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이 11월 24일 인천에서 열린 상주상무와 경기에서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다.
“기적은 반드시 이루어진다.”(인천 축구팬)
“포기하지 않습니다. 완치할게요.”(유상철 감독)
유상철(48) 인천유나이티드 FC 감독의 췌장암 투병을 바라보는 축구팬들의 마음은 딱 하나다. “제발 쾌유하세요.” 그런 간절함은 유 감독과 축구팬들의 진한 인연에서 나온다. 특히 선수 시절인 1998 프랑스월드컵과 2002 한일월드컵에서 국가대표로 맹활약한 그의 모습은 팬들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그라운드 위에서 그는 삼국지의 ‘유비’로 불릴 만큼 탄탄한 체격으로 지칠 줄 모르고 뛰었다. 멀티플레이어(만능선수)라는 용어가 처음 국내에서 쓰이기 시작했을 때 그는 곧바로 새 별칭의 주인공이 됐다. 수비에서 미드필더, 공격수까지 그는 모든 영역을 장악할 수 있는 재능을 갖췄다.
1988 프랑스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벨기에전에서는 붕대를 감고 뛴 이임생(현 수원삼성블루윙즈 감독)과 함께 그는 투혼을 상징하는 선수였다. 멕시코와 네덜란드에 대패한 뒤 차범근 감독마저 경질된 상태의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일거에 털어내듯, 그는 벨기에전에서 하석주의 프리킥을 골문 앞 슬라이딩으로 연결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쇄도한 그의 재치 있는 플레이의 감흥은 아직도 선명하다.
늘 중하위 팀 맡아 실패와 좌절로 노하우 쌓아
2002 한일월드컵 때는 더 진화했다. 조별리그 첫 경기 폴란드전에서 황선홍의 선제골이 터졌고, 상대의 반격에 조마조마한 순간 중거리포 추가골로 한국이 2-0 압승을 거둘 수 있게 해법을 준 이가 그였다. 둘의 활약으로 한국은 월드컵 출전 사상 처음으로 1승의 테이프를 끊었다. 골 세리머니에서 보여준 밝은 미소는 유상철을 기억하는 팬들의 뇌리에 깊게 각인됐다.
1994년 울산현대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월드컵을 전후해 일본 J리그에서 활약하며 일본팬도 많이 확보했던 유상철. 그는 2006년 울산에서 프로 은퇴를 한 이후 지도자의 길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고교팀에서도 몸을 담았고, 이어 대전시티즌과 울산대, 전남드래곤즈 등 프로와 대학팀에서 사령탑을 역임했다.
하지만 그의 지도자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하나라도 잘나가는 팀을 맡았던 게 아니었다. 좋은 선수들이 즐비한 명문팀은 더더욱 아니었다. 대부분 중하위권의 어려운 팀을 맡았고, 그 속에서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경험과 노하우를 쌓았다.
올해 5월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도 팀은 하위권이었다. 재정비가 시급한 팀이었다. 유 감독은 부임 이후 정신적으로 팀을 단합시키는 데 전력했다. 하지만 팀을 한순간에 변모시킬 수는 없다.
유 감독은 경기장 내에서 늘 서서 선수들을 독려했다. 화를 내거나 선수들을 다그치는 모습은 없었다. 조심스러울 정도로 차분하게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했고, 이런 가운데 선수들은 점점 하나가 됐다. 7월 공격수 남준재를 제주유나이티드로 보내고, 김호남을 영입하는 맞트레이드로 잠시 파장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큰 틀에서 팀 전력 보강을 위한 선택이었다. 남준재를 영입한 제주는 K리그1 최하위가 확정됐지만, 인천은 나름대로 김호남 효과를 봤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등을 막기 위한 그의 노력이 더해질수록, 사령탑으로 느끼는 스트레스는 커졌을 것이다. 10월 들어서면서 강등권 팀의 구도가 구체화됐다. 이런 와중에 10월 19일 성남 원정 경기에서 인천이 승리(1-0)한 것은 터닝 포인트였다. 유 감독은 선수단과 얼싸안고 진한 포옹을 했는데, 그것은 강등권 탈출의 의욕일 뿐 아니라 “병마에 꺾이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1월 19일. 유 감독이 처음 췌장암 4기의 병환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여러 말과 소문이 무성한 저의 건강 상태에 대해 이제는 직접 팬 여러분께 말씀을 드려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 선수들, 스태프와 함께 그라운드 안에서 어울리며 긍정의 힘을 받고자 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 이 말을 전하면서 유 감독은 속으로 울었을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인천 구단 관계자나 선수들은 유 감독을 환자로 대하지 않았다. 유 감독도 그런 배려를 바라지 않았다. 다만 “어떤 일이 있어도 선수들과 함께하겠다”는 감독의 선언은 선수들의 잔류 결의를 더욱 강화했다.
췌장암 사실 발표 뒤 이뤄진 11월 24일 상주상무와 안방 경기에서 인천 선수들은 불굴의 의지로 완승(2-0)을 거뒀다. 몬테네그로 대표팀에 차출됐다가 돌아온 무고사는 지친 기색 없이 첫 골을 어시스트했고, 문창진은 선제골 뒤 유 감독을 향해 달려갔다. 시즌 적응에 애를 먹은 케힌데도 막판 추가골로 데뷔골을 쏘면서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축구 팬들이 11월 23일 유 감독의 쾌유를 기원하며 응원을 펼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여유와 미소 잃지 않고 “포기 않겠다”
인천 사령탑 부임 이래 안방에서 승리하지 못해 부담을 느꼈던 유 감독은 마지막 홈경기에서 부채감을 털어낼 수 있었다. 문창진의 골에도 케힌데를 투입해 공격적으로 나선 유 감독의 용병술도 빛났다. 슛 기회가 무산될 땐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큰 소리를 치기보다는 코치를 통해 뜻을 전달한 유 감독은 결국 골이 터지자 격하게 기뻐했다.
팬들은 유상철 감독의 쾌유를 바라고 있다. 그것은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경기장에서 인천을 봐주는 일은 없다. 상대팀 감독과 선수들은 유 감독을 존중하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뛴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는 유 감독은 늘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선수 때도 힘든 시절이 있었지만 성장했다. 포기하지 않겠다. 같은 처지인 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완치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적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팬들의 소망이 축구장에서는 ‘생존왕’ 인천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경기장 밖에서는 유 감독의 회복으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다. 2019년 막판 K리그 무대는 유상철 감독을 향한 축구팬들의 훈훈한 마음으로 꽉 찼다.
김창금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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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