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중견기업 중심 전기차 클러스터 ‘상생’

2019.11.11 공감 최신호 보기


k

전라북도 군산에서 또 다른 대규모 ‘상생형 일자리’(군산형 일자리) 프로젝트가 본격 시동을 걸었다. 대기업이 떠나간 자리에 중소·중견기업 중심의 전기자동차 생산 집적단지(클러스터)를 조성하면서 적정 임금과 노동조건을 갖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게 군산형 일자리 추진 계획이다. 이 계획을 지역 내 여러 경제주체가 상생협약을 맺어 뒷받침한다. 군산형 일자리는 올해 1월 광주광역시에서 시작된 상생형 지역 일자리의 여섯 번째 모델이다.
군산형 일자리 사업에서는 광주형 일자리의 현대자동차, 구미형 일자리의 LG화학 같은 대기업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올해 3월 한국GM 군산공장을 인수한 ‘명신 컨소시엄’과, ㈜에디슨모터스를 주축으로 ㈜대창모터스·㈜MPS코리아·㈜코스텍 등이 참여하는 ‘새만금 컨소시엄’이 투자 주체다. 두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업체들은 다양한 전기차나 관련 부품 생산에 특화한 중소·중견기업이다. 이들은 2022년까지 모두 4122억 원을 투자해 전기차 17만 7000여 대의 생산설비 구축과 함께 1900여 명의 신규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다. 이런 투자 및 고용의 추진 동력이 따로 마련됐다. 전북도와 군산시 주도로 컨소시엄 참여 기업의 노사 대표는 물론, 군산 지역 내 다양한 경제주체가 함께 맺은 상생협약이 바로 그 동력이다. 10월 24일 오후 ㈜명신 군산공장(옛 GM 군산공장)에서 전북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식이 열렸다. 협약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역의 신산업 육성 의지, 노·사·민·정의 대타협, 그리고 정부의 지원이 더해져 이제 군산은 전기차 메카로 우뚝 설 것”이라고 말했다.

양대 노총 모두 참여하는 첫 사례
군산형 일자리 추진 논의는 대기업 중심의 산업 생태계가 붕괴하면서 시작됐다. 2017년 7월 현대중공업의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에 이어 2018년 5월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까지 내려지자 군산 지역 경제는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협력 업체와 연관 서비스업까지 휴·폐업이 잇따랐다. 두 대기업 공장이 문을 닫은 직·간접 여파로 군산에서는 지금까지 약 1만 7000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북도와 군산시는 대기업을 정점으로 수직계열화된 산업구조의 위험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대신 전기차 관련 중소·중견기업 중심의 수평적 투자 모델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이에 따라 올해 5월 전북도와 군산시, 명신 컨소시엄과 새만금 컨소시엄이 전기차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또 올해 1월부터는 두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기업 5개사의 노사 대표를 포함해 군산 지역 산업계와 노동계, 시민사회 등 12개 기관 및 단체의 대표까지 참여하는 ‘군산 노·사·민·정 실무협의회’를 구성해 새로운 일자리 모델에 대한 사회적 협약을 논의해왔다.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은 이들이 토론하고 타협해 도출한 결과물이다. 협약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군산시지부도 서명했다. 양대 노총이 함께 참여하는 상생협약은 군산형 일자리가 처음이다.

군산형 일자리는 상생협약을 먼저 체결한 다른 지역의 상생형 일자리보다 가시적인 성과가 훨씬 빨리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협약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투자가 이미 진행 중이거나 대부분 확정됐기 때문이다. GM 군산공장을 인수한 명신 컨소시엄은 전기차 생산을 위한 구조 변경을 벌써 시작했다. 2022년까지 2675억 원을 투자하고 900명을 직접 고용해 전기차 전용 공장으로 재가동한다. 2021년부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연간 5만 대 생산을 시작해 2025년 15만 대까지 생산량을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명신 컨소시엄은 최근 전기차 개발 전문 다국적기업인 퓨처모빌리티(FMC)와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명신은 또 전북도와 함께 군산공장 안에 전기차 연구개발(R&D) 플랫폼을 갖춰 2023년부터는 자체 모델도 생산할 계획이다.

새만금 컨소시엄은 1447억 원을 들여 새만금산업단지 제1공구 39만㎡에 다양한 전기차 생산라인을 구축한다. 컨소시엄의 주축인 에디슨모터스는 탄소섬유를 차체에 적용한 전기버스와 전기트럭을 생산한다. 올해 연말에 착공해 내년 하반기부터 양산에 돌입한다. 초소형 전기차 전문 제조업체인 대창모터스는 이륜 배달용 차량이 전기차로 전환되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새만금을 새로운 생산기지로 선택했다. 고효율 리튬이온 배터리팩을 탑재한 다양한 초소형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며, 인공지능 기반의 자율주행 전기차도 개발 중이다. 일본 산요의 골프장 카트 사업부를 2018년에 인수한 MPS코리아는 카트, 의료용 스쿠터, 전기트럭 등의 양산 체제를 새만금 컨소시엄을 통해 구축한다. 생산설비 완공 목표는 2020년 말이다.

l▶전라북도와 군산시 노·사·민·정 대표들이 전북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원·하청 기업 간 수평적 계열화 주목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에서는 개별 기업의 투자 계획보다 더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원·하청 기업 간 수평적 계열화와 혁신적인 노사관계를 시도한다는 점이다. 지역 내 부품 공급업체에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개방형 부품 납품 구조, 연구개발 성과 등으로 납품 원가 절감 요인이 발생할 경우 원·하청 기업 간 이익 공유, 공동복지기금 조성을 통한 기업 간 복지 격차 해소 등이 상생협약의 세부 내용으로 합의됐다. 지역 내 실직노동자 우선 채용, 역내 중소기업 부품의 의무 구매 할당제, 사회공헌 사업의 공동 추진 등 지역사회와 상생을 위한 합의도 협약에 포함됐다.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가칭 ‘군산시 전기차 클러스터 상생협의회’에서 가이드라인을 먼저 설정하고 개별 사업장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교섭을 진행하기로 했다. 지역 단위의 공동 교섭을 통해 군산형 일자리의 적정 임금을 보장하면서도 기업 간 임금 격차를 줄이자는 취지다. 노사 간 이견과 갈등이 생길 경우 상생협의회에서 특별위원회를 꾸려 조정안을 제시하고 중재에 나선다. 협약에 따르면 전기차 생산이 시작된 뒤 5년 동안은 노사가 의무적으로 중재안을 수용해야 한다. 투명경영의 구현을 위해 우리사주제와 노동자 이사회 참관제의 도입도 다른 지역에서 주목해야 할 합의 내용이다.

전북도와 군산시는 이런 상생협약이 제대로 발효될 수 있도록 내년 상반기까지 상생협의회 구성과 운영, 원·하청 기업의 수평적 계열화 구조, 선진형 임금체계 도입 등에 대한 구체적 실행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11월부터 ‘상생형 일자리 특화 컨설팅 사업’을 공모로 추진한다. 아울러 전북도는 군산과 전주 권역의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전기차 부품업체로 전환하도록 지원하고, 도내 대학 및 연구기관과 연계한 R&D 여건 정비와 개선,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 개발 등 군산형 일자리의 안착을 위한 후속 작업을 서두르기로 했다.

박순빈 기자

관련기사

페이지 맨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