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내린 다음 날이었다. 내가 사는 인천시 미추홀구 관교동 중앙공원은 떨어진 나뭇잎들로 장관을 이루었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노랗고 빨갛게 물든 낙엽이 쌓인 공원은 한층 운치가 있었다. 낙엽을 밟을 때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뒹구는 낙엽들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문득 이효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에서 낙엽을 태우면 ‘생의 의욕과 활기를 느낀다’는 문구도 떠올랐다.
일요일이어선지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원으로 산책을 나와 저마다 낙엽 길을 즐기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걷는 이들, 단풍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 여기저기 뛰노는 아이들….
그 모습을 보면서 지나간 시간을 떠올려보았다. 나도 저렇게 젊은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반세기가 훌쩍 지나 추억이 되었다. 만나면 웃고 재잘거렸던 그 많은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와 함께 청운의 꿈을 꾸었던 친구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춘기 시절 나는 한 장의 지폐보다 낙엽이 좋았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고, 노래하고 싶은 것을 노래할 수 있어서다. 또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맘때 찾을 만한 운치 있는 낙엽 길을 몇 군데 알고 있다. 그 길들은 고궁이나 사찰을 끼고 있기도 하고 작은 숲길을 이루기도 한다. 도심 속에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걷기 평탄한 길로 대부분 자연 그대로 보존해 찾을 때마다 삶의 활력을 주고 힐링이 되는 공간이다.
서울 덕수궁 돌담길은 연인들의 거리로 유명하다. 젊은이라면 그 길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왜 그럴까? 돌담길을 끼고 도는 길도 길이지만 시처럼 떨어지는 고궁의 낙엽이 한몫했을 듯하다. 서울 석촌호수 둘레길도 빼놓을 수 없다. 도심의 빌딩과 숲, 호수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호젓하게 길이 이어져 가족 단위는 물론 연인들도 많이 찾는다. 석촌호수 둘레길을 걸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생각이 깊어진다. 그래서 현실의 자리에서 한 발짝 물러나 세상을 넓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이 생기기도 한다.
오십 평생의 끝자락에서
잠자리를 걱정하며
석촌호수 빈 의자에 맥없이 앉으니
만감의 상념이 눈앞에서 춤을 춘다
IMF 외환위기 때 노숙자 처지가 된 한 가장이 쓴 시의 일부다. 그는 삶의 여정을 마치려고 석촌호수를 찾았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상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낙엽이 뒹구는 운치 있는 둘레길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 아닐까.
송준용 인천 미추홀구 관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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