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카자흐스탄 알마티시 알가바스 산업지구에서 공영운 현대차 사장, 스클랴르 카자흐 산업인프라개발부 장관, 알마티 시장 등 양국 관계자와 ‘카자흐스탄 현대자동차 조립공장 기공식’에 참석한모습이다.│산업통상자원부
한·인도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5차 개정협상을 앞둔 2018년 5월 19일, 인도 언론들은 ‘한국 배의 인도 수출길 열리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2010년 2월 인도에 한국산 배 등 생과실의 수출 허용을 공식 요청한 이후 2018년 인도 검역당국이 처음으로 한국산 과일의 수입을 허가한 것이다.
우리 농산물 도매 및 수출업체 에버굿도 한국산 배를 인도에 선보일 기회를 얻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 뭄바이 무역관 등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2019년 5월에는 청과류 수입업체와 거래가 성사됐고, 본격적인 수출(1만 3705달러)을 시작했다.
화장품 제조업체 두선코스매틱도 뭄바이 무역관의 지원을 발판 삼아 인도 시장으로 진출을 탐색하고 인도 법인을 설립했다. 이후 인도 전 지역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을 벌였고, Colorbar Group과 4만 6000달러의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두 기업 이야기는 코트라 ‘신남방 비즈니스 데스크’를 통해 신남방 국가에 진출한 대표 성공 사례다. 신남방 국가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소속의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와 인도를 합해 총 11개국을 말한다.
▶두선코스매틱 담당자가 인도뭄바이 무역관을 통해 인도 사람들에게 자사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사람·평화·상생번영 공동체가 핵심
반도체, 석유화학, 평판디스플레이, 철강판, 선박 등 기존 수출 주력품목 관련 기업뿐 아니라 우리나라 다양한 규모의 기업들이 최근 신남방 국가에 진출하고 있다. 식품 제조업체 해우농수산은 미얀마 양곤에 2020년 6월경 식품공장의 설립 및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싱가포르 대형 드러그스토어인 왓슨(Watsons) 매장에 가면 우리나라 코스메틱 업체 세이션의 남성 샴푸 브랜드인 그라펜의 일부 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9월 16일부터는 60여 개 매장에 모든 샴푸 제품이 입점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코워킹 스페이스 업체 코하이브와 전자상거래 업체 파이브잭(인도네시아), 한국 화장품 전문 유통 플랫폼 리메세(인도), 요식업 및 콘텐츠 크리에이터인 논라 가이즈(베트남) 등 신남방 지역에서 해외 청년창업 성공사례도 하나씩 축적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1월 9일 열린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신남방정책’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이는 사람(People)·평화(Peace)·상생번영(Prosperity) 공동체 등 이른바 ‘3P’를 핵심 개념으로 한다. 아세안 국가들과 협력 수준을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국만큼 끌어올린다는 것이 골자다.
▶2018년 7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싱가포르 비즈니스 파트너십’에서 업체들이 1:1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경제외교 활용포털
아세안 사무국에 따르면 신남방 국가는 평균연령 30세, 총 20억 인구 GDP(국내총생산) 5.4조 달러(2017년 기준)의 젊고 역동적인 성장 지역으로 손꼽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30년 세계 중산층 소비의 59%가 동남아에서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는 등 향후 매우 유망한 시장으로 알려졌다. 코트라 자료에 따르면 이들 지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8000곳 이상으로 한 해 방문객은 약 900만 명에 달한다. 경제를 초월해 문화 및 관광 교류의 거점으로 봐도 되는 셈이다. 그간 민간 차원의 신남방 지역 진출도 활발히 이루어져 제조업(47.9%), 금융업(21.4%), 도소매업(21.4%) 등 우리나라의 신남방 지역 투자 규모는 2018년 기준 61억 달러에 이른다.
문 대통령은 신남방정책 천명 이후 아세안과 인도에서 경제, 문화, 외교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의 기반을 다져나갔다. 2018년 8월에는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이하 신남방위원회)가 공식 출범해 정책 추진을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며 체계와 전략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11월 인도네시아(이하 인니)·베트남·필리핀, 2018년 3월 베트남, 7월 싱가포르·인도를 방문했다. 2018년 6월에는 필리핀 대통령이, 9월에는 인니 대통령이 방한했다. 문 대통령의 2019년 첫 해외 순방 역시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아세안 3개국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8년 제55회 무역의날에 아세안 4.7%(2018년 1~10월), 인도 2.5% 상승 등 신남방 지역 수출이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해 전체 수출 성장을 견인했다고 밝혔다.
