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안전망 강화를 촉구하는 프랑스 파리 시민의 시위 현장
사회안전망, 선진국에선
특수고용직이라는 이름은 다른 나라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용어다. 국제법에서도 우리나라의 특수고용직과 일치하는 개념이 없다. 학문적으로는 ‘비전형(atypical) 고용의 증가’라는 표현이 널리 쓰인다. 노사 관계의 전형적인 틀을 벗어난 고용 형태가 늘고 있다는 뜻이다. 비전형 고용의 증가는 국지적으로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확산에 따른 영향이 크다. 디지털 플랫폼 경제가 장기적인 수요(고용)와 공급(피고용) 계약으로 형성되는 노동시장을 빠르게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의 중개를 통해 거래되는 작은 단위의 일거리는 고용 형태 다양화를 촉진하지만, 안정된 고용 관계의 임금노동자와 비교해 평균 소득이 훨씬 적고 사회보장 혜택도 부족한 편이다. 기존 법과 제도에서 흡수하지 못하는 고용 형태의 증가에 대해 주요 선진국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정책 기조, ‘보호해야 할 노동’ 국제 합의 뿌리
고용 형태의 변화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는 나라로는 프랑스가 꼽힌다. 프랑스는 노동을 제공하는 국민에게는 특정 사업자와 고용계약 유무에 상관없이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추진해오고 있다. 배달 기사처럼 특정 플랫폼에 소속돼 노동을 제공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노동법전 개정과 2016년 제정된 ‘노동과 사회적 대화의 현대화, 그리고 직업적 경로의 보장에 관한 법’에 따라 모든 사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보장된다. 여기서 플랫폼 운영 사업자는 플랫폼 노동자가 제공하는 업무의 성격이나 가격 결정에 개입할 경우 일반 고용주와 똑같은 법적 책임을 진다.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각종 사회보험 분담금에 대한 지급 의무가 있고, 거래하는 플랫폼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했거나 파업에 참여했다고 해서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면 부당 노동행위로 처벌을 받는다. 일정 기간 이상 일한 노동자에게는 플랫폼 운영 사업자가 직업훈련 분담금을 지급해야 하며, 노동자가 요청할 경우 경력 확인서도 발급해줘야 한다.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고용보험 개혁안을 마련해 2018년 10월부터 시행 중인데, 놀라운 변화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노동자들이 분담해온 고용보험료 2.4%를 폐지하고 정부 재정으로 충당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자발적 실업자와 ‘노동의 제공으로 직업 활동을 하는 개인사업자(자영업자)’까지 실업급여 수급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정부가 고용보험료의 노동자 몫을 대신 분담하는데도, 고용보험을 낸 임금노동자에게만 돌아가던 실업급여 혜택이 고용 형태를 구분하지 않고 보편적으로 넓어진 것이다. 일각에서는 프랑스의 이런 파격적인 정책이 재정 부실과 단기 고용의 증가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실업자를 사후적으로 구제하기보다 보편적이며 선제적인 고용정책으로 적극 대응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 프랑스 정부의 판단이다. 지금까지는 프랑스 정부의 판단이 옳은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1분기 실업률은 8.7%로 2009년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이고, 고용률은 66.1%로 198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독일 함부르크 시내 한 건설현장의 산업재해 안전 점검 모습 | 한겨레
취약계층 보호 실천·감시 기구 만들어
독일은 디지털 경제의 확산에 따른 경제, 사회, 노동시장 전반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대응 전략을 사회적 합의로 마련했다. 연방정부 주관으로 정치권, 노동계, 산업계 등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논의하고 광범위한 전문가 그룹의 연구 결과까지 반영한 ‘노동 4.0’ 전략을 2011년 채택해 2013년부터 본격 추진하고 있다. 노동 4.0 전략에는 경제의 네트워크화와 디지털화에 따른 노동시장의 양극화, 기업과 개인(노동자) 간 노동 유연화 개념의 충돌 문제, 다양한 플랫폼 노동자 등에 대한 노동법적 지위의 문제, 노동자 경영 참여와 단체교섭 방식의 문제, 그리고 사회안전망 전반의 강화 등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전략적 방향의 초점은 기존 노동법 및 사회법 체계에서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유사 노동자’와 ‘종속적 자영업자’에 맞추고 있다.
