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낯섦’ 여행가고 싶은 바닷가 마을로

2019.11.04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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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 인구는 1967년 114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7년 12만 명까지 감소했다. 어촌 고령화는 2003년 15.9%에서 2017년 35.2%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전국 평균 14.2%와 비교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2017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앞으로 50년 안에 63개 섬이 무인도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어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정부가 발 벗고 나선 사업이 ‘어촌뉴딜 300’이다. 정주 환경을 개선하고 관광을 활성화해 어가 수입을 다변화하는 한편, 혁신성장을 견인한다는 계획이다. ‘가기 쉬운 어촌, 찾고 싶은 어촌, 활력 넘치는 어촌’을 지향하며 해양수산부는 2018년 9월부터 지방자치단체 공모를 실시해 70개소를 뉴딜 사업지로 선정했다. 2022년까지 총 300개소의 어촌·어항을 현대화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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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8대 선도사업으로 선정된 부산 기장군 동암마을을 다녀왔다. 인근 대규모 관광단지와 고급 숙박시설 가운데 홀로 개발되지 못한 동암마을 주민들은 마을기업을 설립해 새로운 해산물 레시피를 개발하고, 해녀들의 이야기를 관광 콘텐츠로 만들 계획이다. 본격적인 사업 시행에 앞서 현장 자문단을 파견해 친환경적이고 주민 주도적인 사업을 이끌고 있는 김창균 해수부 혁신성장일자리기획단 부단장을 인터뷰했다.

ㅣ▶해녀회관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주민들

선도사업 선정 부산 기장군 동암마을
“기대가 되지요. 학생들도 오고 마을이 알려지면 좋겠어요. 인근에 호텔, 용궁사, 국립수산과학관이 있는데 그 중간에 마을이 위치하기 때문에 정책이 잘되면 괜찮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어업은 잘될 때도 있고, 잘 안 될 때도 있고요.”
10월 8일 부산시 기장군 시랑리 동암마을에서 만난 주민 최윤정(58) 씨는 해녀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해녀회관 1층에는 이곳에서 잡아 올린 생선이 점심상에 올라와 있다. 동암마을에서 6성급 호텔은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동암마을 인근에 자리한 아난티코브는 ‘힐튼 부산 호텔’과 회원제 리조트인 ‘아난티 펜트하우스’ 등으로 구성된 고급 숙소다. 아난티코브 인근으로 부산시는 364만㎡(약 110만 평) 규모의 오시리아 관광단지를 조성 중이다. 각종 쇼핑몰과 테마파크가 들어선다. 이 화려한 개발 열풍의 한가운데 자리한 동암마을 주민들은 매년 용왕제를 지내며,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한다.

ㅣ▶어업이 주요 소득원인 동암마을의 붉은 등대 앞으로 배가 정박해 있다.

해안가를 동그랗게 감싼 동암마을에 외지인이 와도 관광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아난티코브가 조성한 해안 산책로를 걷기 위해 관광객들은 동암마을에 차를 세우고 곧장 호텔로 빠져나갔다. 관광객 인파에 주말마다 차가 밀렸고,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기에도 예전처럼 고기가 잘 잡히지 않았다. 화려한 관광지와는 어울리지 않게, 덩그러니 다른 분위기를 내는 어촌 마을에 최근 새로운 사업이 시작됐다. 
해양수산부가 주관하는 ‘어촌뉴딜 300’ 사업이다. 해수부는 5월 화성시 백미항,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 일원,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 부산시 기장군 동암항 등을 8대 선도사업 대상지로 선정했다. 8대 선도사업 가운데 마을개발 기업과 공간 디자인 업체가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동암마을의 행보는 눈에 띈다. 경리단길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 비슷한 길들이 생겨나는 가운데 마을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드는 게 세계적 추세다. 마을에서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행태가 하나의 문화 활동이 됐다.

브랜딩과 공간 디자인을 아우르는 ‘아뜰리에 제이’ 이지연 대표를 동암마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항구에 자리한 불법 난전, 미적 감각이 전혀 보이지 않는 해녀회관까지 이 대표가 처음 동암항을 찾았을 때는 어떤 개성도 느낄 수 없었다. 몇 차례 방문이 이어지면서 이 마을만이 줄 수 있는 편안한 정취와 개성을 발견하는 중이다. 

ㅣ▶부산 기장군 동암마을 인근에 자리한 고급 숙소 아난티코브 앞으로 폐선박이 놓여 있다.

