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기본 배우·감독 만나고 이벤트 북적

2019.10.14 최신호 보기


l▶10월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부산국제영화제

“여기서 사진 한 장 찍어줘!” 자기 키보다 두 배 이상 큰 포스터 앞에서 다양한 포즈로 인증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고레에다 히로카즈), <어른의 부재>(코스타 가브라스), <기생충>(봉준호) 앞은 특히 인기를 끈 포스터 포토존이었다. 10월 5일 토요일 오전 9시 20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영화제) 거점인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앞 거리는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

l▶10월 4일 부산 중구 남포동 비프광장에서 ‘김지미를 아시나요’ 행사가 열리고 있다.

포스터들 사이사이 마련된 파라솔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손에는 작은 책자가 들려 있었다. 다름 아닌 영화제 티켓 카탈로그. “저쪽 매표소 가서 티켓 남았는지 알아봐.” 서울에서 온 30대 이진영 씨가 친구에게 외쳤다. 그는 “친구와 함께 밤 12시부터 아침까지 영화 세 편을 상영하는 ‘미드나잇 패션’ 티켓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축제니까 영화도 많이 보고 최대한 즐겨야죠. 어제 왔는데 체험하고, 무대인사 구경하다 보니 하루가 금방 가버리더라고요.”

l▶10월 6일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정일성 촬영감독이 핸드 프린팅을 공개하고 있다.

11시경. 포스터가 있던 거리를 등지고 ‘비프힐’로 들어가자 ‘즐길 것’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니 ‘가상현실(VR) 시어터’에서 VR 헤드셋을 쓰고 영화를 오감으로 체험하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영화제 측과 (주)바른손이 공동주최한 ‘VR 시네마 in BIFF’ 일환의 프로그램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비프샵’에서 영화제 굿즈를 사려고 긴 줄을 선 사람들이 보였다. 주변에서 영화제 로고가 그려진 벽과 영화 캐릭터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한국영화 100년 퀴즈’ 등 이벤트에 참여하는 이들도 많았다.

l▶10월 5일 오전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생일> 야외무대 인사가 열려 이종언 감독과 배우 전도연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체험하고 구경하다 보니 하루가 금방”
야외로 나가 두레라움광장으로 향하자 야외무대, 북라운지, 비프(BIFF) 오픈 갤러리 등이 진수성찬처럼 펼쳐졌다. 두레라움은 순우리말인 ‘두레’(함께 모여)와 ‘라움’(즐거움)을 조합해 만든 말로 ‘함께 모여 영화를 즐기는 자리’라는 뜻. 그 의미처럼 두레라움광장은 영화제를 만끽하러 온 사람들이 둘러앉아 시끌벅적 이야기를 나누고, 편하게 놀 수 있는 한마당이었다. 광장 중간중간 놓인 의자에 앉아 친구들과 쉬는 이들부터 ‘오늘은 내가 감독!’ 코너에 놓인 감독 의자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거나 북라운지에 꽂힌 책을 펼쳐보는 이들 등 각자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l▶10월 5일 오후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코스타 가브라스 & 박찬욱’ 오픈토크가 열리고 있다.

“천우희 무대인사 시간이야!” 2시 15분경, 두레라움광장에 있던 이들이 영화 <버티고>의 야외무대 인사를 알리는 방송을 듣고 야외극장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영화제 기간 내내 야외극장은 개막식을 비롯해 <엑시트> <극한 직업> <니나 내나> 등 여러 영화의 무대인사와 화제의 영화인들이 등장해 오픈토크를 하는 메인 무대였다.

