹 투하츠>에선 가상의 입헌군주국인 남한의 국왕과 결혼하는 북한 특수부대 여성장교 김항아 역을 맡아 남남북녀(南男北女) 로맨스의 주인공이 됐고, 영화 <코리아> 속에선 대한민국 체육사의 상징인 탁구선수 현정화 역을 맡아 남북 스포츠 단일팀의 대표선수로 이념을 넘어선 우정을 보여준다.
톱스타가 비슷한 시기에 관객과 시청자를 만나는 작품 2편에서 남측과 북측 여성을 동시에 연기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코리아>는 분단 후 남북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결성한 탁구남북단일팀이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 대회 여자 단체전에서 중국을 누르고 우승한 역사적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에선 하지원이 현정화를, 배두나가 당시 북측 대표선수인 리분희 역할을 맡았다. 대회 당시 현정화와 리분희는 여자탁구 단체전 결승에서 복식조로 출전, 중국을 누르고 ‘코리아’의 역사적인 우승을 이끌어 냈다.
남북의 정치논리로 급작스럽게 단일팀이 결성되고 남북 선수들이 어색하고 험난했던 신경전 끝에 단 46일 만에 코리아가 중국의 거대한 벽을 넘어 기적의 우승을 일궈 내기까지의 과정을 하지원과 배두나는 빼어나게 이끌었다. 홀로는 넘지 못했던 거대한 산을 남북이 힘을 합쳐 넘었다는 통일과 승리의 드라마를 완성도 있게 그려낸 <코리아>는 관객들의 적지 않은 눈물을 자아내며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원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부산사투리와 표준어, 북한말을 오가며 언어로나마 분단의 장벽을 넘었다. 이쯤 되면 하지원은 ‘민족화해의 상징’ ‘통일의 꽃’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일 없습네다.” “지금 남조선 동지래 절 이케 생각하디요? 빨갱이년이 분위기 맞추자, 잘도 꽝포(거짓말) 치누나 생각하디요?” 등 드라마에서 장교 김항아로서 북한말을 거침없이 구사하던 하지원은 영화에선 부산에서 태어난 현정화로서 경상도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극중 고향에서 부모님과 함께하는 장면에선 능숙하게 부산사투리를 쓰다가 국가대표로 소집돼 북한 선수들과 고락을 함께할 때는 또박또박한 표준말로 남북 단일팀의 중심이 된다.
드라마 속에서 하지원이 쓰던 북한말은 영화에선 리분희 역을 맡은 배두나의 몫이 됐다. 배두나는 흔들림 없는 카리스마와 탁월한 존재감을 표정과 몸짓, 냉철한 억양의 북한말에 담아 내며 조국(북한)에 대한 충성심과 탁구에 대한 열정, 분단의 장벽을 넘어선 현정화와의 우정을 표현해 냈다.
이들에게 탁구를 지도한 현정화 한국마사회 감독은 “배우의 개성과 연기 스타일을 보자면 하지원은 안정과 균형을 지향하는 반면 배두나는 ‘전진 속공형’”이라고 말했다.
하지원은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분단의 역설과 비극, 그리고 통일의 과제를 표현한다. <더 킹 투하츠>에서 남한의 국왕 이재하(이승기)는 김항아에게 말한다. “너네 못살잖아. 가난하잖아. 그런데 자존심만 세우면 어떡하라고?”
김항아의 대답엔 날이 섰다. “(북으로) 돌아가겠슴다. 여기(남)선 돈, 돈, 헛짓만 하고 못살겠슴다. 베를린장벽 무너지는 거 보면서 설레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남북이 하나 돼 뛰는 거만 봐도 가슴이 뛰었는데….”
하지원은 드라마에서 받았던 비슷한 질문을 영화에선 북의 리분희에게 한다. 극중 현정화는 리분희와 둘만 있는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하는 게 어떠냐, 남으로 오면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으냐”며 완곡하게 탈북, 남으로의 망명을 권한다. 정치 논리보다는 오로지 한가지 목표를 위해 땀을 흘린 동료로서의 우정과 안타까움이 깊이 밴 말이었지만 리분희는 정색하고 되묻는다. “더 잘사는 곳이 좋다면 정화 동무래는 미국으로 가야 하디 않겠슴까?”
하지원은 영화를 위해 지난해 2월부터 연말까지 현정화 감독과 붙어 지냈고, 마음은 ‘1991년의 일본 지바’로 돌아가 살았다. 촬영전 수개월간 탁구장에서 현 감독에게 탁구 수업을 받았다. 1991년 대회 당시의 모습도 기록필름과 방송자료 화면 등을 수없이 봤다. 하지원은 “현정화 감독님이 아주 여성적일 줄 알았는데 처음 봤을 때는 아주 정중하고 딱딱해 보였다. 경직된 자세로 악수를 청했고, 우리 첫 만남은 군인 대 군인 같았다”며 현정화 감독과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서로를 ‘감독님’ ‘지원씨’로 깍듯이 불렀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둘은 체육관에서 늘 붙어 다니고 사석에서도 술잔을 기울이며 속내를 털어놓는 “서로 좋아 죽고 못 사는 언니 동생 사이”가 됐다.
하지원은 영화 촬영을 끝낸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리분희 선수보다 현정화 감독님이 오히려 한 살 어리거든요. 그런데도 리선수를 감싸 안고 눈물을 닦아 주는 모습을 봤어요. 왜 현정화인가, 왜 현정화라는 한 사람에게 국민들이 열광했나 알겠더라고요.
현정화는 탁구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는 큰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현정화에 대한 느낌을 말했다.
그는 “제가 당시의 현정화 선수를 현실 그대로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자는 게 영화의 목적이 아니었다”며 “통일의 염원을 담은 국민적인 감동의 역사 속 한 페이지를 당대를 경험하고 기억하는 국민들뿐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 진정성 있게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글·이형석 (헤럴드경제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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