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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0일 대전광역시 중구 중촌동 중촌마을어린이도서관 ‘짜장(‘참’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에는 수박 냄새가 가득했다. ‘이정록 시인과 동시로 놀자’ 행사에 참가한 아이들은 이 시인과 수박화채를 나눠 먹고 수박에 대한 동시를 지었다. 평소 책보다는 뛰노는 것을 더 좋아했던 개구쟁이들도 이날은 진지하게 동시 짓는 일에 빠져들었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 시인은 2001년 김수영문학상, 2002년 김달진문학상을 받았으며 시집 <정말> <제비꽃 여인숙>, 동화책 <귀신골 송사리> <십원짜리 똥탑>,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 등을 냈다. 그의 다섯 번째 시집 <의자>는 한국도서관협회의 2006년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됐다.
충남 홍성이 고향인 이 시인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구수한 사투리를 섞어 들려주고, 동시를 지어 보여주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격려했다. 아이들은 계속 그의 주위를 맴돌며 “아저씨, 언제 또 와요?” 하고 물었고, 이 시인은 다음에 꼭 다시 도서관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인과 아이들의 만남은 한국도서관협회 문학나눔추진반이 우수문학도서 보급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9월의 모니터링 문학활동 프로그램이다. 우수문학도서 작가들이 지역 도서관이나 복지관, 청소년수련관 등을 찾아가 독자를 만나는 것이다. 독자는 책을 읽은 소감이나 작가에게 궁금했던 점을 묻고 작가는 글쓰기를 지도하거나 문학작품을 낭송한다. 또 문학 토론을 벌이거나 문학영상을 상영하기도 한다.
변변한 문화시설이 없는 곳의 형편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에게 도서관은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의 작은도서관이 좋은 책을 확보하는 건 쉽지 않은 일. 한국도서관협회는 매 분기 발간되는 문학도서 중 25종의 우수도서를 선정해 1종당 2천 부씩 구입해 전국 2천3백여 곳의 마을문고, 대안학교, 작은도서관, 사회복지시설, 교도소 등에 보내는 우수문학도서 보급사업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 계속돼온 이 사업은 소외계층의 정서 함양과 문화소외 현상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모니터링 문학활동 프로그램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도서관을 독자와 작가가 직접 만나 문학을 이해하고 즐기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5월부터 10월까지 매월 전국 14곳의 도서관, 복지관, 청소년수련관, 아동센터 등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지역에서 소박하지만 자발적인 문학 향유활동이 이뤄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실제로 지난해 프로그램이 시행됐던 충남 공주시 봉현방과후공부방 학생들은 초대작가였던 소설가 전성태 씨의 단편소설을 촌극으로 만들어 공연했다. 전 씨는 “아이들 특유의 쑥스러움과 당돌함 때문에 더 자연스럽고 친근한 공연이었다”며 “잃어버린 유년기로 나를 이끌었던 연극”이라고 감탄했다.
모니터링 문학활동 프로그램은 대도시에서 열리는 문학행사가 주로 마케팅 차원에서 진행돼 지역과 무관한 유명작가를 초대하는 것과는 달리 지역 작가가 이웃의 독자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소설가 이순원 씨는 “대형서점에서 열리는 작가와의 대화는 책 홍보에만 초점을 맞추는 데 비해 문학나눔 모니터링 문학활동 프로그램은 지역주민들과 삶과 문학에 대해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혼자 작업을 할 때는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알게 한다”고 평가했다.
이은철 한국도서관협회 회장은 “지역 도서관이 책만 보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문학의 거점 공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고 한다”며 “지역 문인들이 같은 지역 독자들을 마주함으로써 도서관이 지역문학 소통의 장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이혜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