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출범 뒤 고용보험 가입자 수가 100만 가까이 늘었다. 특히 올해 들어 가입자 증가 속도가 빨라졌다. 7월 현재 고용보험 가입자는 모두 1372만 2000명으로, 전체 취업자 수 대비 50.1%에 이르렀다. 고용보험 가입률 50% 돌파는 1995년 고용보험제도 도입 뒤 24년 만의 일이다. 고용보험을 통한 실업자 생계 및 구직활동 지원 기능을 짐작할 수 있는 구직급여 신청과 지급액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경기 침체로 일자리 창출 능력이 떨어진 가운데서도 고용보험 가입자가 증가한 데에는 정부의 정책적 유인이 다양하고 커진 영향이 컸다. 일자리 안정자금, 두루누리 사회보험 지원, 국민연금 실업크레딧, 근로장려금 등 여러 정부 부처가 참여한 고용안전망 관련 정책들이 합주한 성과다. 고용보험은 고용안전망의 기본 틀이다. 이런 고용보험의 확대, 강화는 경제활동참가율과 고용률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좀 더 튼튼하고 넉넉한 고용보험은 노동시장의 활력을 키우는 요소다.
정부는 고용보험을 보완하는 새로운 안전망으로 ‘국민취업지원제’라는 한국형 실업부조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 고용보험과 기초생활보장제에서 벗난 취약계층에 대해 안정적인 일자리로 취업을 촉진하면서 최소한 생계 지원을 뒷받침하자는 취지로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고, 2020년 7월부터 시행 예정이다. 고용보험과 국민취업제도의 결합은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모든 국민을 포용하는 중층적 고용안전망의 완성을 뜻한다. 고용안전망의 진화 과정을 살펴본다.
취업난과 실직의 고통을 여럿이 겪는 것은 사회적 참사다. 고용 불안이 심화하고 대량 실업이 발생하면 국가적 재난이라 부른다. 경제 성장세의 둔화, 인구구조의 가파른 고령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고용 형태의 다변화 등으로 노동시장의 잠재적 위험지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위험에 노출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과 제도의 재설계 작업이 필요하다. 튼튼한 고용안전망의 구축이 바로 그 작업이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2017년 8월 3차 회의에서 수립한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을 통해 고용안전망(일자리 안전망) 확충을 핵심 국정과제의 하나로 채택했다.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 인상과 지급기간 연장, 고용 유지와 구직 촉진을 유인하는 정책 확대, 공공 고용서비스의 인프라 확충, 취약계층에 대해 재정으로 직접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의 확대 등을 세부 정책과제로 내놨다. 이런 정책들은 더욱 확대된 고용안전망의 개념을 바탕에 깔고 있다.
고용보험을 뼈대로 한 기존 고용안전망은 주로 안정된 일자리 취업자의 실업 위험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험 가입자가 실업으로 생활 기반이 허물어졌을 때 일시적으로 소득 보전 급여를 제공하면서 다른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고용보험을 통한 안전망이다. 반면 확대된 고용안전망 개념에서는 고용보험 가입 여부나 수급 자격에 상관없이 고용을 통해 국민 삶의 기반이 유지되도록 하는 게 기본적인 목표다. 실업의 장기화를 방지하고 불안정 고용을 축소하며, 저숙련·저임금 노동자의 빈곤 탈출을 지원하는 제도까지 고용안전망 개념에 포함된다. 문재인정부의 고용안전망 확충 방안에도 이런 개념이 적용된다.
