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합성·색소 기술로 소재·부품 강소기업

2019.10.24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l▶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있는 ㈜경인양행 중앙연구소 전경

2015년 6월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기업청의 ‘월드클래스 300 프로젝트 및 글로벌 전문기업 육성사업’(이하 월드클래스 300). 화학 소재 기업인 경인양행이 ‘월드클래스 300’ 기업으로 선정되자 관련 업계가 긴장했다. 1971년 설립된 경인양행은 정밀화학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갖춘 염료산업의 국내 선도업체다. ‘월드클래스 300’ 기업 선정 당시 경인양행은 섬유용 염료산업의 44년간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의 유기전자 소재와 섬유용 디지털 프린팅 분야의 잉크, 색소 제품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등 글로벌 정밀화학(화인케미칼) 기업으로서 성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월드클래스 300’에 선정되면 세계적 수준의 히든 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정부로부터 향후 10년간 지원이 이뤄진다. 경인양행은 유관 기관 연계 자금 지원을 비롯해 핵심 및 응용기술 연구개발(R&D), 글로벌 진출 전략 및 인력 지원, 해외 마케팅 등의 조언을 받았다.
4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2019년 9월 26일, 경인양행 중앙연구소를 찾았다.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자리한 중앙연구소는 국내 최초의 염료 연구소다. 경인양행의 잉크, 염료 및 전자재료 연구개발이 이뤄지는 곳으로, 1980년 서울 사옥과 함께 설립됐다. 현재 중앙연구소는 염료에 이어 디지털 프린팅 잉크, 디스플레이·반도체용 유기전자 소재 등으로 영역을 넓혀 120여 명의 연구원이 신기술 개발과 제품 양산화에 매진하고 있다.

l▶인천 서구 석남동에 자리한 ㈜경인양행 공장 전경

일본 기업 주도 반도체 소재 국산화 주력
경인양행의 중앙연구소가 없었다면 지금의 선명한 액정표시장치(LCD) 화면은 보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LCD 디스플레이의 색을 표현하는 핵심 부품인 컬러필터는 안료를 색소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안료는 최근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요구하는 휘도와 명암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반면 염료는 안료보다 색 특성이 우수하지만 내구성이 떨어져 컬러필터에 적용하지 못했다. 이런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경인양행은 2010년 3월 세계 최초로 ‘LCD 컬러필터용 염료’를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날 찾은 중앙연구소는 적벽돌색 외벽 위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비 두 마리의 모습이 인상적인 7층 건물이었다. 왼쪽에 있는 흰색 나비는 처음 흰색의 형광증백제로 사업을 시작한 것에서 유래했고, 오른쪽 검정 나비는 최초로 개발한 반응성염료 블랙 B를 포함한 삼원색 등 유색을 의미한다는 게 경인양행 관계자의 설명이다.
건물 중앙을 따라 제법 높게 뻗은 계단을 지나면, 층마다 통유리창 아래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연구소가 펼쳐져 있다. 그곳에서 연구원들은 새로운 구조의 염료를 디자인하고 합성하며, 제품의 품질 및 수율 향상을 위해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l▶포토레지스트용 감광제 생산라인이 가동 중이다.│경인양행

조성용 대표이사는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의 ‘양행(洋行)’을 사명으로 가진 당사는 1971년 창립 이래 48년간 꾸준히 제품 품질과 회사 실력을 향상해 해외시장을 개척해왔다”며 “그 결과 매출 비중이 가장 큰 섬유용 염료와 디지털 프린팅 잉크 사업은 국내 염료시장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며 해외 50여 개국에 고품질 염료와 잉크를 공급한다”고 말했다. 또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경인양행의 핵심 역량인 유기합성 기술을 바탕으로 디스플레이와 반도체용 유기 전자재료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며 “특히 일본 기업들이 주도하는 반도체 소재의 국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사실 전자재료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LCD TV에 들어가는 컬러런트(colorant, 색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염료나 안료)를 개발해서 넣었다가 문제가 생기면 리콜해야 하는데, TV가 판매되는 전 세계 시장의 규모를 생각하면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경인양행은 사실상 불가능한 시장에 끊임없는 연구로 도전을 감행했다. 현재 삼성, LG 등 시판되는 LCD TV에는 경인양행의 ‘LCD 컬러필터용 염료’가 들어가 있다.

l▶조성용 대표이사│경인양행

개발부터 생산까지 협력 팀워크 탄탄
경인양행의 핵심 역량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두 가지 이상의 유기화합물을 화학적 반응을 통해 원하는 새로운 물질로 만들어내는 ‘유기합성(유기화학)’ 기술이다. 쉽게 말해 A 물질과 B 물질을 다양한 조건(온도, 압력, 반응시간 등)에서 화학 반응하면 새로운 C라는 물질을 만들 수 있다.
두 번째는 ‘색소’ 기술이다. 앞서 설명한 유기합성 기술을 바탕으로 경인양행은 다양한 색상의 염료를 구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 B는 하얀색(무색) 물질이었지만 화학 반응 후 C라는 붉은색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처럼 경인양행은 오랜 업력을 바탕으로 한 유기합성 기술로 다양한 색소를 창조해 핵심 역량을 강화·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사업을 운영했다. 그 과정에서 내부 팀워크는 다른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밑바탕이었다.

