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속으로 어슬렁 풍경속으로 어슬렁

2019.09.29 최신호 보기


ㅣ▶소마미술관 <안녕, 푸 展>에서 전시 중인 삽 화가 어니스트 하워드 셰퍼드(Ernest Howard Shepard)의 곰돌이 푸(Pooh) 오리지널 드로잉│소마미술관

“어머, 어디까지가 작품이고 어디까지가 공원이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있는 소마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소마미술관은 144만 8000㎡(약 43만 8000평)에 이르는 올림픽공원 부지에 9만 5940㎡(약 2만 9000평) 규모로 조성한 야외 조각공원을 품어 자연과 공존한다. 조각공원의 황톳길을 따라 산책하듯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연면적 1만 3186㎡(약 3989평)에 1, 2층으로 이루어진 1관과 지하 공간의 2관으로 구성된 미술관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거친 터치의 노출 콘크리트와 다듬어지지 않은 목재 마감재로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드러낸 것이 특징이다. 8월 21일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주부 김지원(40) 씨는 “아이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려고 왔는데 꽃과 나무도 마음껏 보고, 야외 조각공원과 미술관에서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소마미술관에서는 삽화가 어니스트 하워드 셰퍼드(Ernest Howard Shepard)의 곰돌이 푸(Pooh)로 유명한 <안녕, 푸 展>을 오리지널 드로잉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또 1988년 야외 조각공원 조성 당시 전시된 작품과 2019년 현재 조각이 모여 만든 <조각_조각 展>도 만날 수 있다.

ㅣ▶육효진 ‘판도라의 상자’

벽면 전체 드로잉 기법의 숲 펼쳐져
<안녕, 푸 展>이 열리는 소마미술관 중심 건물인 1관. 입구에서부터 우리가 기억하는 곰돌이 푸만의 상징인 ‘샛노란 색’으로 칠한 매표소와 포스터 등이 주변 숲과 어우러져 선명하게 다가왔다. 1926년 탄생한 곰돌이 푸는 작가 앨런 알렉산더 밀른(Alan Alexander Milne)의 재미있는 문장과 풍부한 표현력에 셰퍼드의 삽화가 결합해 완성된 캐릭터다. 당시 수백만 권의 서적이 전 세계로 팔려나갈 만큼 큰 성공을 거뒀으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모습으로 많은 제품 속에서 귀여운 모습을 뽐내고 있다. 정나영 큐레이터는 “이번 <안녕, 푸 展>은 2017년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V&A)에서 처음 기획되었으며, 현재까지 위니 더 푸(Winnie the Pooh)를 주제로 한 전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전시회”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창밖으로 조각공원의 전경이 펼쳐지는 개방적이고 확장된 소마미술관만의 실내 전시공간과 어우러져 더욱 실감 나게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벽면 전체를 드로잉 기법으로 표현한 숲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 안에서 곰돌이 푸의 작가 밀른의 재치 있는 문장과 셰퍼드의 삽화 등 오리지널 드로잉과 사진을 포함한 230여 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나무, 꽃, 나비와 함께 뛰노는 곰돌이 푸와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어린 시절의 순수한 추억 속으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이 든다. 정 큐레이터는 “이번 한국 전시회를 끝으로 작품들이 소장가에게 돌아갈 예정으로, 곰돌이 푸 오리지널 드로잉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전했다. 또 “작품 외에도 관람객을 위한 인생 사진 포토존, 전시회 기간에만 만나볼 수 있는 곰돌이 푸 관련 아기자기한 한정판 굿즈 등을 선보인다”고 말했다.

ㅣ▶김병호 ‘수평정원의 그림자’

