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은 왜 ‘4차 산업혁명’에 열중하고 있나?

2019.11.25 최신호 보기

‘4차 산업혁명’이 세계 경제의 화두가 되기 전부터 동남아시아에서는 4차 산업혁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유니콘기업이 여럿 탄생했다. 말레이시아를 기반으로 한 ‘그랩(Grab)’과 인도네시아를 기반으로 한 ‘고젝(Gojek)’이 대표적이다. 두 기업은 2010년대 초반에 창업한 이후 불과 10년이 되지 않아 기업 가치가 10조 원에 이르고 있다. ‘그랩’은 동남아 8개국에서 서비스 중인데 우버(Uber)의 동남아 사업부문을 인수했고 소프트뱅크, 알리바바, 디디추싱, 토요타, 현대자동차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모바일 결제 서비스인 ‘그랩 페이’를 출시하면서 핀테크 사업에도 나섰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2015년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회장이 처음 사용했다. 이듬해 1월 다보스포럼은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열렸고, 그해 태국은 ‘태국 4.0’을 발표했다. 동남아의 제조업 강국인 태국의 경제를 하이테크 고부가가치 산업 위주로 재편해서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겠다는 전략이다. 인도네시아도 2018년 ‘산업 4.0 로드맵’을 발표했고, 싱가포르도 ‘스마트 국가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있다.

2017년 아시아개발은행과 세계경제포럼은 ‘아세안(ASEAN) 4.0: 역내 경제통합에서 4차 산업혁명은 무엇을 뜻하는가’라는 제목의 백서를 냈다. 백서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혁신적 신기술로 비약(leapfrogging)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겠지만 기존 ‘제조업 생산기지(Factory Asia)’의 종말이 오고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도 예상하고 있다. 백서는 4차 산업혁명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조언한다. 아세안(정부)은 ‘운영체제(operating system)’로서 역할만 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앱 개발자’의 역할을 수행하라는 것이다.
태국은 올해 초 아세안 의장국을 맡으면서 아세안 전체를 대상으로 시행할 경제분야 13개 성과사업을 발표했다. 그중 5개 사업이 4차 산업혁명에 관한 것인데 4개 사업을 벌써 완료했다. 9월에는 방콕에서 아세안 10개국 경제장관들이 모였는데 그 결과를 담은 총 8페이지의 공동 언론성명 가운데 ‘4차 산업혁명(4IR)’ 용어가 아홉 번 등장한다. 아세안·동아시아경제연구소(ERIA)가 최근 ‘아세안 비전 2040’ 보고서를 냈는데 여기서도 디지털 혁신과 4차 산업혁명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현지에서는 ‘그랩’ ‘고젝’처럼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기업들을 다른 선진국이 아닌 아세안이 배출한 것에 고무된 분위기다. 동남아는 디지털 기술에 친숙한 젊은 인구 비중이 높아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지금까지는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다국적 기업들의 생산기지 역할을 해왔지만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노동력을 기계가 대체하면 노동집약적인 현재의 산업구조는 계속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위기의식도 아세안이 4차 산업혁명에 열중하는 이유 중 하나다.
아세안은 4차 산업혁명을 통한 비약을 기대하면서 바로 우리나라의 극적인 발전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앞두고 우리가 제안한 ‘한·아세안 표준화 공동연구센터’와 ‘한·아세안 산업혁신기구’를 아세안 국가들이 열렬히 환영하는 것도 4차 산업혁명을 향한 아세안 국가들의 목마름에 우리가 적시에 화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별정상회의와 함께 열리는 ‘한·아세안 CEO 서밋’ ‘한·아세안 스타트업 서밋’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향한 도전을 함께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오 주 아세안 대한민국 대표부 상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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