독일은 원래 고용 관계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인 ‘취업 관계’를 전제로 사회보험 체계를 운영한다. 형식상으로는 개인사업자일지라도 사업 수단이 자신의 노동뿐인 취업자라면 일반 임금노동자와 똑같은 사회보험 적용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노동 4.0 전략에서는 이런 사회보험 운영 기준을 더 강화했다. 취약계층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새로운 실천 과제도 사회적 합의로 도출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7년 11월에 출범한 ‘옴부즈 오피스(Ombuds Office)’다. 불특정 다수의 인력을 활용해 사업을 하는 ‘크라우드소싱’ 업체와 여기에 노무를 제공하는 노동자나 자영업자 간 공정한 협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행동 수칙을 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설립한 민간 기구다. 옴부즈 오피스에는 독일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IG Metall)와 크라우드소싱협회, 크라우드소싱 업무에 속하는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 대표 등이 참여한다. 행동 수칙은 공정한 보상, 동기부여와 좋은 일자리 기준, 수행할 업무 과제에 대한 표준과 노동시간 기준 등 열 가지 내용이 포함됐다. 옴부즈 오피스는 이들 수칙이 현장에서 잘 지켜지는지 관리·감독 역할과 함께, 갈등이 불거질 경우 패널을 구성해 중재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독립계약자, 종업원 전환 가능 법 통과
미국은 인터넷 웹사이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등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한 노동시장이 가장 활발하고 큰 나라다. 오죽하면 ‘유령 노동(Ghost Work)의 나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고용 또는 노무 관계에서 발생하는 분쟁에서 미국 정부나 법원의 우선순위는 노동권 보호다. 먼저 2015년 7월 연방노동부는 온라인을 통해 독립적 개별계약으로 노무를 제공해 정식 ‘피고용자’로 분류되지 못하는 계층에도 공정노동기준법(FLSA)을 적용할 수 있게 행정 해석을 변경했다. 세금, 법정 휴가, 최저임금, 연장 근무와 휴일 근무에 대한 가산임금, 사회보험 기여금 등의 적용 대상을 ‘유령 노동자’에게까지 확대한 셈이다. 또 같은 해 12월 미국 워싱턴주가 모바일 앱을 통해 일감을 구하는 배달 운전자들의 단결권과 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례를 통과시키는 등 주 의회 차원의 노동권 보호 입법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7월에는 캘리포니아주 상원 고용위원회가 외주용역 노동에 사업자 입증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켜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AB5(Assembly Bill 5)’ 또는 ‘ABDS(App-Based Driver & Services Act, 앱 기반 운전자 및 서비스 보호법)’로 불리는 이 법안이 발효되면 우버(Uber)나 리프트 등 공유경제 플랫폼을 통해 운전자 등으로 일하는 수많은 ‘독립계약자’가 종업원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진다. 법안은 사업자가 고용계약이 아닌 사적 사업계약으로 일을 시키더라도 원칙적으로는 피고용인으로 추정하고, 피고용인이 아니라는 입증 책임은 독립계약자가 아닌 사업자에게 일괄해서 묻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회사가 노무 제공자를 피고용인이 아니라 독립계약자로 간주하려면 3단계 입증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첫째 노무 수행과 관련해 기업의 통제와 지시로부터 자유롭고, 둘째 노무 제공을 받는 회사의 통상적인 업무 외 다른 업무도 수행해야 하며, 셋째 수행하는 업무가 노무 제공자 스스로 수립한 독립적인 사업이라는 것이다. 회사가 3개의 테스트에서 어느 하나라도 입증하지 못하면 노무 제공자는 독립계약자가 아니라 피고용인 지위를 인정받게 된다. 캘리포니아주 의회가 앞으로 상원 세출위원회와 전체 의회 투표를 거쳐 내년 1월부터 이 법안이 발효되면 플랫폼 노동시장에 큰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버클리대의 한 연구소는 AB5법의 통과를 전제로 우버와 리프트 운전기사들이 피고용인으로 전환하면 급여에 부과되는 각종 세금과 사회보장 기여금 등으로 개인당 연평균 3625달러(약 423만 원)의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현재 독립계약자로 일하는 우버와 리프트 운전기사는 캘리포니아에서만 각각 14만, 8만여 명에 이른다.
특수고용직, 비전형 노동에 대한 주요 선진국의 정책 기조는 국제적 합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제연합(UN)이 1966년 총회에서 국제조약으로 채택하고, 우리나라도 1990년 가입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사회권 규약)’ 제6조는 ‘모든 사람은 노동을 통해 생계를 영위할 권리를 가지고, 당사국은 이 권리의 보호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조약 제9조는 ‘모든 사람이 사회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아울러 국제노동기구(ILO)는 2006년 총회에서 채택한 ‘새로운 고용 관계에 관한 권고’를 통해 ‘위장된 고용 관계’나 ‘모호한 고용 관계’에 해당할 경우 ‘특별히 보호해야 할 노동’으로 간주할 것을 회원국들에 촉구한 바 있다.
박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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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