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휴가철에 우리 남매들은 시골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찾아가 같이 지내기로 했다. 오랜만에 모든 가족이 모여 평소 자주 찾아뵙지 못한 미안함을 달래드리고 잠깐이나마 함께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다들 결혼 전에는 한집에서 뒹굴며 부모 슬하에서 자라다가 나이가 들어 출가해서는 찾아뵙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우리도 자식을 낳아 교육하고 뒷바라지하느라 사실 부모님은 뒷전이었는데 많이 섭섭하고 서글프셨으리라 생각하니 좀 더 자주 찾아 함께하는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손자들만 보면 눈물을 글썽이며 반가워하는 어머니가 아니었던가!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누고 각자 가져온 선물을 어머니께 드렸더니 모처럼 흐뭇해하시며 즐거운 표정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어도 자식들이 찾아오는 것만큼 반가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피붙이가 와서 오순도순 대화의 꽃을 피우고 시골 음식을 먹는 것이 어머니의 낙이 아니던가. 이번에도 어머니가 자식들 온다고 직접 끓여놓은 추어탕을 맛보게 되었다.
여러 음식점에 가서 먹어보아도 어머니가 끓여주신 추어탕만큼 제맛 나는 곳을 아직 보지 못했다. 고향에 가기만 하면 어머니께서는 혼자 몹시 바쁘게 움직인다. 추어탕을 끓이는 노력과 정성이 예사가 아니며 시간도 생각보다 많이 걸려 성미 급한 사람은 잘 끓이기가 쉽지 않다.
먼저 미꾸라지를 호박잎으로 문대어 숨을 죽인다. 팔딱거리던 미꾸라지들이 금세 힘을 못 쓰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미꾸라지를 약간 삶아 체에 밭치고 뼈를 추려낸다. 다시 솥에 넣고 끓이는데 들어가는 국거리가 여간 많은 게 아니다. 부추를 깨끗이 씻어 넣고 시래기와 숙주, 무순, 방아, 박나물을 넣으며 푸르고 붉은 고추, 마늘, 들깨도 듬뿍 썰어 넣는다. 그리고 된장을 풀고 서너 시간 푹 삶아 끓여내면 걸쭉한 추어탕이 된다. 마당의 가마솥에 끓이며 얼마나 진땀을 쏟아내는지…. 당신 자식과 손자들 먹이기 위해 갖은 정성과 힘을 쏟는 것이다. 또 제맛이 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땡고추와 마늘, 고추를 썰어 양념장을 만들어 각자 취향과 구미에 맞게 넣도록 한다.
드디어 국 사발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추어탕을 퍼 담아주면 각자 비릿한 맛을 없애는 산초가루를 뿌리고 매콤한 맛을 즐기는 사람은 땡고추도 넣는다. 밑반찬으로는 시원한 냉장고 김치와 깍두기만 있으면 그만이다. 어떤 사람들은 보양식으로 보신탕과 삼계탕을 치지만 우리 가족은 단연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추어탕 한 그릇이 최고 별미다.
비단 여름철뿐 아니라 추석 등 명절에도 빠뜨리지 않고 추어탕을 가족들의 별미 음식으로 준비하신다. 이제 연세도 많아 자식들이 잘 배워야 할 텐데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추어탕 제맛을 보기 위해 어머니가 사시는 고향으로 달려가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우정렬 부산시 북구 화명신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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