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0월 16일 경남 창원시 경남대학교에서 ‘부마 1979: 위대한 민주여정의 시작’이라는 주제로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부마민주항쟁 기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열리는 정부 차원의 첫 번째 기념식이었다. 부마민주항쟁이 시작된 1979년 10월 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안’은 9월 17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됐다. 부마민주항쟁 기념일이 국가기념일이 되면서 40주년을 맞는 올해부터 정부 주관으로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이전까지는 부산과 창원 지역의 부마항쟁 기념사업 관련 단체들이 따로 기념식을 열었다.
그동안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부산과 창원, 경상남도의 지자체와 협력해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국회 토론회와 지정 촉구대회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해온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의 이사장인 송기인(81) 신부는 “부산·마산 지역에서 민주주의의 불꽃이 피어난 지 40년 만에 우리는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이라는 뜻깊은 결실을 이뤄냈다”며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이 7월 4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순회전시 <부마 1979·유신의 심장을 쏘다!> 개막식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국민 모두 ‘우리의 부마’로 기억해야”
-먼저 부마민주항쟁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부마민주항쟁은 40년 전 유신독재를 무너뜨린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입니다. 정부를 거스르는 이야기를 하면 당장 잡아가던 엄혹한 시절에 부산과 마산 시민들이 대규모로 일어나 독재 반대를 외쳤던, 시민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입니다. 그 사건이 있은 뒤로 대한민국은 대단한 변혁을 겪었습니다. 당장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 사망했고, 그다음 해에 일어난 5·18민주화운동은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이라는 의미에서 부마민주항쟁과 결이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당장 군부독재를 몰아내지 못했지만 1987년 6·10항쟁으로 드디어 대통령직선제를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촛불혁명까지 도도한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큰 줄기에 있는 사건들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부마민주항쟁이 지니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오늘날 부마민주항쟁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40년 전 평범한 대학생, 회사원, 고등학생, 상인, 노동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민주주의를 향한 용감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이 걸음은 이듬해 5월 광주로, 1987년에는 전국을 뒤흔드는 외침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촛불혁명으로 다시 한번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민주 시민임을 보여주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은 어느 한 지역의 국한된 민주화운동이 아닌 국민 모두에게 ‘우리의 부마’로 기억해야 할 역사입니다. 군부독재에 항거해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을 외쳤던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며 우리가 향유하는 민주주의가 결코 가볍게 이룩된 것이 아님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부마민주항쟁은 그 역사적 의미, 성과와 비교하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은 지난 40년 동안 잊힌 역사, 지역의 미미한 사건으로 취급되어 여타 민주화운동에 비해 현저히 저평가된 게 사실입니다. 우선 다음 해 일어난 5·18민주화운동의 희생이 워낙 컸기 때문에 부마민주항쟁을 기억하자는 목소리가 작을 수밖에 없었고, 부마민주항쟁은 그 역사적 의미보다 과소평가되고 지역의 미미한 사건 정도로 치부되었습니다. 또 부마민주항쟁 직후 일어난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이 부마민주항쟁의 의미를 퇴색시킨 면이 있습니다. 분노로 들고일어났던 시민들이지만 대통령 사망 뒤에는 전 국가적인 애도 분위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마민주항쟁으로 잡혀 들어가서 국가 폭력의 희생자가 된 분들이 매우 많은데 그분들의 고통은 이런 국가적 상황으로 인해 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전두환 정권이 집권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렇게 부마민주항쟁 이후 군부독재를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 상황도 항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데 작용을 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유가족으로 구성된 ‘소나무합창단’이 10월 16일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서 지역 청소년과 함께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공연을 하고 있다.│연합
“진상조사 기간 연장이 시급한 과제”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재단은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부산과 경남의 지자체와 협력해 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국회 토론회와 지정 촉구대회를 개최하는 등 시민들의 의지를 모으는 적극적인 활동을 해왔습니다. 이제야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다는 것은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승인이 40년 만에 이뤄졌다는 의미입니다. 그 말은 지난 40년 동안 부마민주항쟁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고, 항쟁 당시 국가 폭력의 희생자가 된 분들의 고통은 망각되었고, 자신의 정당한 행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많이 늦었지만 이번 국가기념일 지정을 통해 그분들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바라고 부마민주항쟁의 의미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길 바랍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무엇이 있을까요?
=지난 40년 동안 쌓인 과제가 매우 많습니다. 시급한 과제로는 법률 개정을 통해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 기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3년의 조사 기간에 더해 1년이 연장되었지만 지난 40년 동안 사회적 기반이 워낙 부족했기 때문에 4년만으로는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기에 부족합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조사 기간을 연장해야 합니다. 또 부마민주항쟁보호법상 생활지원금 대상자가 현재 30일 이상 구금자로 한정되어 있는데 이 기간을 줄이는 법 개정도 필요합니다. 박정희의 갑작스러운 사망 등으로 단기간에 끝나버린 부마민주항쟁의 특수성 때문에 많은 당사자의 구금 기간이 30일을 넘지 않는 상황이거든요. 또 이 조항이 항쟁 관련자 신고와 진상규명 작업에 당사자들의 참여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는 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2014년 10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 보고서가 부실 논란을 빚으며 조건부로 채택되었습니다.
=현재 보고서 작업이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수정·보완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올해 말까지 진상조사가 마무리되면 내년에 수정 작업을 완료할 예정인데, 저희는 그때까지 계속 상황을 지켜보면서 제대로 된 보고서가 만들어지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겠습니다.
-부마민주항쟁 관련 단체가 여러 곳 있는데 소통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현재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회에 여러 관련 단체의 대표가 참가해 활발한 소통을 하고 있고 국가기념일 지정이나 법률 개정, 진상규명 등 집중해야 할 현안에는 함께 대응해가고 있습니다. 또 각 단체가 나름의 특성을 갖고 활동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재단 활동에 반영되는 데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아직은 단일화하기보다는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제학술대회와 다양한 문화행사 기획”
-올해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 추진해온 주요 사업은 무엇입니까?
=우선 진상규명을 위한 학술연구 사업과 사료 사업을 중점적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행사로는 10월 16일에 열린 ‘40주년 기념식’이 가장 큰 행사입니다. 17~19일 ‘부마민주항쟁 국제학술대회’ 등 여러 학술 행사도 기획했습니다. 40주년 기념 전시인 <부마 1979·유신의 심장을 쏘다!>는 7월 4일 서울에서 개막해 10월까지 광주, 창원, 부산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10월 3~12일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 ‘부마 섹션’을 마련해 부마민주항쟁 관련 영화를 상영했고, 12일에는 광복동 시티스폿에서 상황 재연 문화제를 열어 1979년 10월 16일의 현장을 예술로 재현했습니다. 직접 참여한 시민들은 당시의 생생한 현장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시민참여 공연예술축제’ ‘전국민주 시민합창축전’ ‘부마민주음악제’ ‘부마민주영화제’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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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