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가수보다 더 유명한 무명 가수

2019.10.07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l▶이라희 씨는 한때 60곡을 쉬지 않고 불렀을 정도로 노래를 숨 쉬듯 쉽게 부른다.

“총알택시 타고 왔어유.”
공연은 끝났지만, 무대 앞에서 열광적으로 박수 치던 이은혜(62) 씨는 상기된 얼굴을 감추지 못한다. “어디서 왔어요?” “광천 산골에서 택시 타고 왔어유.” “택시비는 얼마나 주셨나요?” “8만 원요. 그래도 늦지 않아서 너무 좋았어유.” 공연의 입장료는 없다. 8월 20일 오후 7시 서산시청 앞 작은 광장에서 열린 콘서트다. 콘서트라기보다는 버스킹에 가깝다. 관객이 100명 남짓.
“비싼 공연을 보셨네요. 좋았나요?” “어휴, 너무 좋았어유. 전 깨어 있는 시간엔 이라희 씨 노래를 항상 듣고 살아유. 농사지으면서, 밥 먹으면서, 심지어 자면서도….”

l▶유튜브 인기가수 이라희 씨가 8월 20일 서산시청 앞 광장에서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한 자선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광팬이다. 팬심이 농촌의 평범한 아주머니를 총알택시 타고 버스킹에 오게 만든 셈이다.
“어떻게 이라희 씨를 알게 됐나요?” 가수 이라희는 ‘라이브의 여신’으로 불린다. 공중파 등 대중매체에는 거의 노출이 안 된 가수다. “삶이 곤경에 빠졌을 때 우연히 이라희 씨가 노래 부르는 걸 들었어유. 순간 어릴 때 품었던 노래에 대한 열정이 확 살아났어유. 저도 가수를 꿈꿨는데 아버지가 못하게 했지유. 늦게나마 이라희 씨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어유.”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한 아저씨가 거든다. “저는 이라희 씨 노래를 직접 들으려고 멕시코에서 왔어요. 하하하.” “정말요? 설마.” “오랜만에 한국에 왔는데 마침 이라희 씨 공연이 있다고 해서 일부러 서산까지 왔지요. 멕시코에 살면서 저도 깨어 있는 시간엔 항상 이라희 씨 노래를 들어요. 직접 보고 노래를 들으니 너무 행복하네요.”

l▶이라희 씨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면 전국에서 모인 팬들은 흥에 겨워 온몸을 흔든다.

할머니는 총알택시, 할아버진 비행기로 콘서트장 찾아
해군으로 제대한 뒤 한평생 원양어선을 탔다는 이경수(71) 씨는 현재 멕시코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그곳에서 우연히 이라희 씨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더 이상 다른 가수의 노래는 듣지 않게 됐다고 한다.
“저는 몇 년 전 강릉에서 이라희 씨가 콘서트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택시비 40만 원을 들여 콘서트장에 간 적이 있어요.” 60대 한 아저씨는 무용담을 이야기하듯 자신의 팬심을 자랑한다.
대부분 팬들의 ‘연식’이 좀 됐다. 그러나 ‘스타’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아이돌 가수를 향한 10대 청소년의 저돌적 사랑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날 콘서트는 가수 이라희의 재능기부 자리다. 서산의 ‘사랑의 베이비부머’ 자선단체에서 불우 이웃을 위한 집을 지어주는 후원금을 마련하는 자리다. 이라희 씨는 자신의 공연 수고비와 자선 티켓 수입금 등 500만 원을 이 단체에 기증했다. 음향시설도 모두 이라희 씨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운반해 왔다. 공연 전 무대 준비와 음향시설 설치도 이라희 씨 팬카페 회원들의 몫이다.

팬카페 이름은 ‘라일락’. ‘이라희와 매일 즐겁게 산다’는 뜻이다. 일반 대중에게 생소한 가수지만 유튜브 세계에서는 최고의 가수로 통한다. 그의 유튜브 구독자는 10만 명이 넘고 동영상 누적 클릭 수는 1억 뷰가 넘는다. 팬카페 회원도 1만 3000여 명. 대중매체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가수지만 이미 데뷔 10년 차다. 4000회 이상 라이브 공연을 했다. ‘그의 노래를 한 번도 듣지 못한 이들은 많으나, 한 번만 들은 이는 없다’는 농담이 돈다. 일단 그의 노래를 한번 들으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라이브 공연은 등산과 같아요. 처음엔 서서히 걸으며 발동을 걸다가 최고조에 올라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린 다음 서서히 내려가지요.” 라이브 공연 무대는 그의 놀이터다.
“어떤 매력이 팬들을 끌어들인다고 생각하나요?” 공연을 앞두고 무대를 설치하는 틈새에 이야기를 나눴다.
“저에겐 노래가 ‘숨’과 같아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힘들이지 않고 숨을 쉬잖아요. 힘들여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숨 쉬듯 자연스럽게 내쉬는 것이죠.”

l▶버스킹과 콘서트의 음향 준비는 대부분 팬클럽 회원들이 한다.

