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쏘니·황소·슛돌이 기술로 유럽무대 진화 ‘쑥쑥’

2019.11.14 공감 최신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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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민이의 모습이 너무 자랑스럽다.”
11월 7일 2019~2020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B조 경기에서 토트넘 손흥민(27)이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상대로 2골을 몰아치면서 4-0 승리를 이끌었을 때,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한 말이다. 1980년대 분데스리가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차범근 감독은 자신의 유럽무대 한국인 통산 최다골(121골) 기록이 깨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한 의지가 대단하다”며 손흥민을 칭찬했다. 이날 통산 123골로 차범근 감독의 기록을 뛰어넘은 손흥민은 한국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한때 ‘손흥민과 차범근 가운데 누가 더 뛰어난가’라는 설문조사가 대중의 흥미를 끌었다. 차범근 감독이 뛰었을 당시 독일 분데스리가와 현재 손흥민이 뛰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프로리그다. 차범근 감독은 당시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유럽인들에게 축구를 통해 코리아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외교관 구실도 톡톡히 했다. 20세기 아시아 축구를 기억하는 세계 축구팬들은 차범근 감독을 단연 톱으로 꼽는다.

겸손하고 성숙한 인간성도 빛나
손흥민은 좀 더 공간 압박이 강하고 속도가 높아진 현대 축구에 적응하면서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리오넬 메시 등을 넘어서지 못했지만, 27세의 나이라 상승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인기투표를 한다면 차범근 감독을 잘 모르는 젊은 팬들에게는 단연 손흥민이 훨씬 많은 표를 얻을 것이다.
하지만 둘을 비교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평가란 상대적인 것이다. 전성기 때의 나이 차이도 있다. 병역을 마쳐야 하는 등 온갖 고난 끝에 유럽무대에 안착한 차범근 감독이 121번째 골을 넣은 것은 36세로 손흥민보다 열 살 가까이 많았다. 그런 환경을 염두에 둔다면, 둘을 비교하기보다는 한국 축구의 자산으로 두 스타를 갖게 된 것을 즐기는 편이 훨씬 좋다.

스피드 강점을 내세운 손흥민은 2015년 토트넘으로 이적한 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 아래서 더욱 다듬어졌다. 공이 없는 상태에서 움직임이나 공격 전개 시 공 컨트롤, 시야는 더 좋아졌다.
여기에 겸손한 그의 태도는 팬들의 호감도를 높인다. 11월 4일 프리미어리그 에버턴과 경기에서 손흥민은 상대 안드레 고메스에게 백태클을 했고, 고메스는 넘어지면서 토트넘 수비수와 충돌해 발목을 다쳤다. 손흥민은 퇴장을 당한 상황보다는 골절상을 입은 고메스에게 미안함을 표시하고 눈물까지 흘렸다. 그리고 사흘 뒤 열린 챔피언스리그 즈베즈다와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카메라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이며 고메스의 빠른 쾌유를 기원했다. 골 세리머니를 포기하고, 자신으로 인해 다친 선수를 위로하는 손흥민의 모습은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다.

손흥민은 11월 중순까지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8골을 넣으며 이번 시즌 팀의 주득점원으로 입지를 굳혔다. 토트넘이 리그 중위권에 머물러 있지만 이 정도 버티는 것은 손흥민의 득점력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도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예선 과정에서 손흥민에게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
손흥민의 활약은 유럽 진출 국내 선수들한테는 동기부여 효과가 있다. 마치 거대 항모가 작은 선단을 이끌듯 후배들을 끌어당기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소’ 별칭을 지닌 잘츠부르크의 황희찬(23)과 ‘재간꾼’으로 통하는 발렌시아의 이강인(18)이 그런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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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수비수 제치고 그물망 찢어
황희찬은 2019~2020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E조 첫 경기 헹크전 1골 2도움, 두 번째 리버풀전에서 1골 1도움, 네 번째 나폴리전에서 페널티킥 유도 등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 특히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리버풀과 경기에서 세계 최고 수비수로 꼽히는 피르힐 판 데이크를 주저앉힌 뒤 꽂은 중거리 골은 황희찬의 주가를 한껏 올렸다. 네 번째 나폴리전에서도 역시 몸값 1000억 원을 넘는 중앙 수비수 칼리두 쿨리발리에게 페널티 반칙을 얻어내면서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보다 좀 더 큰 리그에 진출할 잠재력이 있음을 과시했다.
발렌시아의 이강인 또한 이번 시즌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는 한국인 3인방으로 활동하고 있다. 챔피언스리그 H조의 발렌시아는 아약스, 첼시와 함께 1~2위 자리를 놓고 대등한 경쟁을 벌이는데, 최근 이강인은 릴과 챔피언스리그 4차전에서 선발 출전하기도 했다. 아직 골을 얻지는 못했지만 출전 기회를 살려나가면서 경험을 쌓고 있다.

세 선수의 특징은 큰 무대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기량이 계속 상승한다는 점이다. 그 바탕에는 기술 축구가 있다. 손흥민은 아버지 손웅정 씨에게서 지독할 정도로 기본기 훈련을 받았고, 황희찬은 고교 시절부터 틈만 나면 아트사커의 고수를 찾아가 개인기를 훈련했다. 프로에 입문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황희찬의 아버지 황원경 씨는 “아들이 어려서부터 접기는 잘했다”고 말했는데, 쉼 없는 노력으로 이제 ‘접신’의 단계로 올라섰다. 이강인 역시 ‘슛돌이’의 번뜩이는 천재성을 갖추고 있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세 선수가 세계적인 선수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남들과 다른 노력을 보이고 있다. 또 꾸준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팬을 확보하고 있다. 국가대표팀 안에서도 셋의 비중은 더욱 커지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김창금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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