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휴대전화를 접으려 하는걸까

2019.12.03 공감 최신호 보기


▶가구처럼 커다란 1940년대 라디오

폴더블(접히는) 스마트폰이 쏟아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왜 그렇게까지 고생해서 굳이 스마트폰을 접으려고 하는 걸까? 얼마 전 나는 엘지 스마트폰을 샀는데, 서비스로 스마트폰 크기와 똑같은 디스플레이 하나를 끼워주었다. 두 개를 연결하면 두 배로 큰 화면을 볼 수 있다. 두 배로 커진 스크린은 왜 필요한 걸까? 먼저 모니터 두 개를 연결해서 컴퓨터 작업을 하는 전문가가 떠올랐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엑셀 병정’이라 불린 재무관리 직원들이 주로 이렇게 듀얼 스크린을 이용했다. 최근에는 디자이너들도 이런 식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니까 일할 때 윈도우를 잔뜩 띄워야 하는 업무들이 듀얼 스크린을 필요로 한다.

▶최초의 대량생산 소형 트랜지스터라디오 리젠시 TR-1

하지만 전문가들만 그런가? 컴퓨터로 글을 쓰는 나만 해도 예전보다 점점 많은 윈도우를 켜놓고 작업을 하게 된다. 특히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수많은 탭을 필요로 한다. 이럴 때 모니터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또 글을 쓰면서 동시에 아이튠즈를 실행시켜 노래를 듣거나 유튜브를 켜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듣기도 한다. 바로 그거다.
현대인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지 못한다. 동시다발적으로 뭔가를 같이 해야 한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은, 과거로 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심심하고 공허하고 불안하다. 내 아내는 설거지를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본다. 내 아들은 TV로 손흥민 경기를 보면서 스마트폰으로 또 뭔가를 본다. 내가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보면, 학생들은 강의를 듣기도 하고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뭐라 지적받을 일이지만, 나는 현대인의 특징이라고 여긴다.

▶1501년에 알두스 마누티우스가 출간한 포켓북. 그는 작은 판형에 더 많은 글자를 넣으려고 이탤릭체를 고안했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탑재된 유전자
엘지 듀얼폰 광고를 보니 딱 멀티플한(다중·복합적) 현대인을 겨냥했음을 보여준다. “영상통화 하면서 길 찾고, 드라마 보면서 쇼핑하고, 문자하면서 송금하고, 게임하면서 게임 공략도 보고….”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신기한 맛에 몇 번 듀얼 스크린을 이용해보다 때려치웠다. 내가 듀얼 스크린을 사용한 시간은 30분도 안 된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에게 이건 아무 일도 아닐 것이다. 광고에서 말한 것처럼 “한번 써보면 빠지고 말”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또 곰곰이 따져보니 사람은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하는 게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 것을 참지 못한다. 늘 뭔가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은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던 초기 인류의 자연환경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사바나의 초원이나 열대 밀림에서 연약한 원시 인간은 때로는 자신을 공격하려고 웅크린 포식자, 때로는 몸을 숨긴 사냥감을 찾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동했을 것이다. 그렇게 위험으로 가득한 자연환경, 동시에 목숨을 유지시켜주는 자원과 가능성으로 가득한 자연환경 속에서 한가롭게 긴장을 늦추고 멍을 때린 인간은 반드시 목숨을 잃고 말았을 것이고, 그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인간은 한 번에 여러 가지 일, 그 첫 번째가 이동을 하면서 동시에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간절하게 찾았던, 즉 긴장하고 상당한 에너지를 썼던 유전자의 개체인 셈이다.

▶엘지 V50 듀얼 스크린

오늘날 그런 위험한 자연환경은 사라졌다. 인류는 문명을 일구며 자연으로부터 삶의 환경을 격리해 안전을 확보했다. 하지만 그 안전한 환경에 인간의 유전자는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다. 여전히 원시인류와 똑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동하면서 그토록 복잡한 생각을 하고 과거의 일로 걱정하고 숙제를 풀려고 끊임없이 생각한다.
많은 창작자들이 이동 중에, 즉 산책을 하거나 운전을 하다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말한다. 원시인류가 이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먹잇감(움직이는 동물뿐 아니라 식물을 포함해)을 찾았듯, 현대인도 그들에게 먹잇감이라 할 수 있는 어떤 이익(정보가 되는 것 또는 재미를 주는 것)을 찾으려 애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은 낭비라는 죄의식이 호모 사피엔스에게 탑재된 듯하다.

인류는 이동 중에 상당한 에너지를 쓰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일을 하든 즐기든 말이다. 이런 인류의 본성에 맞춘 이동식 오락거리는 꾸준하게 발명돼왔다. 첫 번째는 책이다. 중세시대까지 책은 성물에 가까운 엄청난 고가의 물건이고 절대로 움직여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 시절 책은 굉장히 크고 두꺼웠다. 인쇄술이 발명된 뒤 이탈리아의 인문학자이자 인쇄업자인 알두스 마누티우스는 최초로 포켓북을 만들었다. 그는 이동 중에도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라디오도 처음에는 엄청나게 컸다. 과거의 책이 그랬듯 라디오도 처음에는 고가의 물건이었고 집안의 자랑거리였다. 따라서 기능과 무관하게 커다란 고급 가구처럼 디자인되었다. 그러다 기술이 발전해 라디오가 대중화되자 1960년대에는 이동하면서 들을 수 있는 소형 트랜지스터라디오가 생산되었다.

▶삼성이 공개한 폴더블폰

트랜지스터라디오, 워크맨, 아이폰…
1979년에 소니 워크맨이 나왔을 때 전 세계를 강타한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이동하면서 뭔가 이익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성에 딱 들어맞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소니 워크맨은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었다고 평가받을 만큼 문화적인 영향력이 막강했다. 2007년에 출시된 아이폰은 워크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문화적 충격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컴퓨터와 TV, 전화기를 들고 다닐 수 있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동 중에 즐기는 것뿐 아니라 일도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가진 어떤 본성을 정확히 따른다. 이동 중에도 집이나 사무실에 있을 때처럼 똑같이 일하고 즐기려는 본성이다. 스마트폰은 움직이는 사무실, 움직이는 극장이 되려고 한다. 그러니 작은 모니터로는 불만족이다. 따라서 그토록 고생을 하면서 폴더블 스마트폰이 나온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미래에는 신문처럼 커질 수 있는 스마트폰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지 않을까?

 김신_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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