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 앞을 가로지르는 국회대로 변에 국회 수소충전소가 들어섰다. 수소충전소 뒤로 의원회관(왼쪽)과 국회의 사당이 보인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을 가로지르는 국회대로 변에 새로운 흰색 건물이 들어섰다. 9월 중순부터 문을 여는 국회 수소충전소다. 반투명 재질의 외벽을 통해 가볍고 깨끗한 수소의 속성을 담고, 수소에너지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에너지원으로서 이미지를 전달하려 했다는 게 현대자동차 쪽 설명이다. 총면적 1236.3㎡ 규모로 지어진 국회 수소충전소는 시간당 5대 이상의 수소전기차를 완충할 수 있는 25㎏/h의 충전 용량 설비를 갖추고 있다.
공사를 맡은 현대엔지니어링의 오광준 현장소장은 “현재는 디스펜서(충전기)를 1기만 설치했지만, 나중에 추가할 수 있게 설계에 반영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수소충전소는 1년 내내 쉬는 날 없이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되기 때문에 하루 70대 이상의 수소전기차가 이용할 수 있다. 서울 도심에 설치되는 최초의 상업용 수소충전소로 충전 비용은 ㎏당 8000~9000원이고, 1회 완충 시 비용은 약 4만 5000원이다. 일반 차량과 택시 모두 충전할 수 있다.
그동안 서울에서 수소전기차를 완충할 수 있는 충전소가 양재동과 상암동에만 있다 보니 쏠림 현상이 극심했다. 당초 현대자동차에서 연구용으로 마련한 양재 충전소는 충전이 무료라 지방에서까지 올라와 큰 혼잡을 빚었다. 상암 충전소는 충전압력(350bar)이 낮아 ‘절반’의 충전만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서울 어디서나 접근이 쉬운 여의도에 수소충전소가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 충전 여건이 한층 개선돼 수소·전기차 보급이 활성화될 전망이다.
▶국회 수소충전소 공사를 맡은 현대엔지니어링 직원들이 압축기를 설치하고 있다. 오른쪽 수소탱크는 복합재질로 된 탄소섬유 용기로 제작해 이음매가 없어 충격을 받아도 폭발하는 대신 찢어지게 돼 있다.
세계 최초로 국회에 수소충전소 설치
국회 수소충전소는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국회의원과 보좌진, 외부 방문객 등 하루 수천 명이 드나드는 의원회관이 수소충전소 바로 뒤에 있다. 국회의사당을 상징하는 회녹색의 돔 지붕도 수소충전소 너머로 보인다.
입법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인 국회에 수소충전소가 들어선 것은 한국이 세계에서 처음이다. 올해 1월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문희상 국회의장이 만나 국회 수소충전소를 추진키로 했고, 2월 산업부는 제1회 규제특례심의위원회를 열어 ‘규제 샌드박스’ 1호로 현대자동차가 요청한 국회 등 서울 시내 4곳의 수소차 충전소 설치를 허용했다.
규제 샌드박스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모래놀이터에서 유래한 말로 신기술·신산업의 육성과 국민의 생명·안전 등 공익적 가치를 균형 있게 고려하면서, 궁극적으로 정교하고 안전한 규제 설계를 추구하는 제도다. 2018년 9월 정보통신융합법과 산업융합촉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올해 1월 시행령이 정비되면서 규제 샌드박스가 가능해졌다. 정부는 기존 규제에 발목이 잡혀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싹도 트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규제혁신을 위한 세 가지 제도를 도입했다. 기업들이 신기술·신산업 관련 규제 존재 여부와 내용을 문의하면 정부는 30일 이내 회신해야 한다. 30일 이내 회신하지 않으면 관련 규제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안전성과 혁신성이 뒷받침된 신제품·신서비스인데도 관련 규정이 모호하거나 불합리해 시장 출시가 어려울 경우에는 임시 허가를 통해 시장 출시를 앞당길 수 있다. 관련 법령이 모호하고 불합리하거나, 금지규정 등으로 신제품·신서비스의 사업화가 제한될 경우 일정한 조건 아래 기존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실증 테스트도 가능하다.
