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한겨레
‘소득주도성장론 설계자’ 홍장표 위원장 인터뷰
소득주도성장론은 역사가 길지 않는 성장 담론이다. 가계소득 증대와 분배 개선을 통해 소비 기반을 강화하면 생산성과 잠재성장률까지 끌어올릴수 있다는 이론이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전면에 내세운다. 반대되는 성장 방식은 ‘이윤주도 성장’. ‘부채주도 성장’이다.
경제학계에서는 ‘수요주도 성장’이나 ‘임금주도 성장’이라는 개념이 더 익숙하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임금주도 성장론을 확장한 개념이다. 자영업자 비중이 큰 국내 가계의 현실을 반영해 ‘한국판 버전’을 누가 만들었다. 바로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이다. 문재인정부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내다 2018년 9월 출범과 함께 취임한 홍 위원장은 ‘소득주도성장론 설계자’로 통한다. 그러면서 정책 추진의 주역이다. 그는 소득주도성장의 이론, 실증, 정책에 모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경력을 쌓고 있다.
9월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에 있는 소득주도성장특별위회 사무실에서 홍 위원장을 만나 지금까지 추진해온 정책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 과제 등을 들어봤다.
-문재인정부가 곧 임기 반환점을 맞는다. 이제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뭔가 확실하게 내세울 수 있는 성과를 보여 줄 때인데.
=소득주도성장을 정부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잡고 정책 추진 체계를 완성했다는 것을 가장 큰 성과로 꼽을 수 있겠다. 종합적인 전략과 세부 정책 과제를 마련해 2018년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고, 고용과 가계 부문을 중심으로 조금씩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자영업·골목상권 정책 대응 추가 보강”
-소득주도성장의 결과로 내세울 수 있는 결과를 한 가지만 꼽는다면 무엇이 있나.
=소득주도성장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가계부문 소득 개선이다. 한국은행 국민계정 발표를 보면 가계소득 증가가 2018년 하반기부터 2019년 2분기까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가계소득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근로소득이 늘어 소득 증가를 주도한 것으로 나타난다. 최저임금 인상, 기초연금 등 복지 강화, 그리고 적극적인 일자리 정책 등으로 가계의 실질소득이나 민간소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더 높아졌다. 의미 있는 변화이다.
-가계소득 증가가 정부 정책의 효과라고 할 수 있나. 가계소득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민간소비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2018년에는 투자가 부진했고 올해 들어서는 수출마저 마이너스로 돌아서 경기 침체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소득은 이전보다 증가하며 국내총생산(GDP)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GDP 대비 가계소득 비중이 줄어들다가 2018년부터 증가세로 반전했다면 정책 변수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문제는 소비 활성화로 연결되느냐인데, 지표상으로는 분명이 소비가 늘었다. GDP에 대한 민간소비의 성장기여도가 높아졌다는 게 바로 그 증거이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 증가 등으로 소비 패턴이 워낙 빠르게 바뀌고 있어 자영업이나 골목 상권의 체감경기는 악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자영업의 매출 기반 확대에 초점을 맞춘 여러 가지 정책적 대응 방안을 시행하고 있고 계속 추가 과제를 발굴해 보강할 방침이다.
▶적극적인 일자리 정책으로 민간소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더 높아진 점이 소득주도성장의 큰 성과로 꼽힌다. 서울 지하철의 퇴근길에 분주한 사람들| 한겨레
“생활SOC와 교육·훈련에 투자 확대”
-가계 소득이 늘어나는데도 소득 양극화 추세는 여전하다. 5분위 배율 같은 분배 지표상으로도 뚜렷한 개선 기미가 안 보인다.
