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노동 ‘노동자성’, 사회적 대화가 해법

2019.11.25 최신호 보기

칼 마르크스는 170여 년 전인 19세기 중반 급격한 산업혁명의 진전 속에 결코 흔들릴 것 같지 않던 중세 봉건제가 붕괴하는 과정을 “모든 견고한 것들은 공기 중으로 녹아내리고…”라고 묘사한 바 있다. 농업을 중심으로 천년 이상 지속돼왔던 봉건적 사회경제 시스템이 혁명적 산업자본의 물결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170여 년 전 ‘자본의 혁명성’은 그 후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늘날 더 강화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170여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과학기술 발달과 경제적 교역의 전 지구적 확산 속에 무엇보다 농업에서 제조업을 넘어 압도적 비중의 서비스업 중심적 산업구조 변화가 여전히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압축적 고도성장 가운데 진행된 우리나라의 ‘경제의 서비스화(tertialization)’ 현상은 특히 뚜렷하다.

예컨대 1963년 농업 부문의 종사자 수는 무려 63.0%를 차지한 반면 제조업은 7.9%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의 경우 농업 부문은 불과 27년 만에 17.9%로 크게 준 반면 제조업은 27.2%, 서비스업도 29.1%에서 54.9%로 증가해 1차 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완벽히 탈피하고 있다. 또한 2017년 꾸준하게 진행된 경제의 서비스화는 제조업 부문의 탈산업화의 힘이 더해져 농림어업 부문은 이제 4.8%에 그치고 제조업도 16.9%로 하락하면서 무려 78.4%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산업구조로 재편된 것이다. 이러한 경제의 서비스화는 생산성이 정체적 성격을 띠는 서비스업에서 양적으로 막대한 고용을 지속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가, 동시에 서비스업 고용의 질, 즉 평등의 문제를 조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중요한 사회정책적 과제를 던졌다.

78.4%가 서비스업 종사로 산업 구조 재편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우리 노동문제의 핵심 쟁점 중 하나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고)의 직종(산재보험법상 보험설계사, 레미콘 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택배 기사, 퀵서비스 기사, 대출 모집인, 신용카드회원 모집인, 대리운전)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발생하면서 고용 형태의 다양성과 복잡성, 취약성을 보여준다. 플랫폼 노동은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고용 관계가 발생하는 새롭게 등장한 고용 형태(일종의 ‘디지털 특고’)지만 좀 더 큰 시야에서 보면 이 역시 ‘경제의 서비스화’ 현상의 한 단면이다. 플랫폼 노동도 ‘앱’이라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대리운전, 배달, 콜택시, 가사도우미 등이 빠르게 형성되고 있는데 이 역시 서비스 노동의 전형들을 잘 보여준다.
거칠게 보면 경제의 서비스화는 농업에서 제조업 중심의 사회경제 체제로 변화할 때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의 수준으로 다양한 충격을 주고 있다. 예컨대 농업에서 제조업 중심의 변화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농촌공동체에서 회사 혹은 공장 형태로 변화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조직 단위를 유지하고 있었고, 또 특정 지리적 공간을 점유한 고정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게다가 고용 관계는 임노동을 중심으로 노동과 자본이 뚜렷하게 양립했다. 그러나 오늘날 가속적인 기술혁신 속에 진행되는 서비스화는 탈조직화, 탈물질화, 탈지역화를 수반하면서 조직적·지리적 고정성을 벗어나 ‘개인화(individualization)’와 ‘유동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다.

