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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다양한 사람들이 온기와 쉼의 여유를 얻기 위해 찾는다. 커피를 즐기러 오는 마니아층부터 직장인, 학생, 어머니 부대까지. 왠지 모르게 사람들 사이에 앉아야 공부가 잘되는 것 같고 사람들의 목소리와 음악이 섞여 더 따뜻한 느낌이 든다.
바리스타인 나는 관찰자가 되어 여러 계절을 보내며 커피 잔에 비친 세상을 보았다. 바리스타로 일하기 전에 내게도 카페라는 공간은 온기와 쉼을 주는 장소였다. 그러나 바리스타로 몇 해를 지내는 동안 때로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묵묵히 견뎌야 했다. 매일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기계처럼 똑같은 멘트,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피곤함보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더 크게 다가온다. 언제가 가장 외로울까. 손님이 없는 조용한 시간? 사실은 가장 바쁠 때가 제일 외롭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가족에게 이렇게 화를 내곤 하신다. “내가 니들 밥통으로 보이냐!”
커피에 대한 애정으로 가슴 설레며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새 눈도 마주치지 않고 카운터 너머로 카드를 내미는 고객들 사이에서 나는 커피 자판기가 된 것만 같다. 손님이 되어 봐도 그렇다. 카페에서 무얼 마실지 망설이는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쓰지만 빨리 돈을 받고 ‘주문 미션’을 끝내고 싶은 직원의 속마음은 숨겨지지 않았다. 짧은 순간 나는 ‘빨리 돈을 주고 사라져야 하는 ATM 기계’로, 점원은 ‘커피 만드는 기계’로 전락해버린 것 같았다.
이런 모습이 당연한 일상이 되고 쿨한 현대인의 덕목인 양 비춰지는 요즘. 자기 계발서를 봐도 ‘자존감’이란 단어를 앞세워 자기중심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이 권리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그 결말은 무엇일까? 생명과 생명이 살을 맞대고 사는 세상은 사라져버린 걸까? 이어령 교수가 쓴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목수들은 숲을 보지 못합니다. 나무의 기둥과 서까래 그리고 책상이나 의자를 봅니다. 목재상들은 수직의 나무를 쓰러뜨려 뗏목을 만들어 그것을 필요로 하는 도시로 운반합니다. 인간이 자연물을 무엇을 위한 수단이요, 도구로 생각하는 한 우리는 개 목걸이의 끝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 교수는 자연물을 자연물 자체로 보는 시선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하물며 사람이라면? 서로가 서로를 어떤 도구로 다루기 전에 한 생명으로 대한다면 어떨까? 손님을 ‘돈 주는 기계’로 대하기보다 ‘오늘 내가 만난 한 사람’으로 반갑게 맞이한다면, 바리스타를 ‘커피 만드는 기계’로 대하기보다 ‘맛있는 커피를 선물한 사람’으로 칭찬 한마디 건넬 수 있다면, 직원을 ‘돈 준 만큼 제값을 해야 하는 기계’로 대하기보다 ‘목표를 향해 갈 때 손발이 되는 몸의 일부’로 격려의 한마디로 이끈다면, 동료를 ‘밟고 올라서야 할 걸림돌’로 대하기보다 ‘하루의 소중함을 함께 누리는 동반자’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다면 말이다.
치열한 세상에 그렇게 해서 살아남겠냐며, 교과서에 나올 법한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를 한 생명으로 대하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사람의 내면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서로를 생명으로 대하지 않음으로써 각자의 마음에 자리 잡은 마음의 빈곤은 결국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 빈곤을 부른다. 마음이 빈곤한 사회. 나부터, 우리 동네부터 바꿔나간다면 언젠가 빈곤의 사슬이 끊어지지 않을까 꿈꾼다.
허은혜 서울 마포구 공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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