다양한 재료·조각 모여 공간·형상 재창조
이어 2관에서는 야외와 실내 전시를 연계한 <조각_조각 展>이 진행 중이다. 전시 제목 ‘조각_조각’에서 앞의 조각은 ‘작은 부분’의 피스(piece)를 뜻하며, 뒤의 조각은 ‘조각품’의 스컬프처(sculpture)를 의미한다. 전시를 기획한 손성진 큐레이터는 “작은 조각(piece)이 모여 덩어리(mass)가 되고 이것들이 거대한 조각품(sculpture)이 돼가는 과정을 담았다”며 “이를 통해 조형미에 대한 탐구, 그리고 조각가와 관람객이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데 의미를 뒀다”고 설명했다. 참여 작가는 강덕봉, 권재현, 박찬걸, 양수인, 육효진, 윤두진, 이종서, 주연, 강영민, 김병호, 김성완, 김은, 김주현, 민정수, 손종준, 이길래 등 16명이다.
실내 전시는 다양한 재료의 조각들이 모여서 새로운 공간과 형상을 재창조해 대중적이면서도 현대 조각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1전시실 한가운데는 9개의 기둥과 1971개의 나무 막대를 일일이 볼트로 조립한 웅장한 구축물이 놓였다. 바로 김주현 작가의 작품인 ‘생명의 다리’다. 작가는 생태주의(ecologism)적인 설치 작품을 통해 자본주의의 성장과 산업화·도시 공동화로 점차 줄어드는 자연보호 구역에서 살아가야 하는 동식물의 현실과 인간의 물욕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했다. 손종준 작가의 작품 ‘자위적 조치’ 속 인체는 자신의 다친 부위를 감싸듯 갑옷을 착용하고 있다. 수많은 알루미늄 조각으로 만든 갑옷은 신체적·정신적 결핍에 대해 ‘자위적 조치’인 방어기제의 표현이다. 유·무형의 다양한 폭력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하려는 작가만의 감성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레고 국제 공인전문가인 김성완 작가의 작품도 지나칠 수 없다. 그의 작품에 들어간 부품들은 덴마크 레고 본사에서 직접 제작한 것. 그래서 레고 로고가 부착돼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레고로 만든 올림픽공원의 상징물 ‘평화의 광장’도 감상할 수 있다.
1전시실 한쪽에는 뒤엉킨 인형의 팔과 다리가 전시돼 있다. 민정수 작가가 10년 가까이 작업한 인형 모형과 신체 오브제(초현실주의 미술에서,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작품에서 새로운 느낌으로 상징화하는 일)다. 기괴함이 느껴지는 이 작품은 마음속 욕망과 무의식을 의지로 절제해보고자 하는 인간의 소망과 욕망을 형상화했다. 2전시실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오브제와 감각적인 설치미술 형식으로 풀어내는 강영민 작가의 ‘논픽션’으로 시작한다. 작품은 이슈가 되는 인물을 세로형 블라인드 형식으로 제작했다. 분절돼 보이는 인물상을 통해 언론과 미디어에서 보이는 현상이 실상이 아니며 본질은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한다. 김병호 작가의 ‘수평정원의 그림자’는 8m 길이의 작품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전시 콘셉트를 대표하는 상징적 조각이다.

ㅣ▶민정수 ‘덩어리’│소마미술관

실·내외 아울러 실험과 변화 모색
<조각_조각 展>은 작가 안배에서 대중적인 요소도 놓치지 않았다. 김은(김은혜) 작가는 먹는 과자를 재료로 작품을 제작했다.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등을 활용해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풀어낸 설치미술을 보여준다.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제작 설명회도 준비했다. 이길래 작가는 동 파이프 조각으로 만든 소나무 형상을 통해 한국적인 공간을 연출했다. 그가 마련한 세련미 넘치고 절제된 조형 공간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한다. 손 큐레이터는 “조각이라는 장르가 대중적이지는 않다. 회화 전시와 비교하면 관람객 수가 3분의 1은 적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람들이 조각에 대해 쉽게 다가가면서도 조각의 정체성을 과감하게 건드려보는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실외 전시에는 기존 조각공원 내 작품 8점을 대상으로 오마주(존경), 콜라보(협업), 하모니(조화) 등 세 가지 제작 콘셉트를 도입해 8명의 현대 작가들이 작품을 설치했다. 올림픽 조각공원은 규모, 작품 수, 작품 인지도 측면에서 세계 5대 조각공원의 하나로 평가될 만큼 유명한 전시 공간이다.

2관 입구에는 모든 자연을 대칭과 비대칭으로 해석해 표현한 문신 작가의 ‘올림픽 1988’이라는 기념비적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을 두고 이종서 작가는 자연의 일부인 인간을 재해석한 작품인 ‘대칭’을 만들었다. 이 작가는 인간의 몸이 대표적인 대칭 구조이면서 부분별로는 비대칭의 매력을 품고 있는 소재라 여기고, 단순화한 덩어리(mass)를 통해 문신 작품의 조형미를 심플하게 재창조했다.
이우환 작가의 ‘관계항-예감 속에서(Relatum-by Omen)’는 2000년 전, 초기 백제 토성의 공간적 특성에 자연을 상징하는 돌, 인류의 발명품인 철, 그리고 2000년의 시공을 초월해 2019년을 사는 현대인이 작품의 오브제들과 조우해 완성한 작품이다. 육효진 작가는 이우환의 사물과 공간, 인간의 ‘관계성’에 관한 주제에 개입해 주체와 객체, 실존과 타자, 인공과 자연의 조화로운 길을 모색한다. 8개의 열린 문은 자연과 인간, 나와 타자 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새로운 통로가 된다.

손 큐레이터는 “이번 <조각_조각 展>은 어찌 보면 근대 조각의 위대한 시작을 알린 근대 조각의 아버지 오귀스트 로댕 오마주가 될 수 있겠다”며 “로댕 시대 100년 후에 로댕의 후예들이 조성한 세계적인 조각공원이 위치한 전시 공간에서 현대 조각의 근본적인 개념을 조명해 실·내외를 아우르는 조각 기획전시의 시작은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는 30년이 넘은 올림픽 조각공원에 대한 신선한 실험이자 변화의 모색”이라고 밝혔다. <안녕, 푸 展>은 2020년 1월 5일까지, <조각_조각 展>은 2019년 12월 22일까지 만날 수 있다.

강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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