“노래가 숨과 같아요… 한창때는 쉬지 않고 60곡 부르기도”
그의 노래는 듣는 이를 편하게 만든다. 편하게 한다는 것은 편하게 부른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마치 아무런 힘 들이지 않고 숨 쉬듯 그는 노래를 ‘내쉰다’.
“한창때는 쉬지 않고 60곡을 부르기도 했어요. 장르도 가리지 않고….”
60곡이라면 한 곡에 평균 3분이라 해도 3시간이 걸린다. 일반인은 한 곡 부르기도 힘든데 60곡이라니. 좀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말하듯 노래하는 것이죠. 목에 힘을 주고 노래를 짜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노래를 풀어내는 것이라 해야 하나….”
그는 세 살 때부터 가수를 꿈꾸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통기타 등 여러 악기 연주를 즐겨 하셨어요. 건축업에 종사하셨는데 제가 어릴 때부터 들려주셨거든요. 어머니도 그런 아버지 모습에 반해 결혼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목이 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한 달 전부터 잡혀 있던 공연 스케줄이 있었어요. 병간호하느라 4일 밤을 꼬박 지새웠어요. 공연을 포기하려 하다 아버지가 마지막 가시는 길에 ‘내 딸 멋지다’라고 생각하시면 좋겠다 싶었어요. 돈에 눈이 멀어 아버지 돌아가신 날에도 아무렇지 않게 노래를 부른다고 오해할까 봐 앙코르곡 하기 전에 관객들에게 사실을 얘기했어요. 앙코르곡으로 아버지를 위해 ‘천상재회’를 불렀어요. 저도 울고 관객들도 울고 그야말로 눈물바다가 됐죠.”

l▶콘서트를 앞두고 이라희 씨가 깊은 상념에 빠져 있다.

직접 만들어 올린 동영상 1000여 개
어렵게 성장했다. 스무 살에 가수가 하고 싶어 무작정 노래를 시작했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냈다. 밥 한끼 제대로 먹지 못하고 며칠을 굶은 적도 있었다. 20대 중반 밤길에 불량배 4명이 뒤따라오는 것을 느꼈다. 온 힘을 다해 뛰어서 자취방에 들어가 문 걸어 잠그고 경찰을 불렀다. 곧 경찰이 출동했고, 불량배들은 도주했다. 강도를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신적 후유증이 컸다. 3년을 공황장애에 시달리다 1년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꽃다운 나이에 암흑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힘든 시절을 노래를 하며 극복했다. 가수로 데뷔했지만 무명의 굴레를 벗어나긴 쉽지 않았다. 라이브 무대는 그의 활력소이자 전부였다. 하지만 다시 고난이 왔다. 성대가 고장 난 것이다. 지금까지 두 번 성대 수술을 했다. 성대를 무리하게 써서 수술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하고 나면 목소리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작게 나왔다. 노래를 더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돼 눈물도 많이 흘렸다.

10년 전 1집 앨범 <마이 라이프>로 정식 데뷔하면서 자신이 부르는 노래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인터넷 공간에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반응이 없었으나 조금씩 공감하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그동안 그가 만들어 올린 노래 동영상은 1000여 개. 지금은 ‘이라희 라이브TV’ ‘이라희 TV’ 등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저녁 8시 30분부터 90분간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관객 없이 오직 유튜브 팬들을 위한 공연을 한다.
“제가 부르는 노래가 대부분 다른 가수들의 노래입니다. 다른 가수들의 멋진 노래를 그냥 받아서 부릅니다. 그러니 팬들에게 그냥 드리고 싶어서 유튜브 공간을 이용합니다.”
그는 “듣는 가수가 아니라 보이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 자신의 노래를 들으면 가사의 풍경이 그대로 팬들의 머릿속에 그려져 보이게 하는, 화가 같은 가수가 되고 싶다는 뜻이다. 물론 이제는 자신의 노래를 많은 이들이 알고 부르는 가수도 되고 싶지만.

글·사진 이길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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