=2019년 1분기나 2분기 가계동향 조사를 보면 하위 20% 저소득층 가구의 소득 감소 폭이 크게 줄었다. 또 2분기에는 1분위 가구까지 소득이 증가세로 돌아서고, 2분위에서 4분위까지 중간 분의 소득 증가율이 더 높아 중산층이 두터워지는 추세이다. 분배 지표가 확 좋아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격차가 완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최하위 계층의 시장소득은 앞으로도 계속 하락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급격한 고령화 추세에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함에 따라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인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기초연금과 기초생활제도의 생계급여제도 같은 복지 대책으로 하위 계층의 소득 악화에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분배 지표와 관련해 같은 지표를 보고도 기관에 따라 다르게 평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이한 해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통계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다. 그래서 하나의 지표를 놓고 여러 가지 해석이 제시되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나치게 한 방향으로 통계를 해석하면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정부 역시 해석의 다양성을 충분히 열어놓고 오히려 권장하고 있다. 다만 소득주도성장이 지나치게 정치화된 경향이 있다 보니, 통계에 대해 정부가 나름의 해석을 내놓지 않으면 한 방향으로 많이 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주의하고 올바른 지적이 필요할 것 같다.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임금이 상승하며 기업이 국내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극심한 투자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 민간 투자를 내수 경기와 연결시킬 방법은 없나.
=우리 기업들은 해외로 많이 진출해 있고, 앞으로도 계속 나갈 것이다. 현 상황에서 전통적인 투자 방식을 독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경기 침체기를 벗어나더라도 수출 비중이 높은 업종의 투자 활성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GDP 대비 투자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이다. 게다가 대기업의 투자 비중이 큰데, 대기업 투자는 수출 여건에 따라 좌우된다. 따라서 투자와 내수의 연결 고리가 약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정책 의지로 할 수 있는 투자 활성화 방안은 다른 데 있다. 도서관, 체육시설 등 국민 삶의 질을 개선하는 생활SOC(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 확대이다. 또 교육 등 사람에 대한 투자도 늘려야 한다. 가계소득의 원천인 임금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려면 더 우수한 교육과 훈련으로 그 만큼의 역량을 갖추도록 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내수 시장·산업 강화 필요성 절실해져”
-미중 무역 갈등과 일본 수출규제 등으로 대외 여건이 악화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만큼 경제 전반에 먹구름이 짙다.
=수출의존형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우리 경제의 특성 상 여러 가지 대외 여건의 악화는 경제 전반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지금과 같은 현실이야말로 소득주도성장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더 이상 수출에만 의존할 수 없고 내수시장과 내수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모든 경제 주체들이 인식하게 됐다. 대외 여건은 단기에 나아지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이 관세 전쟁을 하며 갑자기 보호무역이 대세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최근 문제가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로 세계 교역량 증가세가 계속 줄면서 전반적으로 무역 수축기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우리 주력산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겨냥해 수출규제에 나섰다. 우리 경제의 상당한 위험 요인임이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회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핵심 부품·소재의 공급 안정성이 대단히 중요한 것을 국내 대기업들이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품·소재·장비 분야의 중소기업 육성에 대기업이 적극 나설 것으로 기대하며, 정부도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적극 대응할 것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부품·소재 산업 경쟁력 강화에 개입할 여지는 없나.
=모든 정책은 다른 정책들과 맞물리며 균형을 맞춰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공정경제와 혁신성장이라는 다른 경제정책 기조와 긴밀하게 맞물리며 패키지로 돌아가도록 해야 하는데, 부품·소재 산업 경쟁력 강화가 바로 그런 패키지 정책이 적용될 수 있는 분야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협력, 지역의 상생형 일자리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구체적인 국가적 정책 과제에 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혁신성장의 세 바퀴가 선순환으로 작동하는 경험이 쌓여야 경제 체질의 개선과 성장 패러다임의 전환이 가능하다.
-소득주도성장 관련 정책 가운데 미진하거나 보완할 점은 없나.
=보완이라기보다 흔들림 없는 추진과 실질적인 성과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앞으로 가계소득 증대, 가계 지출비용 경감, 사회안전망 확충 등 소득주도성장의 3대 축과 관련한 세부 정책들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으면서 추진해나가겠다. 또 특위는 소득주도성장 공감대 확산을 위해 재계와 노동계, 소상공인 등 이해관계자와 소통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박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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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