국회 수소충전소는 실증특례 기간인 2021년 5월까지 우선 운영되며 향후 중장기 운영 여부가 검토될 예정이다.
?4월 국회 부지사용 허가, 5월 영등포구청의 건축 허가 등 국회 수소충전소 인허가부터 최종 완공까지 걸린 시간을 모두 합쳐도 6개월에 불과하다. 통상 수소충전소 구축에는 8~10개월이 걸린다. 국회와 정부, 관련 기관이 설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구축 기간을 줄인 것이다.
산업구조 혁신하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
이번 국회 수소충전소 구축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가 보여준 소통과 현안 해결 의지는 향후 각종 규제 해소를 통한 산업혁신의 대표적인 모범 사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는 석탄과 석유 기반 에너지원을 수소로 바꾸는 국가 에너지 시스템의 변화로 산업구조를 혁신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국회는 입법기관으로서 불필요한 규제를 혁신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앞장섰다.
5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수소충전소 착공식 및 협약식’에서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국회 수소충전소는 파리 에펠탑, 일본 도쿄타워 인근 충전소처럼 수소경제를 앞당기는 협력의 상징이자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국회와 행정부가 함께 좋은 결실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은 “국회 수소충전소는 국회가 규제 혁파에 솔선하고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 여야 의원과 산업부 등의 요청으로 설치하는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며 “불필요한 규제를 혁신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국회가 앞장서는 모범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5월 23일 강원도 강릉과학산업단지에 있는 강원테크노파크 강릉벤처 공장에서 수소 저장탱크 3기가 폭발했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강릉 폭발사고는 물을 전기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연구실험 시설에서 발생한 것으로 국제 규격에 따라 안전하게 설치되는 수소차나 수소충전소와는 전혀 다른 경우라고 설명한다. 사고가 난 수소탱크는 강철을 용접해 만든 용기여서 용접 부위에 이음매가 있지만, 수소차와 수소충전소에 사용되는 용기는 복합 재질로 된 탄소섬유 용기로 제작해 이음매가 없다. 이 용기는 충격을 받아도 폭발하는 대신 찢어지게 돼 있어 용기 파열 전에 수소가 방출돼 폭발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수소는 LPG 같은 무거운 기체와 달리 가볍기 때문에 유출되더라도 대기 중으로 빠르게 확산해 폭발 위험성이 적다는 것이다.
?강릉 폭발사고로 국회 수소충전소의 안전 공사는 더욱 강화됐다.
오광준 현장소장은 “수소충전소 주위를 에워싸는 콘크리트 옹벽(방호벽) 높이를 튜브 트레일러에 맞춰 2m에서 3.5m로 높였다”고 말했다. 수소충전소 위를 덮고 있는 지붕도 폭파가 났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옆으로 퍼지는 게 아니라 수직으로 날아가도록 설계했다. 오 소장은 “폭파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전등과 전선 등 충전소에 설치한 설비는 모두 전기 스파크(불꽃)가 튀지 않는 방폭 설비”라고 설명했다.
?국회 수소충전소에 이어 2020년 3월에는 공공청사로는 처음으로 경기 화성시청 안에 수소충전소가 생긴다. 이 역시 규제개혁의 결과다. 국무조정실은 8월 7일 정부 공공청사 안에 수소충전소 설치를 허용한다고 밝혔다. 그 전에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청사에 수소충전소를 설치하려고 해도 규제 때문에 허가 자체를 받을 수 없었다.
▶8월 2일 서울 마포구 수소전기차 충전소에서 충전하는 모습│연합
‘규제개혁 신문고’ 통해 화성시청에도 설치
화성시는 당초 공공청사 안에 30억 원을 들여 990㎡ 규모의 부지에 수소충전소 설치를 추진했지만, 수소충전소가 편익시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중단해야 했다. 공공청사는 이용자 편의 증진을 위한 구내매점, 어린이집, 은행 등 제한된 범위의 편익시설만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화성시는 편익시설에 충전소를 포함해달라고 정부의 ‘규제개혁 신문고’(www.sinmungo.go.kr)에 건의했다.
