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월 16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옥정애 부마민주항쟁 참가자를 위로 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22일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저성장과 양극화, 일자리, 저출산·고령화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며 재정 확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 대외 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 기능을 해야 한다”면서 “나아가 우리 경제의 활력을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정부는 2019년 470조 원 규모의 예산에 이어 2020년에 513조 5000억 원의 예산을 편성하면서 2년 연속 재정지출을 대대적으로 늘렸다. 2020년 총지출 증가율은 9.3%(43조 9000억 원)로 2019년(9.5%)에 이어 2년 연속 9%대를 유지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년 반 동안 재정의 많은 역할로 ‘혁신적 포용국가의 초석’을 놓았다. 재정이 마중물이 됐고 민간이 확산시켰다”면서 “이제 겨우 정책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을 뿐이다. 우리 경제가 대외 파고를 넘어 활력을 되찾고, 국민께서 삶이 나아졌다고 체감할 때까지 재정의 역할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확장예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
문 대통령이 재정의 과감한 역할을 강조한 배경에는 우리 경제가 엄중한 상황이라는 판단이 있다. 미중 무역분쟁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세계경제가 빠르게 악화하면서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도 엄중한 상황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세계적 경기 하방을 극복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과감히 늘리라고 각 나라에 권고했다. 특히 한국을 재정 여력이 충분해 재정 확대로 경기에 대응할 수 있는 나라로 지목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지금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더 큰 비용을 치를 것”이라며 “내년도 확장예산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재정건전성 우려에 대해서는 과감히 반박하면서 우리 경제의 견실함을 강조했다. 정부 예산안대로 해도 2020년도 국가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를 넘지 않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10%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며, 재정 건전성 면에서 최상위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19년 37.1%에서 2020년 39.8%까지 상승하고 2021년 42.1%, 2022년 44.2%, 2023년 46.4%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전망이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는 2020년 GDP 대비 -3.6%, 2021년 -3.9%, 2022년 -3.9%, 2023년 -3.9%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
2020년에 세수가 올해보다 감소할 예정인 가운데 적자국채 발행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도 선제적으로 반박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최근 2년 동안 세수 호조로 국채발행 규모를 당초 계획보다 28조 원 축소해 재정 여력을 비축했다”면서 “2020년에 적자국채 발행 한도를 26조 원 늘리는 것도 이미 비축한 재정 여력의 범위”라고 말했다. 정부는 2020년 국세 세입 예산안을 2019년 예산(294조 8000억 원) 대비 2조 8000억 원(0.9%) 감소한 292조 원으로 전망했다.
‘일하는 복지’ 내세워 노인 일자리 창출
한편 문 대통령은 노인의 ‘일하는 복지’를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노인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고령화 시대의 어르신은 더 오래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되고 일하는 복지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어르신들의 좋은 일자리를 위해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공익형 등 어르신 일자리도 13만 개 더해 74만 개로 늘리고 기간도 연장하겠다”며 “재정으로 단시간 일자리를 만든다는 비판이 있지만, 일하는 복지가 더 낫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인 일자리 사업을 둘러싼 논란을 일축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2020년도 예산안의 전체 일자리 사업 예산 25조 7697억 원 가운데 정부가 취약계층에 한시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직접 일자리 사업 예산은 2조 9241억 원에 이른다. 직접 일자리 사업 가운데서도 노인 일자리 사업 예산은 1조 1955억 원으로, 2019년보다 47.0% 증액됐다. 정부는 빠르게 증가하는 고령층의 생활 보장을 위해 이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창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럽 선진국과 달리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으로는 노후 소득 보장이 충분하지 않은 한국에서는 경제활동을 통한 근로소득을 추구하는 노인이 많을 수밖에 없다. 체력적 한계가 있는 노인에게 적합한 일자리는 하루 3시간 안팎의 단시간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도 노인에게 ‘노노(老老) 케어’, 공공시설 봉사, 환경 개선 봉사 등 주로 단시간 일자리를 제공한다. 노인 일자리 사업에 힘입어 올해 상반기 60세 이상 취업자는 2018년 상반기보다 34만 5000명 증가했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은 20만 6000명이다.
2020년부터 국민취업지원제도 시행
문 대통령은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도 2020년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취업지원제도는 정부가 저소득층 구직자에게 월 50만 원씩 최장 6개월 동안 구직촉진수당을 지급하고 취업 지원 서비스를 하는 것으로, 2020년 7월부터 시행된다. 2020년 말까지 지원 대상은 35만 명이고 예산은 5200억 원이다.
이 밖에도 문 대통령은 “내년에 근로시간단축이 확대 시행되면서 탄력근로제 등 보완 입법이 시급하다”며 “그래야 기업이 예측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에 탄력근로제 개선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을 촉구한 것이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현행 최장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것을 포함한 제도 개선 방안에 합의했지만, 탄력근로제 개선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부는 탄력근로제 개선이 이뤄지면 2020년 1월부터 시행되는 50∼299인 사업장의 주 52시간제 시행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탄력근로제 개선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이 지연될 경우 정부는 50∼299인 사업장의 주 52시간제 위반에 대한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 부여를 포함한 행정적 조치에 나설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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