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놀고 책 보고… 엄마 품처럼 학교와 마을이 함께 돌봐요

2019.09.29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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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5841명. 2018년 신학기에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직장인 가운데 퇴사한 여성들이다. 돌봄 공백은 학부모의 일과 육아 병행을 어렵게 하는 이유로 꼽힌다. 정부는 학교를 마친 아이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시간에 돌봄을 제공하는 ‘온종일 돌봄체계 구축 운영 기본방향’을 2018년 4월 수립했다. 2022년까지 53만 명의 아동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교육부의 초등 돌봄교실, 보건복지부의 다함께 돌봄센터와 지역아동센터,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방과후 아카데미를 늘려가고 있다. 좋은 정책은 시설 마련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떻게 현장에서 운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민간 돌봄 시설보다 더욱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을 다녀왔다. 학부모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대기 학생들이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경남 양산의 웅상청소년아카데미를 찾았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주최한 성평등 콘텐츠 대상 정기 공모전 시상식에서 여성가족부장관상에 해당하는 청소년부 대상을 받은 양산의 초등학생들은 내년 또 다른 다큐멘터리를 구상 중이다. 2018년 2월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은 서울 노원구는 촘촘한 돌봄을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전국 최초의 상시적인 ‘어린이 식당’, 부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 혼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이들을 위한 ‘아픈 아이 돌봄 센터’와 ‘병원 동행 서비스’까지.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아이휴센터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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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아이휴센터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고 부모 없는 집에 들어가는 대신 가방을 메고 해가 질 때까지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 학원을 보낼 수 없는 가정 형편 때문에 부모 없는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 맞벌이 가정이 맞닥뜨려야 할 현실이다. ‘온종일 돌봄정책’은 학교 수업이 끝난 뒤 부모가 올 때까지 빈틈없이 촘촘한 돌봄을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사업이다. 지역 내 돌봄 통합지원시스템을 구축하고 전담 조직을 운영하는 온종일 돌봄 생태계 구축 선도사업 대상지는 서울 구로구, 노원구, 성동구 등 전국 9곳.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서울 노원구다. 노원구는 2013년부터 ‘독서돌봄 마을학교’라는 이름으로 틈새 돌봄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의 부제가 ‘아이휴센터’였다. 구립 지역아동센터가 가장 많은 곳도 노원구다. 전국 지역아동센터 4000곳 가운데 민간을 제외한 공립·구립 시설은 40곳에 그친다. 40곳 가운데 12곳의 지역아동센터가 노원구에 있다.

l▶김정한 노원구 아동친화정책팀장

9월 17일 서울 월계그랑빌 아이휴센터에서 만난 김정한 노원구 아동청소년과 아동친화정책팀장은 아이휴센터의 시작을 이렇게 설명했다. “마들역을 나오는데 태권도 학원 현수막이 걸려 있었어요. ‘일 그만두시지 않아도 됩니다. 방과후 돌봄을 책임지겠다’는 내용이었어요. 그걸 보는데 ‘왜 학원이 돌봄을 책임질까?’ 의문이 들었죠. 공공이 할 역할이라고 생각해 우리 구청에서 돌봄을 시작해보자고 구청장께 제안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사업이 ‘독서돌봄 마을학교’였습니다.”

