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한겨레
“지금 일본 경제가 굉장히 많이 망가진 상태다. 내부의 경제 위기를 외부 때리기로 만회하려는 의도라고 본다.”
경제사학회장을 맡고 있는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 경제의 급소를 노렸다는 일본의 조치는 결국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최 교수는 “시간이 갈수록 일본 기업들이 더 불안해할 것”이라며 “조금만 버티면 우리가 이긴다”는 낙관론을 폈다.
그는 “일본 정부의 한국 ‘백색국가’(수출절차 간소화 대상국·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 이후 보여준 우리 국민의 상황 판단이나 대처 방식이 현명하다”면서도 “전문가나 정치인, 시민사회단체들은 뒷북치기식으로 뒤쫓아가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 정부가) 새로운 국가 위기관리 컨트롤타워로 언제 불거질지 모르는 여러 종류의 위기를 가정하고 그에 맞는 대비책을 하나씩 만들어놓아야 한다”는 게 최 교수의 주장이다.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린 다음 날인 8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훈동 대한민국역사박물관(7층 회의실)에서 최 교수를 만나 일본의 경제적 영향 등의 논의 및 국정소통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들어봤다.
일본, 내부 경제 위기 만회하려 가미카제식 외부 때리기
-일본이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했다. 배경은 뭐라고 보나.
=내부의 경제적 위기를 가미카제(제2차 세계대전 때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자살 공격을 한 일본군 특공대)식 외부 때리기로 만회하려는 의도라고 본다. 지금 일본 경제가 굉장히 많이 망가진 상태다. 2013년 아베 정권 출범 후 6년 6개월 지났는데 연평균 63조 엔, 우리 돈으로 683조 원을 찍어내 경기부양을 했는데 효과가 없었다. 2018년 35조 엔으로 양적 완화 규모를 축소했더니 GDP(국내총생산)가 1411억 엔 줄었다. 무역수지 적자까지 겹쳐서인데 일본은 내수경제 규모가 축소되고 있어서 무역수지에서 흑자를 내지 못하면 GDP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베의 경제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가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
=저는 아베 정권의 탄생을 ‘잃어버린 20년의 사생아’라고 표현한다. 일본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1991년부터 2001년까지 일본의 극심한 장기 침체 기간) 이후 온갖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하다 실패하고 금융위기 이후 직격탄을 맞았다. 그래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는데 너무 무능해서 다시 정권을 뺏겼다.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수출을 공격적으로 늘리겠다며 돈을 대규모로 찍어내 엔화 가치를 떨어뜨렸다. 이를 통해 수출을 늘리면 기업의 수익이 높아지고 투자와 고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환율효과로 기업 수익이 늘어나긴 했지만, 투자와 고용은 늘지 않았다.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도 상실했다. 일본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1980년대 말에는 10%가 넘었는데 계속 떨어져 2018년 3.4%까지 내려왔다. 일본은 지난 30년 동안 경제학 교과서에 있는 방법은 물론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 경제를 유지하는 마약성 처방, 또 다른 변칙까지 모두 시도했지만 이제는 그 구조가 지속 불가능한 상태까지 왔다. 돈을 찍어내서 그대로 국민에게 나눠만 줘도 그만큼 소득이 증가하는데 오히려 소득은 줄어들었다. 그만큼 경제의 효율성이 낮아지고 있다.
-내부의 경제적 위기 만회라기에는 일본 기업도 피해를 볼 텐데?
=반도체를 비롯한 국제 분업구조가 복잡한 산업일수록 소재·부품 그리고 완제품의 경쟁력이 맞물려 돌아간다. 일본의 소재·부품 산업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삼성전자가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앞으로 삼성전자와 거래가 끊기면 일본 기업들이 지금의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시민들이 7월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규탄하고 있다.│한겨레
내부 상황 돌파할 내적 추진력 없는 일본
-그런데도 일본이 수출규제 카드를 들고나온 목적은?