규제개혁 신문고는 국민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규제를 개선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하는 곳이다. 국무조정실은 국토교통부와 협의·조정을 통해 수소경제 활성화와 도심 충전소 보급이 필요한 현실을 감안, 수소충전소를 공공청사 편익시설 범위에 포함키로 했다. 올해 하반기까지 공공청사 내 편익시설 범위에 수소충전소를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도시·군계획 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할 예정이다.
임택진 국무조정실 규제신문고과장은 “이번 사례는 지방과 중앙정부가 협력해 현장의 규제를 해소한 매우 의미 있는 성과”라며 “수소차 보급의 가장 큰 걸림돌인 충전 인프라 확산을 위한 정부의 다각적인 규제혁신 노력의 하나로 향후에도 선제적인 제도 개선으로 국내 수소산업의 성장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서철모 화성시장은 “수소차 등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인프라 확충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아직은 수요가 적어 민간 영역에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공공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여러 상징적 의미를 가진 화성시청 수소충전소가 전국의 수소경제 인프라 구축을 앞당기는 마중물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규제개혁으로 정부청사, 지자체, 보건소 등 전국 공공청사 4500여 곳에 수소충전소를 설치할 수 있게 돼 수소 인프라 구축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접수부터 심사까지 44일 ‘초고속’… 규제 샌드박스 신속 처리
VR(가상현실)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A 업체는 2018년 서울 잠실점과 부산 해운대점을 시작으로 올해 7월 서울 강남역과 부산 서면점을 새롭게 열었다. 새로운 하드웨어, 콘텐츠, 영업장 등이 결합한 VR 테마파크는 융·복합적 성격이 강해 법과 규제도 거미줄같이 촘촘히 엉켜 있어 사업을 시작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VR 테마파크가 빠르게 퍼질 수 있었던 것은 ‘규제 샌드박스’ 덕분이다. A 업체 대표는 “규제 샌드박스가 없었으면 매장을 내는 데 6개월 이상 더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1월부터 규제 샌드박스를 시행한 정부는 6개월 만에 모두 81건의 과제를 승인했다. 7월 16일 국무조정실이 낸 ‘규제 샌드박스 시행 6개월 성과’ 자료를 보면, 승인된 81건 가운데 혁신 금융과 관련한 사례가 46%(37건)로 가장 많았고 산업 융합(32%), ICT 융합(22%)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규제부처별 규제 샌드박스 승인과제를 분석한 결과 금융위원회(43%), 국토부(12%), 식품의약품안전처(12%), 산업부(10%), 보건복지부(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규제 샌드박스의 과제 접수부터 심사까지 평균 44일이 걸려 영국, 일본 등 외국(평균 180일)보다 빠른 심사가 이뤄졌다.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 초기인데도 심사 절차 간소화를 위한 ‘패스트트랙 심사 제도’를 도입하는 등 빠른 심사를 통해 연간 목표의 초과 달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기술별로는 앱(App)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 기술이 53%(43건)로 가장 많았고, 사물인터넷(10%), 빅데이터·블록체인(각 6%), 인공지능(5%) 순이었다. 유형별로는 실증특례가 72%(58건)로 가장 많았고, 유연한 법령해석과 정책 권고 등 적극적인 행정을 통한 문제 해결 사례도 16%(13건)를 차지했다.
규제 샌드박스 과제 가운데 이미 시장에 발매되거나 실증 테스트에 착수한 과제는 14%(11건)로, 연말까지는 그 비율이 98%로 올라갈 것으로 정부는 예측했다.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은 “올해 승인 목표인 100건의 80%를 이미 달성했으며, 현재 대기 중인 과제들만 성공적으로 심의를 통과해도 (연내에) 100건을 넘는 것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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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