청년 구직활동 지원금제도 눈에 띄어
확대된 개념의 고용안전망을 바탕으로 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은 재정 투입 규모의 증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최근 발표한 고용안전망 확충 사업 분석 보고서를 보면, 전체 13개 부처의 45개 사업에 걸쳐 편성된 올해 고용안전망 관련 예산 규모는 12조 4738억 원으로 2018년(10조 4840억 원) 대비 18.9% 증가했다. 고용안전망 확충을 위한 정부 예산은 2017년 5.1% 증가에 그쳤다가 2018년 19.3% 늘어 10조 원 선을 돌파했다. 2019년 예산을 부처별로 구분해보면, 고용노동부 예산이 10조 7913억 원으로 전체의 86.6%를 차지한다. 사업 유형별로는 고용안전망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예산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월평균 보수 210만 원 미만의 노동자와 사업주에게 국민연금과 고용보험료, 건강보험 부담을 최대 90%까지 덜어주는 두루누리 지원 사업에는 2018년보다 50.2% 증가한 1조 3419억 원의 예산이 올해 배정됐다. 1인 자영업자 또는 5인 미만 노동자를 고용하는 개인사업자에 대해서는 고용보험 가입 요건을 완화해 실업급여와 직업훈련 지원을 받을 있도록 하고, 초단기 노동자(1개월 소정 근로시간 60시간 미만)에게 생업 목적 여부와 관계없이 3개월 이상만 일하면 고용보험 가입 자격을 주는 것도 사각지대 해소 방안이다. 고용안전망 확충의 일환으로 올해 주목받는 고용부 정책으로 청년구직활동지원금(청년수당)제도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3월부터 시행된 청년수당은, 기준 중위소득 120% 이하 가구의 만 18~34세 미취업 청년에게 매월 50만 원씩, 6개월 동안 최대 300만 원을 체크카드 포인트 형태로 지급하는 현금성 복지다. 취업 또는 창업 시 지급이 중단되지만, 취업 후 3개월 근속할 경우에는 취업성공금 50만 원을 추가로 준다. 고용부는 올해 5만 2000명 지원을 위해 1582억 원의 예산을 마련했다.
정부의 고용안전망 확충 정책은 올해 상반기 노동시장의 각종 지표를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고용안전망 확충 방안을 논의하는 일자리위원회 회의 모습 | 고용노동부
서비스업·여성·영세사업장 증가 주도
먼저 올해 상반기 고용보험 가입자 수가 전년 동기 대비 51만 7000명 늘어나 상반기 기준으로는 2007년 이후 12년 만에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월간으로 보더라도 올해 3월부터 5개월 연속 50만 명대 증가세를 이어오고 있다. 업종에서는 서비스업, 성별로는 여성, 기업 규모로는 3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 연령으로는 50대와 60대 중심으로 고용보험 가입 증가를 주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고용안전성이 낮은 계층의 고용안전망이 튼튼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다.
고용보험 가입 증가의 원인과 관련해 고용부는 ‘서비스업 분야의 일자리 증가와 함께 고용보험에 대한 국민적 인식 개선 및 노동시장 취약계층의 사회안전망 강화에 따른 영향’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3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18년부터 지원하는 일자리 안정자금이 고용보험 가입 유인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 안정자금의 지원을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 확대, 청년 추가고용 장려금 등 청년 지원 고용정책과 연계해 고용보험 가입 신청이 늘도록 유도한 것이다. 올해 상반기에 국내 30인 미만 사업장 193만 개 가운데 약 37%인 71만 개 사업장이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을 받았고, 이들 사업장에 소속된 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 증가 폭은 27만 4000 명에 이른다.
최저임금 인상과 맞물린 고용안전망 확충은 임금 분배지표의 개선으로 이어졌다. 고용부의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1~4월 중 임금노동자 1인당 월평균 임금총액은 3.2% 증가한 가운데 300인 미만 중소기업 임금 상승률이 4.4%로, 300인 이상 대기업(-1.3%)보다 더 컸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월평균 임금격차가 2018년 같은 기간보다 21만 원 줄었다. 300인 이상 사업체의 법정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초과근로수당 감소를 고려하더라도 대·중소기업 간 임금 상승률 역전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하위 20%의 임금 대비 상위 20%의 임금 수준을 나타내는 임금 5분위 배율도 2018년부터 큰 폭으로 개선되고 있다. 또 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은 2017년 22.3%에서 2018년 19.0%로 떨어졌는데,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20% 미만을 기록한 것은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경제활동참가율 63.2%로 사상 최고치
노동시장에서 고용 조건이나 임금 수준의 격차가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현상이 경제활동참가율과 고용률의 개선이다. 만 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취업자와 실업자 수를 합친 비율인 경제활동참가율은 높을수록 노동시장의 활력과 건전성에 좋은 신호이다. 올해 상반기 경제활동참가율은 63.2%로, 1999년 6월 통계 기준 변경 이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수출과 투자 부진 등으로 경기가 뚜렷한 하강 국면에 들어섰는데도 노동시장 참여가 확대되며 취업자와 실업자가 동반 증가한 결과다. 생산가능인구 중 취업자의 비중을 나타내는 고용률은 67.1%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상반기 청년 고용률은 전년 동기 대비 0.8%포인트 상승해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43.1%를 기록했다.