직접 잡은 해산물로 다양한 메뉴 개발
이 대표는 “주변이 개발되었지만 동암마을은 관광객을 맞을 준비를 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외부인이 오는 게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새바람을 막을 수 없게 되면서 마을 내부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졌다”고 설명했다. 동암마을의 고령화는 여느 어촌이 그렇듯 급속히 진행 중이다. 동암마을 시랑리를 기준으로 고령화율은 30.3%에 이르며, 주민의 65%가 어업에 종사한다. 
이 대표가 인근 관광지와 차별점으로 잡은 이곳만의 정서는 ‘따뜻한 낯섦’이다.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이유는 낯섦을 즐기려는 것이죠. 그 낯섦의 종류는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어요. 집에 침대가 있는데 호텔 휴양을 즐기는 것은 집과는 다른 편안함, 고급스러운 공간과 서비스의 낯섦을 즐기는 것이고요. 그런데 우리가 느끼는 여행의 낯섦은 고급문화와 서비스가 전부는 아니에요. 동암이라고 하는 이 작은 마을, 포근하고 아름다운 마을의 지역적 특성을 이어가되 소소한 낯섦을 감성이란 이미지로 구성해야죠. 관광단지에서 줄 수 없는 매력이 동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녀 마을에서 만든 만 원짜리 기념품을 사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로를 걷고, 부담 없이 들렀다 가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동암마을은 주변 관광단지와 연계에도 힘쓰고 있다. 동암마을의 해산물을 활용하는 시푸드존과 인근 힐튼호텔이 상생하는 것이다. 어촌뉴딜 사업을 통해 동암마을 난전에서 해산물을 파는 자영업자를 합법적인 푸드존으로 끌어들이되 메뉴 개발을 호텔이 도울 예정이다. 현재 난전에는 모두 같은 메뉴를 팔아서 상업성이 떨어진다. 각각의 매장에 시그니처 메뉴 개발이 필요해졌다. 
“새로운 레시피 모델로 발전시켜 1차 생산품에 머물러 있던 생산물에 가치를 더할 거예요. 영업소는 안전한 재료를 안정되게 공급받고, 마을 어민은 직접 납품할 수 있는 유통 채널을 확보함으로써 생산자, 판매자,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동암마을과 힐튼호텔은 현재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어요. 예전에도 힐튼호텔 조식에 동암마을 해녀가 잡은 해산물을 서비스하곤 했는데 체계적으로 운영할 마을기업이 없다 보니 하다가 잘되지 않았어요.”(이 대표) 
해녀들이 잡은 신선한 해산물로 만든 도시락을 피크닉 가방으로 즐길 수 있도록 계획 중이다. 야외에서 바다를 보며 식사하고 싶은 소비자를 위한 것이다. 전문가들이 투입돼 레시피를 개발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자문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사업을 주민들이 지속하려면 마을기업이 필요하다. 평택 바람새 마을 등을 컨설팅한 ‘농사GTI’ 최영덕 소장이 마을기업 설립에 참여하고 있다. 최 소장은 “동암항 어촌뉴딜 사업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순서로 진행하는데, 사업 현안과 쟁점 토론 및 시사점 도출을 위한 토론식 교육을 진행해 주민들의 이해를 높일 계획이다. 
동암항 어촌뉴딜 사업의 주요 포인트는 주민 주도의 사업 추진이다. 주민들이 사업 운영, 아이디어 도출, 체험관광 프로그램 개발, 주민공동체 구성을 하게 된다면 향후 행정기관과 전문 기관의 지원이 끝난 후 안정적인 사업 운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을기업 설립 교육은 올해 11월부터 내년 봄까지 이어진다. 실제 마을기업 설립은 내년 중순으로 계획 중이다. 
동암마을에 사는 해녀 51명도 마을기업의 주요 콘텐츠가 된다. 최 소장은 “해녀는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니라 콘텐츠 그 자체다. 어촌의 역사와 전통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포장해 친숙함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지역을 홍보하고 대표하는 지역 콘텐츠로 개발할 수 있다. 최근 정부도 고령 인구 일자리 강화와 소득 증대 사업 등 많은 정책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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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역사와 전통에 현대적 감각 입혀 
농어촌 마을이 대부분 그러하듯 동암마을에도 경관과 어우러질 수 없는 해녀회관이 우뚝 서 있다. 바다 조망을 막는 데다 건축적 미학이 느껴지는 구조물도 아니다. 그러나 어촌뉴딜 사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존재한 건축물이어서 활용도가 필요해졌다. 해녀회관은 해녀들의 삶을 스토리로 풀어가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단지 해녀들이 누구인지 정보 전달을 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바다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문학과 그림으로 풀어내는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이들이 낯설어하는 해조류 등의 식재료를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쿠킹 체험, 해녀와 함께 하는 체험 키트와 아티스트와 협업으로 진행하는 굿즈 등 사업 콘텐츠를 구성해야 한다. 아난티 힐튼을 이용하는 가족 고객, 인근 수산과학관을 찾는 체험학습 관람객 등을 연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암에서 마을기업 설립과 브랜딩을 전개하는 업체들이 내년에도 지속적으로 어촌뉴딜 사업에 뛰어들지는 미지수다. 용역 계약은 1년 단위로 갱신된다.
해양관광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진행되는 사업인 만큼 브랜딩과 건축, 디자인적 요소는 중요하다. 예술과 문화로 주요 관광자원이 된 일본의 대표적인 섬이 나오시마다. 가가와현 다카마쓰에서 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나오시마는 섬 전체가 현대미술관으로 불리는 대표적인 예술·관광자원이다. 과거에는 해운업과 소금 생산으로 유명했으나, 1917년 ‘미쓰비시 광업’이 제련소를 설치하면서 폐기물 처리 문제가 발생했다. 인구 감소 등으로 급격히 침체를 겪었으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1970년대에 폐기물 중간 처리 시설 등을 받아들이는 ‘에코 아일랜드 나오시마 플랜’이 추진됐다. 

