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아베 규탄 촛불문화제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아빠가 자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한겨레
10월 11일로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경제보복을 단행한 지 100일이 흘렀다. 7월 1일 반도체 관련 소재의 수출규제를 발표한 일본 정부는 예고했던 조치를 차례대로 행동으로 옮겼다. 차분히 대응하던 우리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비롯해 국제법·국내법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단호히 취해나갔다. 대외적으로는 일본의 부당성을 알리면서 내부적으로는 핵심부품 소재의 국산화 비율을 높여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로 삼는 ‘투 트랙’ 전략을 펴고 있다. 반도체 기업들은 국산화, 수입 다변화 등으로 산업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하며 생산 차질 없이 위기에 대처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자발적 실천으로 시작된 일본 불매운동(NO 재팬)은 수그러들기는커녕 일상으로 자리 잡으며 7~8월 일본의 생산유발 감소액은 한국의 9배에 달했다.
7월 1일 일본의 제1차 경제보복 조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첫 배상 판결이 나온 지 8개월여 만인 7월 1일 일본 정부는 반도체 제조 등에 필요한 핵심 소재의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하며 첫 번째 경제보복에 나섰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해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강화한다고 이날 밝혔다.
대상 품목은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기판 제작 때 쓰는 감광제인 레지스트,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였다. 이들 3개 품목을 한국에 수출하는 일본 기업은 한 번 포괄적 허가를 받으면 3년 동안 개별 품목에 대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포괄허가’를 부여하던 우대 조치가 7월 4일부터 폐지되면서 개별 제품을 수출할 때마다 주무 부처인 경제산업성에 수출 허가를 신청해 심사를 통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수출 계약마다 최대 90일이 걸리는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기에 수출 절차가 까다로워진 것이다.
7월 8일 정부, 일본에 성의 있는 협의 촉구
문재인 대통령은 7월 8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한국 기업들에 실제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일본 측의 조치 철회와 양국 간 성의 있는 협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7월 10일에는 청와대에서 삼성, 현대차, LG, SK, 롯데 5대 그룹을 포함한 자산 규모 10조 이상 대기업 30개사와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단체 4곳이 참석한 경제계 주요 인사 초청 간담회에서 “이번 일을 우리 주력산업의 핵심기술, 핵심부품 및 소재, 장비 국산화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특히 특정 국가 의존형 산업구조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수입 다변화와 국내 생산 확대 지원 △인허가 등 행정절차 최소·신속화 △기술 개발, 공정 테스트 등에 필요한 예산의 추가경정예산 반영 등 정부의 지원책도 내놓았다.
정부는 7월 23~2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일반이사회에서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 조치가 WTO 규범 위반이자 글로벌 공급망을 흔드는 위험한 행위라는 점을 회원국에 역설했다.
8월 2일 일본, 백색국가서 한국 제외 의결
일본 정부는 제2차 경제보복 조치로 수출관리 상의 일반 포괄허가 대상인 ‘백색국가(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8월 2일 아베 신조 총리 주재로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와 백색국가 제외 방침이 부당하다며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보냈지만, 일본 정부는 8월 28일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개정 수출무역관리령을 그대로 시행했다.
백색국가는 군사 목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물품이나 기술을 일본 기업이 수출할 때 일본 정부가 승인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나라다. 2004년 백색국가에 지정된 한국은 백색국가 27개국 가운데 명단에서 빠지는 첫 나라로 기록됐다. 한국에 전략물자를 수출하는 일본 기업들은 그동안 3년 단위로 1번 심사를 받으면 개별 허가를 안 받아도 되는 ‘일반 포괄허가’를 거쳤지만, 이번 조치로 개별 허가를 받거나 훨씬 까다로운 ‘특별 일반 포괄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본 정부가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이 규제 강화의 대상이 된 셈이다.
▶한겨레
8월 22일 정부, 지소미아 종료 결정
일본 정부가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하기로 의결한 8월 2일 우리 정부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종합 대응계획을 발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8월 12일 기존 백색국가(가 지역)를 세분화해 일본을 ‘가의 2 지역’으로 재분류하는 내용의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은 20일 동안 의견수렴과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9월 18일부터 시행됐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전략물자 국제 수출통제 체제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게 제도를 운용하고 있거나 부적절한 운영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국가와는 긴밀한 국제공조가 어려우므로 이를 고려한 수출통제 제도의 미세 조정이 필요하다”고 개정 이유를 밝혔다.
이어 8월 22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한다는 취지로 맺었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16년 11월 체결된 지소미아는 3년이 채 안 돼 소멸하게 됐다. 청와대는 다만 일본이 부당한 보복을 철회해 한일 우호협력이 회복되면 지소미아를 포함한 여러 조치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9월 11일 정부, WTO에 일본 조치 제소
9월 11일에는 일본 수출규제 조치를 WTO에 제소했다. 제소장 효력을 지닌 한국 정부의 협의 요청서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TO 사무국과 일본대사관에 전달됐고, 일본 정부 역시 같은 창구를 통해 양자협의 수락 의사를 공식 서한으로 통보했다. 앞으로 두 달여 동안 진행되는 양자협의에서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WTO에 재판부에 해당하는 패널 설치를 요청하게 된다. 최종심에서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 2∼3년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국내의 반발이 확산되면서 8월 22일 서울 김포공항을 출발해 일본 하네다로 가는 전 일본공수(ANA) 출국 수속 창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한겨레
10월 11일 일본 수출규제 조치 100일
100일 동안 이어진 일본의 수출규제는 한국보다 일본에 더 큰 타격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10월 1일 산업부에 따르면 7∼8월 한국의 대(對)일본 수출 감소율은 -3.5%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일본의 대한국 수출 감소율은 한국의 두 배가 넘는 -8.1%였다. 8월만 봐도 한국의 대일본 수출은 6.6% 줄어든 데 비해 일본의 대한국 수출은 이보다 큰 9.4%가 감소했다.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글로벌 통상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이 3위 수출국인 한국으로 수출을 제한하면서 자국의 수출을 더욱 줄이는 악수를 둔 셈이 됐다.
7~8월 양국 관광객 변화에 따른 일본의 생산유발 감소액은 한국의 9배에 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10월 6일 발표한 ‘2019년 여름 휴가철(7∼8월) 한일 여행의 경제적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한국 관광객 축소에 따른 일본의 생산유발 감소액이 3537억 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한국 생산유발 감소액(399억 원)의 9배에 달하는 규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관광공사와 일본정부관광국에서 발표한 방문자 수와 여행 항목별 지출액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 기간 평균 원/엔 환율을 적용해 이같이 추산했다. 이 기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87만 400명으로 2018년 같은 기간보다 27.6%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방한 일본인은 60만 4482명으로 오히려 10.3% 증가했다. 일본의 생산유발액은 2018년 7∼8월 1조 3186억 원에서 올해 같은 기간 9649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한국의 생산유발액은 2018년 1조 1898억 원에서 올해 1조 1499억 원으로 소폭 줄었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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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