대내외 경제 사정이 악화하고 불활실성도 커졌지만 정부는 고용 지표의 개선 추세가 끊기지 않도록 더욱 총력을 쏟을 방침이다. 고용안전망을 더 촘촘하고 넉넉하게 짜는 정책도 지속된다. 고용부는 고용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청년 미취업자 등 취약계층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우선 청년 구직활동 지원금 지원 대상을 대폭 넓혔다. 그동안 지원이 시급한 청년에게 혜택이 먼저 가도록 졸업 후 미취업 기간과 지방자치단체의 유사 사업 참여 이력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설정해 지원해왔는데, 8월 1일부터는 우선순위 없이 요건 확인 절차만 거치도록 했다. 지원금 도입 뒤 4개월 동안 우선순위가 높은 청년층 수요는 어느 정도 충족됐고, 하반기 공채 시즌을 앞두고 청년층 구직활동이 더 왕성해지는 상황 등을 고려한 조치다. 구직활동 지원금과 함께 청년층에 맞는 다양한 취업지원 서비스도 준비해두고 있다. 지원금 신청을 위해 각 지역 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방문하는 청년들에게는 센터뿐 아니라 여러 유관 기관의 취업 또는 창업 지원 서비스를 연계해 제공할 계획이다.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가입 요건은 하반기부터 더 완화됐다. ‘개업 후 1년 안’으로 제한했던 자영업자의 가입 신청 자격을 올해 초 ‘개업 후 5년 안’으로 확대했다가 7월1일부터는 개업 기간과 관계없이 가입할 수 있게 했다. 자영업자가 고용보험에 가입하면 폐업 등 사업 실패의 위험 부담을 덜 수 있고 새로운 일자리 탐색 기회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한다. 고용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워킹맘’들도 하반기부터 출산급여 헤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소득 활동을 하는 고용보험 미적용 출산여성에게 월 50만 원의 출산급여를 3개월 동안, 최대 150만 원까지 지원하는 것이다. 출산 후 30일이 지난 뒤부터 1년 안에 한 번만 신청할 수 있다.
내년 국민취업지원제도 시행이 분기점
정부가 구상하는 고용안전망 확충의 분기점은 2020년 7월이다. 그동안 논의해온 국민취업지원제도가 내년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계층을 상대로 1차 안전망은 고용보험, 2차 안전망으로는 국민취업지원제도라는 실업부조가 배치된다. 이로써 취업 경험이 없는 청년 구직자, 장기 실직자, 폐업한 영세 자영업자, 프리랜서와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까지 보호하는 ‘고용안전망의 완성’을 이루겠다는 게 정부 목표다.
하지만 고용안전망의 형식적 틀이 완성되더라도 실질적 내용을 채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고용보험 가입률이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 특히 고용 여건이 취약한 노동자일수록 사각지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영원한 ‘노동 빈곤’의 덫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분류한 우리나라 임시·일용직 노동자의 비중은 2017년 기준 전체 임금노동자의 20.6%로, OECD 회원국 평균(11.2%)보다 배 가까이 높다. 또 통계청의 2018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보면, 기간제·시간제·특수고용 등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43.6%로 정규직(87.0%)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부가 고용안전망을 꾸준히 확충하고 있지만,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노동시장과 고용구조의 변화 속도를 쫓아가지 못한다는 평가가 여전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와 고령화사회는 이미 다가왔거나 곧 부닥칠 미래다. 피할 수 없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면 고용안전망은 부분적 보완을 넘어 총체적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고용안전망의 완성은 달성할 수 없는 목표일지 모른다.
박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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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