l▶박서진 선생님과 김희정 월계그랑빌 아이휴센터장(오른쪽)이 아이들 간식을 준비하는 부엌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부모 출근하며 맡기면 등교 전 돌봄도
정부가 추진하는 다함께 돌봄센터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노원구는 예전부터 사용한 명칭인 ‘아이휴센터’를 그대로 쓴다. 아이휴센터의 이용 대상은 맞벌이 가정의 초등학교 1~3학년이다.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초등 돌봄교실과 사업 내용이 일부 겹치지만, 돌봄의 성격은 다르다. 아이휴센터는 아동과 부모의 상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용된다. 이 센터에 다니는 21명의 어린이는 입실과 퇴실 시간이 저마다 다르다. 어린이가 센터에서 쉬다가 학원에 가고, 다시 센터로 돌아오기도 한다. 반면 초등 돌봄교실은 한번 학교 밖으로 나가면 재입실이 안 되기 때문에 학원을 다니는 초등학생들은 이용이 어렵다.
김희정 월계그랑빌 아이휴센터장이 손에 쥐고 있는 ‘아동 이용 현황표’에는 21명의 아동 이용 시간이 저마다 다르게 기재돼 있었다. 센터장 외에 반일제 교사 4명이 이곳에 근무한다. “효상이는 4시인가요? 4시 30분인가요?” “4시요. 어머니한테 문자가 왔어요. 한 번 더 확인했습니다.” 센터에서 선생님들이 아이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확인했다. 어린이는 아이휴센터를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입출입 카드를 찍어야 한다. 부모에게 실시간 문자메시지가 전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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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는 맞벌이 가정이 많은 지역이다. 서울의 동북 지역에 있다 보니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이는 부모가 집에 돌아오기까지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한다. “노원구에서 지하철을 타면 7호선은 건대입구역까지, 4호선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까지 거의 안 내린다고 해요. 그만큼 출퇴근이 오래 걸리죠. 부모가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하면 학교 가기까지 1시간 넘게 아이 혼자 집에 있어야 해요.”
아이휴센터는 일찍 출근하는 맞벌이 가정 아이들을 위해 오전 7시 30분~8시 30분 등교 전 돌봄을 제공한다. 아이휴센터에 자녀를 맡기면 이곳에서 1시간을 보내다 선생님과 함께 등교한다. 노원구는 올 연말까지 아이휴센터 21곳, 2022년까지 40곳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용 시간은 오후 1~7시로, 방학 때는 오전 10시~오후 8시로 연장 운행된다.

서울에서 틈새 돌봄을 위한 시설을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다. 땅값이 비싸고 건물을 짓는다 해도 최소 2~3년이 걸린다. 노원구가 주목한 공간은 아파트 1층이다. 노원구의 주거 공간 가운데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80%로 높은 편이다. 아이들이 10분 안으로 접근할 수 있는 아파트 1층을 전세로 확보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30억 원을 마련했다. “경로당이나 행정복지센터 등 커뮤니티 시설에 돌봄 공간을 넣으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는데 막상 해보면 쉽지 않아요. 하나의 시설을 여러 기능으로 쓰는 과정에서 이해관계 때문에 갈등이 생기더라고요.”

l▶서울 월계동 아이휴센터에서 입출입 카드를 찍는 초등학생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 받아
맞벌이 부부의 또 다른 고충은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 직장에서 당장 달려올 수 없고 아픈 아이 생각에 일에도 집중하기 어렵다. 조기 퇴근을 한다 해도 집에 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노원구청이 6월 내놓은 정책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병원 동행 서비스’다. 아이가 아플 경우 부모가 담당자에게 연락하면, 간호조무사가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료가 끝날 때까지 함께한다. 병원비는 본인이 부담하며 회원제로 운영된다.
“회원제로 운영하는 이유가 있어요. 평소 아이가 어느 병원을 다니는지, 부모의 직장이 원거리인지, 돌봐줄 이웃이 있는지 등 관련 정보를 충분히 알아야 하니까요. 간호조무사 4명, 관리자 1명이 상시 근무하고 있어요. 현재는 시작 단계라 초등학생에 국한되지만 점차 유아로 대상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아픈 아이가 혼자 앓지 않도록 병상에서 돌보는 시설인 ‘아픈 아이 돌봄 센터’도 내년 7월 문을 열 예정이다.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니지만, 장염이나 설사처럼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다. 중계동성당이 구청에 기부한 건물 3층에 자리할 예정이다. 이 건물 지하 1층에는 특별한 식당이 들어설 계획이다. 전국 최초로 문을 여는 상시적인 ‘어린이 식당’이다. 노원구는 ‘밥상 돌봄’을 위해 일본의 어린이 식당을 사전 방문했다. 2010년 도쿄의 채소 가게 상인이 남는 채소로 밥을 지어 목요일마다 동네 아이들에게 100엔(약 1100원)을 받고 제공한 것이 시초였다. 이후 시민운동처럼 번져 일본 전역으로 확대됐다. 일본에서 모두 2286곳이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l▶아이휴센터에 들어오면서 양말을 벗는 어린이