=일본이 국내 상황을 돌파할 내적 추진력이 없는 상황이다. 과거에도 일본은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등 외부의 환경을 이용해왔다. 강화도 조약부터 한국전쟁까지. 예를 들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만약 군사적 도발이 일어난다면 한국전쟁 때처럼 일본은 한국경제 자체를 파괴할 수도 있고 내부의 산업 생산을 복구할 수 있다. 한국이 턱밑까지 추격해오고 자기들 내부는 정체된 상황에서 초조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진행되면서 남북 경제통합이 이뤄지고, 궁극적으로 통일이 된다면 일본에는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3개 품목(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에칭 가스) 수출규제, 우리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일본이 놓친 게 있다. 반도체가 우리 수출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어 공격했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여기에 디스플레이 분야의 LG디스플레이까지 이들 3개 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다. 그런 외부 충격에 대한 대응능력이 다른 중견·중소기업보다 훨씬 크다.
그리고 우리 산업계의 일본 부품 수입 의존도가 높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대체 가능한 품목이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극히 일부 부품에 한해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그런 경우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 대체는 가능하다고 내부에서 판단하는 걸로 알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경우 한국무역협회나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의 협력을 받아서 수입선을 대체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만약 일본에서 수입하던 부품소재 모두를 수출 중단했을 때 우리가 대체를 못 한다는 것은 너무 극단적인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시작된 한국의 불매운동이 어느덧 50일을 지났다. 효과는 있었나.
=먼저 발단을 보면 대법원에서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 노동자들에 대해 일본 쪽의 배상 판결을 내리면서 이렇게 된 거지 않나. 어떻게 보면 정의라든가 전쟁범죄에 따른 인권유린 문제와 연결돼 있다. 그러니까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국민의 마음이 들어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적 가치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정의와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가 된다면 세계에서도 존경받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눈에 안 보이는 가치지만 굉장히 중요한 가치라고 본다.
경제적 가치로 본다면 일본 경제는 (내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 수출이 10에서 12, 15(%)로 증가하지 않으면 경제가 마이너스(성장)가 되는 상황이다. 지금 일본 기업들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고 엔화 가치도 높아지면서 작은 타격이라도, 경제적으로 피해가 작더라도 일본 경제 자체 구조를 보면 내수가 수축하는 경제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불매운동은 일본 수출에 타격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뒤 동해 영토수호훈련에도 돌입했다. 정부의 결정을 어떻게 보나.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독도 동해 영토수호훈련은 일본의 백색국가 배제 시행과 상관없이 진행됐다고 본다. 지소미아라는 것은 한미일 군사안보 협력체계 속에서 미국이 원했던 거다. 그런데 한미일 군사안보 협력체계는 기본적으로 중국이 원치 않는다. 중국의 사드 보복 사태에서도 봤듯이 우리의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는 일본보다 훨씬 크다. 그런 점에서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중국과 싸움보다는 일본과 싸움이 훨씬 피해가 작다. 그리고 제가 볼 때 지금 정부가 독도로 군사훈련을 나가는 이유도 싸움이 격화할수록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판세를 읽은 것 같다.
일본,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어… 오래 안 갈듯
-앞으로 한일관계 전망과 우리 정부의 대응 방향은?
=갈수록 아베 정권은 궁색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일본 기업들의 협조가 안 되면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베 정권은)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압박에 몰릴 것이고, (우리 정부가) 명분 있는 퇴각을 할 수 있는 외교적 노력을 한다면 이 싸움이 그렇게 오래갈 것 같진 않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금융위기로 인해 수요 충격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급 충격이다. 전 세계적으로 공급 사슬의 여러 가지 충격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이 공급 충격이라는 새로운 충격에 대응해야 한다. 시장을 좀 더 다변화하고 내수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이제는 국가정책을 운용하는 데 (국제 질서의) 불확실성을 상수로 포함해야 한다. 이 때문에 새로운 위기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국가 위기관리 컨트롤타워를 통해 언제 불거질지 모르는 여러 종류의 위기를 가정하고 그에 맞는 대비책을 하나씩 만들어놓아야 한다. 각 부처 차원에서는 할 수 없고 결국 청와대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강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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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