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저스의 클레이턴 커쇼가 9월 30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 5회 구원 등판을 마치고 내려가고 있다. 뒤쪽 전광판엔 커쇼와 대결했던 자이언츠의 매디슨 범가너가 헬멧을 벗어 들고 홈 팬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다.│연합
“커쇼가 우리를 불러 모았다.”
미국 프로야구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유격수 코리 시거(25)는 9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러클 파크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경기 도중 투수 클레이턴 커쇼(31)가 갑자기 포수 윌 스미스는 물론 자신을 포함한 내야수들까지 마운드로 불러 모았다고 전했다.
타석에는 커쇼의 라이벌 매디슨 범가너(30)가 대타로 들어서고 있었다. 범가너는 샌프란시스코를 세 차례나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팀의 에이스다. 올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FA) 선수 자격을 얻었지만 리빌딩 체제에 들어선 팀을 떠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커쇼가 마운드에서 스미스 등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범가너는 샌프란시스코 홈 팬들의 함성과 기립 박수를 받으며 넉넉하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범가너는 감상에 젖어 관중을 바라봤고, 두 번이나 헬멧을 벗어 답례했다.
한때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라이벌이었던 커쇼와 범가너는 투타 대결에서도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투수 커쇼와 타자 범가너의 승부는 풀카운트까지 갔다. 커쇼는 공 7개 모두 패스트볼을 던졌고, 범가너는 커쇼의 7구에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지만, 잘 맞은 타구가 3루수 정면으로 향하며 아웃됐다.
커쇼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더그아웃으로 향하며 상대 팀 보치 감독을 향해 모자를 벗으며 경의를 표했고, 범가너를 향해서도 손동작으로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다. 커쇼는 경기가 끝난 뒤 “범가너가 팬들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구단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팀을 떠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그를 기념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고교 때 한 경기 모든 타자 삼진 ‘괴력’
다저스와 자이언츠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라이벌 팀이다. 원래 미국 동부지역 뉴욕을 연고로 74년 동안 라이벌 대결을 펼치다 1958년 연고지를 나란히 서부로 옮겨 라이벌 대결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두 팀에 걸출한 좌완 투수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라이벌 대결을 펼쳤다.
커쇼는 고3 때이던 2006년에 13승 무패, 평균자책점 0.77을 기록했다. 64이닝을 던지면서 탈삼진을 무려 139개나 잡았는데 9이닝당 탈삼진이 무려 19.6개, 거의 20개에 이르렀다. 저스틴 노스웨스트고등학교와 플레이오프에서는 모든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물론 10-0 콜드게임이 되면서 9회까지 던진 것은 아니다.
범가너는 고등학교 때 투타를 겸비한 선수로 주목받았는데, 과거에 커쇼를 상대로 홈런을 친 뒤 “범가너는 고등학교 때 탈삼진만큼 홈런을 친 선수였다”며 MLB닷컴이 범가너의 장타력을 칭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는 완벽하게 타자를 속일 수 있는 변화구를 던지지 못한 것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커쇼는 2006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7순위로 다저스에 지명됐고, 데뷔 첫해이던 2008년 5승 5패 평균자책 4.26에 그쳤지만 107⅔이닝 동안 탈삼진을 100개를 잡아내며 가능성을 보였다.
범가너는 이듬해인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0순위로 자이언츠에 지명됐다. 역시 팀 내 유망주 1위로 기대를 모으다가 2009년 9월 로스터 확장 때 메이저리그로 승격돼 구단 역사상 두 번째로 어린 20세 38일 만에 메이저리그 선발 데뷔전을 치렀다.
두 투수의 통산 기록을 보면 커쇼는 12시즌 동안 169승 74패 평균자책 2.44를 기록했고, 범가너는 11시즌 동안 119승 92패 평균자책 3.13을 찍었다. 다승과 평균자책 모두 커쇼가 앞서 있다.
커쇼는 또 20승 이상을 두 번이나 달성했고 1점대 평균자책도 세 번이나 기록했다. 반면 범가너는 18승이 최다승이고 1점대 평균자책점도 기록한 적이 없다.
하지만 범가너는 포스트시즌에서 눈부신 성적을 남겼다. 통산 네 번의 포스트시즌에서 16경기에 등판해 8승 3패 1세이브, 평균자책 2.11의 좋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가 3개나 되는데, 월드시리즈 통산 다섯 경기에서 4승 1세이브 평균자책 0.25의 경이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기록은 월드시리즈에서 30이닝 이상 던진 투수 가운데 메이저리그 역사상 1위다. 36이닝을 던지는 동안 실점은 딱 1점에 그쳤다.
반면 커쇼는 통산 아홉 번이나 포스트시즌을 경험하면서 32경기나 등판했지만 9승 11패 1세이브로 승보다 패가 더 많고, 평균자책점도 4.43으로 범가너의 두 배가 넘는다. 올해도 워싱턴과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 마지막 5차전에서 구원 등판했다가 8회 초 앤서니 렌던과 후안 소토에게 연속 타자 홈런을 맞아 3-3 동점을 허용했다. 결국 다저스는 3-7로 역전패해 가을야구를 조기에 마감하고 말았다.
월드시리즈 통산 4승 1세이브 ‘불패’
두 선수는 통산 열한 번이나 선발 맞대결을 벌였다. 같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 속해 있다 보니 맞대결이 잦았다. 커쇼는 11경기에서 80이닝을 던졌고, 3승 4패 평균자책점 1.91로 압도적인 투구를 했다. 범가너도 11경기에서 69⅓이닝을 투구하면서 4승 3패 평균자책점 2.60으로 커쇼보다 1승을 더 따냈다.
두 선수는 타격에도 재능이 있는데, 범가너가 커쇼에게 홈런을 친 적도 있다. 2015년 5월 22일 경기였는데, 결국 이 홈런이 결승 홈런이 됐다. 커쇼가 투수에게 홈런을 허용한 것은 이 경기가 처음이었다. 범가너는 승리투수와 승리타점을 동시에 거머쥐는 기쁨을 누렸다.
그런데 커쇼도 샌프란시스코를 상대로 승리투수와 결승 홈런을 친 적이 있다. 2013년 4월 2일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린 개막전이었다. 당시 커쇼는 샌프란시스코 선발투수 맷 케인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날렸고, 완봉승을 거두며 승리투수와 결승 홈런을 동시에 달성한 주인공이 됐다. 역대 개막전에서 홈런을 날리고 완봉승을 따낸 선수는 1953년 당시 클리블랜드의 밥 레먼 이후 무려 60년 만의 일이었다.
커쇼는 올해 가을야구에서 좌절한 이후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 범가너는 새 시즌부터 다른 팀 유니폼을 입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심기일전하는 두 선수가 새 시즌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라이벌 대결을 이어갈지 궁금하다.
김동훈_ <한겨레>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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