“밥상 돌봄이 필요한 여러 이유가 있어요. 맞벌이 가정 중에서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경우도 그렇거든요. 공적인 돌봄 시설에 보낼 필요는 없다 해도 아이들 먹이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특히 급식이 없는 방학 때면 문제는 더 심각해지죠. 아이가 동네 식당에 가서 혼자 사먹거나 밥을 차려 먹어야 하는데 1, 2학년이면 쉽지 않아요. 취약계층 아동의 경우 꿈나무 카드를 받는데 5000원으로 식당이나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는다 해도 좋은 밥상이라고 볼 수는 없죠. 아이들이 눈치도 보고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문을 여는 곳이 어린이 식당이에요. 먹거리 제공만이 아니라 상담이나 놀이도 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죠. 식탁 한쪽에 쉼의 공간을 두려고 합니다. 밥 먹고 나서 잠깐 책도 보고요.”
좋은 정책은 시설 마련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떻게 지속적으로 운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용 대상을 누구로 하느냐? 초등학생으로 제한할 것인가? 취약계층 자녀로 한정할 것인가? 취약계층 외의 일반 아동을 받는다면 이용 금액을 내게 할 것인가? 취약계층에 주어지는 꿈나무 카드를 쓰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 차이가 드러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가? 노원구는 구체적인 운용 사항을 놓고 고심 중이다.

노원구는 2018년 2월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았다. 유엔 아동권리협약과 유니세프의 아동친화도시 10대 원칙을 이행하는 도시여야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아동이 안전하고 오염되지 않은 환경에서 적절한 보호를 받으며 자랄 수 있도록 정책을 개발하고 시행하는 도시.’ 유니세프의 아동친화도시 10대 기본 원칙 가운데 하나다. 노원구는 8월 ‘온종일 돌봄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마련했다. 그동안 서울시 조례, 구청장 방침, 아동복지법 등으로 아동 관련 시설을 운영했으나 지역 내 법적 근거를 더욱 구체화한 것이다.

l▶선생님과 아이들이 숫자를 맞히는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19개 동별로 마을 돌봄협의회
노원구가 어린이 돌봄에 집중할 수 있었던 데는 구청장의 의지와 성실한 공무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공무원으로서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기 쉽지 않은 구조이지만 김 팀장은 10년간 아동청소년 업무를 담당했다. 공약 사항으로 초등 돌봄 전면 확대를 내세운 오승록 노원구청장 또한 사업을 전폭 지원했다. 예산 배정뿐 아니라 구청장이 직접 사회복지시설을 순회하면서 아이들을 위한 유휴 시설 마련을 위해 노력했다. 오 구청장은 7월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경진대회’에서 초고령화 대응 분야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고령 사회에 대비하는 저출생 대책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돌봄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 돌봄 협의체도 만들었다. 부구청장, 구청 국·과장, 대학교수, 민간 대표 등으로 구성된 온종일 돌봄위원회는 종합 계획을 수립하고, 산하에 19개 동별로 마을 돌봄협의회를 마련했다. 돌봄 관련 종사자들이 한 달에 한 번 모여 사례를 나누고 아이 돌봄에 빈틈이 생기지 않게 협력한다.

l▶간식을 먹는 아이휴센터 아이들

“선생님들과 회의를 할 때도 ‘엄마품 돌봄’을 강조해요. 엄마품 돌봄이라는 말에 모든 의미가 녹아 있잖아요. 보육, 돌봄, 교육을 다 하는 집 같은 곳이죠. 아이휴센터에 오면 아이들이 신발과 양말을 벗어요. 신발을 벗는 것만으로도 쉬게 되잖아요. 방과후에 학원만 계속 보내면 신발 신고 가방 메고 여러 곳을 가야 해요. 이곳이 가정교육의 연장이라는 것도 장점이에요. 요즘은 외동아들, 딸이 많잖아요. 아이휴센터에는 비슷한 또래들이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고 간식도 먹으니까 좋아요.”(김희정 센터장)
월계그랑빌 아파트 1층에 자리한 아이휴센터에서 3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이들이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책을 보는 아이, 보드게임이나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 가만히 앉아서 쉬는 아이, 간식을 먹는 아이들이었다. 밤이 돼서야 부모를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이 홀로 방치되지 않게 정부와 기초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촘촘한 돌봄 정책이 낳은 모습이었다.

글·사진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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