조 대표는 “새로운 제품을 고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서는 제품의 개발부터 생산까지 과정이 있다. 즉, 신제품을 개발하는 연구 팀과 이후 제품을 생산 현장(공장)에서 일정한 품질 및 수율로 양산할 수 있도록 스케일업(scale­up, 규모 확대)하는 생산기술 팀이 있다. 그리고 꾸준히 제품을 생산하는 현장의 생산 팀과 엔지니어링 팀까지 각자의 역할과 부서 간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협력하는 팀워크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최근 강화된 화학 제조 관련 법규들에 대해 문제없이 대응할 수 있는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부서까지 갖춰 모든 팀이 조직적·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뛰어난 기술력과 팀워크를 기초로 경인양행은 ‘월드클래스 300’ 기업 선정을 계기로 더 큰 성장을 준비했다. 팀장급 리더들이 모여 매출 목표액과 투자 내용 등 회사의 5년 성장 로드맵을 체계적으로 설정해나갔다. 특히 대기업 출신의 전문 인력으로 구성한 ‘전략기획본부’를 신설해 이를 중심으로 전 직원이 회사 성장 로드맵과 각각의 역할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l▶포토레지스트용 감광제는 빛에 반응하는 물질이기 때문에 자외선이 차단된 연구실에서 실험하고 있다. │곽윤섭 기자

그 결과 경인양행은 염료 분야에서 국내 부동의 1위 업체로 자리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최근 염료업계의 메가트렌드인 ‘환경친화적 제품(eco-friendly)’에 따라 그에 적합한 신제품 출시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특히 친환경 신제품인 ‘Synozol Nature Dyes’는 시장과 고객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그 외에도 글로벌 의류 브랜드 업체들의 요구에 발맞춘 높은 견뢰도의 단일 구조 ‘Brown 제품’, 염소수 견뢰도가 우수한 고농도 ‘Blue 및 Grey 제품’ 등의 신제품도 꾸준히 론칭해 선보이고 있다.
기존 주력사업인 염료 부문 외에 정밀화학 부문에서도 지속적인 노력을 이어갔다. 이를 통해 반도체 재료 중 친환경 EMC용(Epoxy Molding Compound) 에폭시 수지나 경화제의 핵심인 모노머(monomer, 단량체, 고분자화합물 또는 회합체를 구성하는 단위가 되는 분자량이 작은 물질)를 개발하고 양산에 성공했다. 이후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의 60%에 가까운 물량을 일본에 공급하고 있다.
또 반도체 생산라인의 극자외선 공정에 사용되는 ‘포토레지스트’의 핵심 원재료인 감광제 국산화도 이뤘다. 이를 통해 전 세계 시장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물량을 공급하고 있다. 아울러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일종의 투명 필름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핵심 모노머를 자체 공정 기술로 개발 양산해 공급을 준비하고 있다.

l▶㈜경인양행 연구원들이 핵자기공명 분석장비(NMR)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곽윤섭 기자

‘색과 신물질 창조 전문기업’ 내세워
조 대표는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인 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3종은 한국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에 쓰이는 핵심 화학 소재 물질로 그동안 일본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았다”며 “최근 일본 수출규제와 관련해 일본 소재의 국산화에 최대한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인양행은 핵심 역량인 핵심 기술 개발과 해외시장 개척에 집중해 신사업 방향을 ‘색과 신물질 창조의 세계적 정밀화학 전문기업’으로 세웠다. 이에 전자재료 소재 분야로 사업 확장을 위한 미래의 생산기지 추가 확보를 위해 2018년 6월 전라북도 익산시와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12만 5000㎡(약 3만 8000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총 1800억 원의 투자 계획을 세워 투자를 진행 중이다. 2020년 2월 완공 및 가동 예정인 익산 공장을 통해 전자재료 및 색재료 분야의 생산 품목을 확대해나간다는 계획이다.

l▶㈜경인양행은 48년의 유기합성 기술로 다양한 색상의 색소를 제조한다.│경인양행

또 이를 기반으로 기존 주요 생산품인 염료 제품과 더불어 전자재료, 색재료 사업 분야에서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2022년까지 6000억 원 이상의 매출 증가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향후 소재 부품 강소기업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전 임직원이 노력하겠다는 계획이다.
조 대표는 “회사나 개인 모두 변화를 시도하는 데는 많은 에너지와 의지가 필요하다. 지난 10년간 염료 사업에서 정밀화학 회사로 성장하자는 목표를 많은 직원이 잘 공유했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모두 열심히 해준 것 같다. 회사의 발전뿐 아니라 직원 각각의 발전과 행복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대표이사가 될 때부터 천명한 ‘직원들이 함께 행복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회사 성장의 결과물에 대해 개인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돌려주며, 함께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강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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