l▶10월 4일 오후 중구 남포동 광장에서 영화 <종이꽃> 야외무대 인사가 열려 안성기, 유진 등 배우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0월 3일부터 12일까지 열흘간 열린 올해 영화제에는 예년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2018년까지 해운대 백사장에 차려진 ‘비프 빌리지’에서 오픈토크, 야외무대 인사 등 각종 행사가 열리고, ‘영화의전당’을 비롯한 센텀시티 극장들에서 초청작이 상영되었다면, 올해 영화제는 행사와 상영을 영화의전당 주변으로 일원화했다. 영화제 측은 “지난 몇 년간 영화제 기간에 닥친 태풍 탓에 관객 서비스가 부실해졌고, 협찬사들의 부스 피해도 막대했다”며 “올해는 행사 공간과 상영 공간을 영화의전당으로 집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해운대 바닷가의 낭만이 사라져 아쉽긴 하지만 더 효율적으로 영화제를 즐길 수 있었다는 게 관람객들의 중론이었다. 10월 5일 오후 소나기가 쏟아지기도 했지만 영화의전당 지붕이 있어 야외 행사를 치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l▶10월 5일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영화 <버티고> 야외무대 인사가 열려 배우 천우희가 관객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영화인과 시민 DJ 생방송 라디오 진행
과거 영화제의 태동지인 부산 중구 남포동 ‘비프광장’이 활기를 띠었다는 점도 올해 특징이었다. 남포동거리 롯데시네마 대영 등에서는 9년 만에 출품작이 상영됐다. 남포동에선 ‘커뮤니티 비프’라는 이름으로 ‘관객이 주도하는 참여형 행사’들이 풍성하게 열렸다. 관객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직접 신청해 일정 인원이 되면 상영하는 ‘리퀘스트 시네마’, 비프광장 이동식 스튜디오에서 영화인과 시민 DJ가 생방송으로 라디오를 진행하는 ‘bifFM 94.1Mhz’ 등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비프광장 중앙 무대에선 거의 매일 약 1시간 간격으로 야외무대 인사가 열렸다. 10월 4일 오전 12시 <종이꽃>의 배우 안성기와 유진 등이 등장하자 남포동 일대 분위기는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 열기는 오후 ‘김지미를 아시나요’ 특별 행사까지 이어졌다. 배우 김지미 토크 시간에는 원로배우들과 부산 시민이 자리를 꽉 채웠다. 3시 30분경 김지미가 등장하자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며 무대로 올라가려는 시민도 있었다. 부산 영도구에서 왔다는 70대 이영희 씨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영화제 기간에 남포동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고, 스타도 정말 많이 왔다. 그때 기분을 오랜만에 느끼면서 명배우 김지미 씨 얼굴을 직접 보게 되니 정말 좋다”고 말했다.

l▶10월 5일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부산국제영화제

2014년 <다이빙벨> 상영을 두고 불거진 외압 사태 등 어려움을 겪어온 영화제는 2018년 ‘정상화’를, 올해는 ‘재도약’을 내세웠다. 영화제는 대대적인 조직·인사·프로그램 개편을 거쳐 올해 85개국 영화 303편을 상영했다. 세계 최초로 상영하는 월드 프리미어는 장편 97편, 단편 23편 등 120편으로 역대 최다 수준이었다.
초청받은 여러 감독 중에서도 2018년 칸영화제에서 <어느 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향한 관객 반응은 특히 뜨거웠다. 10월 5일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 그는 국내 열혈 팬들의 사인 요청에 행사가 끝나고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영화제와 각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는 내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줄곧 같은 세월을 함께 걸어온 영화제”라며 “숱한 고난을 극복하며 함께 발전해온 영화제이기도 하기에 이 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여러분과 그 시간을 함께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l▶10월 4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홀 앞 거리를 걷는 사람들

10월 6일 오전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열린 ‘코스타 가브라스 & 박찬욱 감독’ 오픈토크도 영화 마니아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치러졌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한국 영화는 특별하다.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고 저마다 특색이 있어 각광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 영화는 최근 베니스영화제나 칸영화제 등에서 많은 초청을 받고, 수상도 많이 하고 있다. 특히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여러 편 봤다”고 말했다.
<더 킹: 헨리 5세>는 온라인 예매가 시작한 지 1분여 만에 매진될 정도로 큰 기대를 모은 작품이었다. 이 영화를 비롯해 <결혼 이야기> <두 교황> <내 몸이 사라졌다> 등 올해 총 4편의 넷플릭스 영화가 초청된 점도 특이할 만한 점이었다.

l▶영화의전당 앞 포스터들로 즐비한 거리

정일성 촬영감독 핸드 프린팅 주인공
한국 영화 100년을 맞는 올해 관련 행사도 다채로웠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국 영화 100년사, 위대한 정전 10선’ 특별전이 열렸고, <하녀> <오발탄> <바보들의 행진> <서편제>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등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 10편이 관객과 다시 만났다. 영화 상영 외에도 국내외 명망 높은 영화인들이 특별 게스트로 참여하는 ‘스페셜 토크’ 시간이 마련됐다.
올해 핸드 프린팅 행사의 주인공인 정일성 촬영감독은 한국 영화 100년의 의미를 더욱 빛나게 해줬다. 1957년 영화 <지상의 비극>으로 데뷔한 이후 <화녀> <최후의 증인> <만다라> <춘향뎐> <천년학> 등의 촬영을 담당한 정 감독은 ‘마스터 클래스’ 행사를 통해 자신의 예술 세계와 영화 인생을 되짚어보는 시간도 가졌다.