이런 거대한 변화가 특고 및 플랫폼 노동을 둘러싼 보편적 쟁점 이면에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역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노동자성’ 문제다. 전통 제조업 중심의 공장제를 표준으로 형성된 노동자성이 기본적으로 시공간적 구속을 강하게 받는 전속적 노동을 전제로 한 반면, 서비스업 노동 특히 플랫폼 노동은 특성상 이런 전속성이 약하다. 그 외에 임금노동과 비임금 노동, 노동시간과 휴식시간, 심지어 취업과 실업 간 등 공장제 표준 노동체제의 경계가 전방위적으로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변화 속에서 이들 종사자의 사회적 보호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기요’ 배달기사 첫 노동자 인정
현행 근로기준과 노사관계에 관한 제반 법 제도적 규칙들은 앞서 언급했듯 기본적으로 제조업 공장제 근로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예컨대 실업자 소득 보호를 위한 대표적 기제인 실업보험(unemployment insurance, 우리나라의 고용보험)은 사실상 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 이력을 전제로 수립되었다. 고용보험의 실업급여 수급 조건인 ‘이직 전 18개월 이내 근로일이 180일 이상’ 및 ‘비자발적’이라는 단서가 대표적인 사례다. 결국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근로자의 지위가 확인되지 않거나 단속적인 고용 관계에 따라 고용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특고 및 플랫폼 노동의 경우 실업자 소득보호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이다.
정리하면 오늘날 특고 및 플랫폼 노동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 방안은 크게 세 가지 차원의 접근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전통적인 노동법상 근로자 개념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다. 둘째는 근로자와 독립 자영인 사이에 중간 범위를 설정하는 방안이다. 셋째는 모든 ‘일하는 사람’에 대해 포괄적으로 보호하는 일반적 보호법제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우리나라의 노동법제가 기본적으로 근로자와 자영인이라는 2분법을 기초로 형성되어 있는 점, 그리고 보편적인 사회복지 체계가 취약한 현실 등을 고려할 때 둘째와 셋째의 방향은 기존 노동체제 전체를 건드려야 하는 큰 부담을 갖는다.

이러한 부담 때문에 그간 특고 및 플랫폼 노동에 대한 접근은 주로 첫 번째의 방향을 중심으로 진행돼왔다. 플랫폼 노동과 같은 유사 자영인을 노동법상 근로자로 포섭하거나, 불공정 행위에 대한 규제로서 광의의 경제법으로 보호하는 방향이다. 전자는 산재보험에 특고를 포괄하는 방식이며, 후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특고 지침’을 마련해 유사 자영인을 불공정 행위 규제로 보호하려 한 시도가 그것이다. 특히 최근 음식배달 앱 ‘요기요’와 개인사업자로 계약을 맺고 배달을 대행한 배달 기사(라이더)가 요기요 소속 노동자라는 고용노동부의 판단이 나오면서 정부가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최초로 인정한 사례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특고 및 플랫폼 노동에 대한 사회적 규범도 빠르게 적응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급속하게 진행되는 고용 형태의 다양화와 이에 따른 고용 위험(리스크)에 대한 사회적 대응 수준은 여전히 약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평등이 상대적으로 후순위
전통적인 사회정책 전문가들은 서비스화된 경제에서 각국들은 정책 우선순위 세 가지(재정 건전성, 평등, 일자리 창출) 모두를 달성할 수 없다는 ‘트릴레마(trilemma)’에 봉착한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우리나라는 한눈에 보아도 재정 건정성과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평등은 후순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거시적 제약을 잘 인지하면서 대체로 북유럽 국가 등은 덴마크의 ‘유연 안정성(flexicurity)’과 같은 사회시스템을 만들어낸다. 또 최근 유럽은 기본소득 및 ‘디지털 사회안전망 시스템(DSS, Digital Security System)’ 구축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4차 산업 및 디지털 혁명과 결합된 서비스화의 진행은 앞서 언급한 트릴레마를 강화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런 사회경제 구조적 제약 속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이 분야의 석학들은 새로운 문제에 대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집단적 지혜와 대응을 통한 ‘조정(coordination) 능력’이 결정적이며, 특히 이를 위한 다양한 형태 및 수준의 사회적 대화의 활성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 조정 능력이 뛰어난 나라들이 대체로 사회적 대화가 발달한 나라라는 점은 이 둘 간의 긴밀한 연관을 역사 경험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문명적 이점을 사회적 대화와 연결하면서 새롭게 발생하는 사회적 리스크가 사회통합의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이덕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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