ㅣ▶‘아뜰리에 제이’의 이지연 대표 뒤로 아난티코브와 동암마을이 나란히 보인다.

브랜딩과 건축, 디자인 요소 중요
1980년대에는 민간기업인 베네세 그룹의 투자로 나오시마 남부에 호텔, 미술관 등이 설립되면서 예술섬으로 유명해졌다. 특히 2004년 지중미술관 개관, 2010년 세토우치 국제미술제 이후 관광객이 급증해 2018년 기준 관광객 54만 명 가운데 외국인 비중이 50%일 만큼 대표 관광 명소가 됐다. 수산업 위주의 전형적인 어촌 소득 구조에서 벗어나 문화·예술·관광 등 소득원을 다변화해 지속 가능한 발전 기반을 구축한 것이다. 주민들이 지역 재생 프로젝트에 아이디어를 내고, 숙박과 식당 등을 직접 운영하면서 사업 결과물이 지역의 자산이 됐다.
300곳의 어촌에 3조 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인 데다, 정책 초기인 만큼 8대 선도사업 대상지는 일종의 모범적인 테스트 베드 역할을 맡아야 한다. 해수부는 최근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공공부문 건축 디자인 개선 방안을 8대 선도사업에 시범 적용해 디자인 개선을 위한 시험대로 활용할 계획이다. 8대 선도사업에 시범 적용한 결과 등을 토대로 ‘어촌뉴딜형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올해 말까지 마련하고, 2020년도 다른 사업에 확대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앞서 해수부는 7월 ‘디자인 관리업무 지침’을 8대 선도사업지에 적용했다. 김창균 해수부 혁신성장일자리기획단 부단장은 “디자인 관리업무 지침은 사업지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건축물, 경관, 공공 공간을 조성하는 업무 단계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스터플랜 수립 단계부터 시공 단계까지 공간환경 디자인 관리체계 전 과정에 참여해 단계별 공간환경 디자인 내용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코디네이터도 8대 선도사업지에 위촉했다. 
건축도시 분야 국책연구기관인 건축도시공간연구소는 마스터플랜 수립 단계, 기본 및 실시설계 단계, 시공 단계 등 단계별 과정에 참여해 모니터링을 수행할 계획이다. 디자인 검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모니터링 의견을 작성하고 해수부와 각 지자체에 전달한다.
도시보다 발전 속도가 느린 농촌. 최근 농촌에도 귀농 인구가 이어지고 새바람이 불지만, 어촌은 급격한 고령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책의 필요는 분명해졌다. 어촌뉴딜 300 사업이 투입되는 재정만큼 효과를 보려면 앞선 농촌 개발 사례들에서 개선점을 찾고, 젊은 층이 찾고 싶으면서도 사업지마다 개성이 다른 해양관광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전문가와 민간기업, 지역 주민이 어우러져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곳이 기장의 동암마을이다. 

글·사진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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