l▶10월 4일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소통과 공감에 초점 맞춘 기획 돋보여
“배우와 감독, 열성적인 관객뿐 아니라 소외, 소수 계층을 아우르고 아시아가 하나 되는 ‘공감하는 영화제’로 나아가겠습니다.”
이용관 영화제 이사장은 올해 영화제에 ‘재도약’의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기자회견을 통해 구체적인 방향을 이렇게 밝혔다. 실제 영화제 곳곳에서 ‘소통’과 ‘공감’에 주목한 기획과 운영이 돋보였다. 개막식은 국경을 뛰어넘은 화합의 분위기로 채워졌다. 태국 난민캠프에서 생활하다 한국에 정착한 미얀마 난민 소녀 완이화, 소양보육원의 소양무지개오케스트라 바이올리니스트 브룩 킴, 안산문화재단 안녕?! 오케스트라, 부산시립소년소녀 합창단, 김해문화재단 글로벗합창단이 개막식 축하 공연을 펼쳤다. 총 246명의 하모니가 영화의전당을 가득 울리며 ‘함께하는’ 영화제의 의미를 더욱 빛냈다.

l▶같은 날 남포동 비프광장 이동식 스튜디오에서 영화인과 시민 DJ가 생방송으로 라디오를 진행하는 ‘bifFM 94.1MHz’ 등이시작되자 시민들이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김청연 기자

‘배프 in BIFF’ 프로그램의 하나로 ‘어둠 속의 영화관’이라는 이름의 시각장애체험 영화체험관 부스도 문을 열었다. ‘배프’는 장벽 없는 세상을 의미하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와 절친한 친구를 뜻하는 ‘Best Friend’의 중의적 줄임말. 영화관 밖 한쪽 벽에는 한 참여자가 “영화제에 와서 생각할 거리를 얻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소감을 메모로 남기기도 했다. 10월 4일부터 10일까지 CGV 센텀시티 7관에서는 <졸업> <종이꽃> <생일> 등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영화들이 상영됐다. 일부 상영작은 티켓 판매 수익 일부를 사랑의 열매와 굿네이버스로 기부할 수 있게 해 관람객들에게 나눔에 참여할 기회를 선사했다.

김청연 기자

안 보면 후회할 주목! 이 영화

l

<레 미제라블> 레주 리 감독, 프랑스
프랑스 파리 슬럼가인 몽페르메유를 배경으로 부패한 경찰과 범죄 조직이 빈민가를 장악하는 중에 벌어지는 참극을 다룬 영화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과 제목, 배경이 같다. 경찰이 폭력 사건을 덮는 데 급급하면서 더 큰 폭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레주 리 감독이 실제 경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더 눈길을 끈다. “프랑스나 도처에 있는 모든 비참한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 감독의 칸영화제 수상 소감이다.

l

<니나 내나> 이동은 감독, 한국
삼남매에게 어느 날 한 장의 엽서가 도착한다. 오래전 가족을 떠난 엄마가 보낸 “보고 싶다”는 한 문장만 적힌 엽서를 보고 엄마를 만나기 위한 여행길에 오른다. 각자 상처를 안고 살아온 삼남매가 엄마를 만나러 가는 여정에서 벌어지는 용서와 화해를 그린 영화다. ‘니나 내나’는 ‘서로 사는 모습이 달라도, 결국 너나 나나 비슷하다’는 뜻을 지닌 ‘너나 나나’의 경상도 사투리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된 작품. 장혜진, 태인호, 이가섭 등 연기파 배우들이 등장한다.

l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일본
나이가 들어서도 여왕처럼 군림하며 사는 프랑스 영화계 대스타 파비안느. 어느 날 자서전 출간을 앞두고 미국에 사는 딸 뤼미에르가 남편, 어린 딸과 친정집을 찾지만, 모녀 사이에선 갈등과 대립만 이어진다. 뤼미에르는 어린 시절 엄마가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게 서운한데 자서전엔 전혀 반대로 적혀 있다. 프랑스 영화의 살아 있는 두 전설 카트린 드뇌브와 줄리엣 비노슈가 각각 어머니와 딸로 만나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올해 베니스영화제 개막작.

l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이탈리아·아르헨티나
교회의 통솔에 좌절감을 느낀 추기경 베르골리오는 2012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은퇴를 허가해달라고 청한다. 한편, 추문과 자기 회의에 직면한 내성적인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을 가장 심하게 비판하던 후계자를 로마로 불러들여 가톨릭교회의 근간을 뒤흔들 비밀을 폭로하려 한다. 넷플릭스가 제작하고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자진 사임으로 바티칸을 흔든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그 뒤를 이은 교황 프란치스코의 실화를 다룬다. 권력 이양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김청연 기자

관련기사

페이지 맨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