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으로 수출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에 대해 일본이 수출규제를 강화한 것은 정치적 동기로 이뤄진 차별적 조처라며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9월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는 우리나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교역을 악용하는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일본의 조치를 WTO에 제소했다”고 말했다. 일본이 7월 4일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포토레지스트(감광액),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를 한국으로 수출하는 기업에는 3년짜리 포괄허가가 아닌 개별허가만을 내주기로 한 지 69일 만이다.
정부는 일본이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의 최혜국 대우(1조), 수량제한의 일반적 폐지 금지(11조), 무역규칙의 공표 및 시행 의무(10조)를 위반했다고 봤다. 8월 28일 시행된 일본의 한국 ‘백색국가’(수출심사 간소화 우대국·화이트리스트) 배제는 이번 소송에서 제외됐다. 제도만 변경된 상태이고 구체적인 품목에 대한 실제 규제 강화가 아직 이뤄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유 본부장은 “일본의 3개 품목 수출제한 조치는 일본 정부의 각료급 인사들이 수차례 언급한 데서 드러난 것처럼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한 정치적 동기로 이루어진 것이며, 우리나라를 직접적으로 겨냥해 취해진 차별적 조치”라고 제소 배경을 설명했다.
2개월 동안 일본과 양자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는 세계무역기구 재판부에 해당하는 패널 설치를 요청할 예정이다. 최종심에서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빨라도 2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유 본부장은 “이제 정부는 WTO를 통한 분쟁해결 절차의 첫 단계인 양자협의를 공식적으로 요청해 일본의 조치가 조속히 철회될 수 있도록 협의할 계획”이라며 “정부는 양자협의를 통해 일본 조치의 부당성과 위법성을 지적하는 한편, 일본의 입장을 청취하고 함께 건설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유 본부장은 특히 “이 문제가 조기에 해결될 수 있도록 일본 정부도 성숙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협의에 임해줄 것을 촉구한다”며 “하지만 양자협의를 통해 해결되지 않을 경우, WTO에 패널 설치를 요청해 본격적인 분쟁해결 절차를 진행해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9월 1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산업통상자원부
‘일본 백색국가 제외’ 9월 18일부터 시행
이와 함께 일본을 한국 전략물자 수출심사 간소화 대상국인 ‘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고시가 9월 18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일본이 지난 2개월여 동안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하면서 한국 정부와 제대로 협의에 나서지 않은 데 따른 결과다.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관은 “한국 수출통제제도 개선을 위해 추진해온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을 관보에 게재하고 시행한다”고 9월 17일 밝혔다. 이번 고시 개정에 따라 바세나르협정 등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에 가입한 29개국을 묶은 ‘가 지역’은 ‘가의 1’과 ‘가의 2’로 세분화된다. 가의 2 지역으로 재분류된 국가는 29개국 중 일본뿐이다. 앞으로 일본으로 전략물자나 기술을 수출하려는 기업은 원칙적으로 ‘나 지역’과 동등한 높은 수준의 수출심사를 받게 된다.
가장 달라지는 점은 이중용도(산업·군수)의 전략물자 수출 때도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전까지는 민감 품목(군수전용 물자)에 대해서만 개별허가 취득이 의무였지만, 앞으로는 4대 통제체제의 통제품목 1735개 모두가 개별허가 대상이 된다. 또 개별허가를 받기 위해 필요한 서류가 3종에서 5종으로 늘어나고, 심사 기간도 5일에서 15일로 길어진다.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 정책도 추가로 나왔다. 기획재정부는 9월 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정부가 소재·부품·장비산업과 관련해 지정한 ‘100개+α’ 핵심 품목에 대한 정밀 진단·분석을 실시하고 품목별 맞춤형 전략을 연내에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먼저 8월 28일 발표한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투자전략 및 혁신대책’ 후속 조치와 관련해 세부 과제를 리스트화해 체계적이고 철저히 추진해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9월 중 전문가단을 구성해 ‘100+α’ 품목에 대한 정밀 진단과 분석을 실시하고 이를 토대로 품목별 맞춤형 전략을 올해 안에 마련할 계획이다.
문 대통령 “소재·부품 경쟁력 강화, 경제 100년 기틀”
최근 한일관계 악화에 따른 관광 여건 변화로 어려움을 겪는 여행업계에 관광기금 150억 원을 특별융자한다. 이번 특별융자에서는 한국 관광객의 일본 여행 취소에 따라 직접 피해를 입은 국외 여행업체에 대해 기존 2억 원이던 운영자금 융자 한도를 5억 원으로 상향한다. 또 융자금리로 기존 관광기금 융자 조건인 1.5%보다 0.5% 인하한 1%의 우대금리를 적용한다. 특별융자 대상자는 기존에 사용하는 융자액이 있다 해도 이와는 별도로 융자한도 안에서 추가적으로 융자받을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번 특별융자 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최근 관광진흥개발기금 운용계획을 변경해 150억 원 규모의 긴급 특별융자 예산을 편성했다. 앞으로 특별융자를 받고자 하는 업체는 9월 1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인사동에 있는 한국관광협회중앙회(이하 중앙회)를 방문해서 신청하거나 우편으로 신청하면 된다. 특별융자의 구체적인 내용과 조건은 문체부 누리집(www.mcst.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9월 10일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는 경제 강국을 위한 국가전략 과제이며, 한일관계 차원을 뛰어넘어 한국 경제 100년의 기틀을 세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주재한 현장 국무회의에서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제조업을 혁신하고 제조 강국으로 재도약하는 길이며,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라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히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근본적 경쟁력을 높이려면 핵심 기술의 자립화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재·부품·장비 생산 기업은 전체 제조업 생산과 고용의 절반을 차지하며, 대부분 중소·중견기업”이라며 “이 분야 산업을 키우는 것은 곧 중소·중견기업을 키우는 것이고, 대·중소기업이 협력하는 산업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는 장기간 누적돼온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만드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심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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