중국 이어 두 번째 비중, 무역 효자
인니, 인도, 베트남 등에 국내 대기업도 많이 진출해 있다. 롯데케미칼은 인니에 30억 달러 규모의 석유화학 플랜트를, 포스코는 2020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열연공장을 건설하기로 했고, 인도에서는 2019년 하반기 연 30만 대 양산을 목표로 기아자동차가 완성차 공장을 준공하기로 했다. 베트남에는 대웅·일동·광동제약 등 9개 제약 업체가 베트남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2004년 해외 지사를 설립하며 베트남에 진출한 대웅제약은 2019년 3월 베트남 최대 제약사 트라파코사와 기술 이전 및 현지 생산을 위한 ‘킥오프 미팅’을 진행했다. 김동휴 베트남 지사장은 “베트남의 자국 산업 보호 정책과 높은 진입장벽 등의 기조에 선제적 대응하기 위해 현지 기업에 지분 투자를 통한 전략적 제휴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인도에선 삼성전자가 3월 갤럭시A를 출시하고 70일간 500만 대를 판매하며 매출 10억 달러(1조 2000억 원), 시장점유율 23%를 기록하면서 1위 샤오미(점유율 30%)와 격차를 좁히는 등 한국산 스마트폰의 현지 판매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아세안과 수출 및 교역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우리 무역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18년 한·아세안 교역은 1600억 달러를 달성했고, 올해 1∼6월 아세안 교역 비중은 14.3%를 기록했다. 세계적인 건설경기 부진 추세 속에서도 신남방 지역은 꾸준히 국내 건설산업의 주요 수주처로 떠오르고 있다. 2019년 6월 기준, 해외 건설 수주액은 119억 달러로 2018년 동기(175억 달러) 대비 68% 수준이다.
신남방과 더불어 주요국(미·일·중)에 편중된 수출 시장을 다변화할 수 있는 곳으로 신북방 지역도 손꼽힌다. 신북방 대상 국가는 러시아, 몰도바, 몽골,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조지아, 중국(동북3성),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이다.
‘신북방정책’은 우리나라가 해양과 대륙을 잇는 가교 국가로서 정체성을 회복하고 북방 지역을 새로운 ‘번영의 축’으로 삼는 것을 목표로 하는 현 정부의 핵심적 대외정책 중 하나다. 이는 2017년 6월 극동개발을 위한 남북러 교류 활성화 차원 추진이 본격화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문 대통령이 러시아와 정상회담, 중앙아시아 순방 등을 통해 각국의 국가발전 전략과 신북방정책의 조화에 대한 합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2017년에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이하 북방위원회)가 출범했다. 문 대통령은 신북방정책과 관련해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9개 다리’(가스, 철도, 항만, 전력, 북극항로, 조선, 농업, 수산, 일자리) 등 9개 분야에 대한 동시다발적 협력사업 같은 경제협력을 제안하기도 했다.
아세안·인도–중·러 두 경제벨트 연결
산업부에 따르면 신북방 지역의 수출 비중은 3년 연속 상승세(2018년 기준)다. 신북방 국가에 진출한 우리 기업 사례 중엔 농업, ICT 분야도 한 축을 담당한다. 우리 기업 나래트랜드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손쉽게 농장을 관리할 수 있는 솔루션 ‘반딧불이’로 러시아 시장에 문을 두드렸다. ICT 기업 라이브스톡은 가축의 몸에 착용시키면 가축 상태 모니터링, 특정 범위 이탈 여부 확인이 가능한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개발해 카자흐 농림부 산하 축산연구소 및 알마티 주정부와 각각 방목가축 관리 프로젝트 시범사업 협약을 체결했다.
2018년 12월에는 현대차·러 정부 간 신규 투자계약이 체결됐다. 카자흐스탄은 현지 자동차 업체인 아스타나사의 현대차 조립공장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고, 우즈벡 타슈켄트에는 ‘플랜트 수주지원센터’가 설치됐다. 정부는 바다를 통해 아세안과 인도까지 잇는 신남방정책과 대륙을 통해 중국·러시아까지 잇는 신북방정책 두 개의 경제벨트가 이어질 경우 남북은 ‘동북아 경제협력의 허브’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를 통해 ‘한반도 신(新)경제지도’가 완성될 거라는 구상이다.
김청연 기자
▶7월 16일 서울 광화문 신남방정책추진단 대회의실에서 주형철 위원장(대통령 경제보좌관) 주재로 관계부처 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3차 전체회의가 열렸다.│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신남방 비자 개선·신북방 맞춤 경협 등 ‘가속’
신남방위원회는 7월 16일 제3차 전체회의를 통해 신남방 국가와 인적교류 활성화 및 방한 관광객 확대를 위해 비자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복수비자 발급 대상을 아세안 국가의 자산가, 기업인,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등으로 확대하는 식이다. 또 방한 수요가 높은 일부 국가에 대해 개별관광객 단체비자를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단체관광객 온라인 비자 신청도 도입하기로 했다.
신남방 지역의 한국어 교육 활성화를 위해 현지 정규 초·중등학교 및 대학 내 한국어 과목 채택을 2022년까지 신남방 국가(11개국) 전체로 확대 추진하는 등 한국어 교육도 대폭 확대해나가기로 했다.
신남방 금융협력 플랫폼 구축 추진도 지속해나가기로 했다. 특히 신남방 국가 기업 등이 우리 제품을 수입할 경우 한국무역보험공사가 보증을 제공하는 ‘단기 구매자신용제도’를 신설할 계획이다. 아울러 금융협력·정책금융 기능을 포괄적으로 수행하도록 ‘한·아세안 금융협력센터’(가칭) 설치도 추진하기로 했다.
11월 25~26일 부산에서 신남방정책의 기반을 강화하는 중요한 자리인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이하 특별정상회의)가 열린다. 특별정상회의의 한국 개최는 2009년(제주)과 2014년(부산)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로, 한국은 아세안과 공식 대화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 중 가장 많은 특별정상회의를 주최하는 국가가 된다.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가 3월 27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권구훈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과 민간위원, BH, 관계부처 및 지방자치단체, 유관기관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4차 회의를 열었다.│북방경제협력위원회
신북방정책도 본격화하고 있다. 권구훈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은 6월 26일 5차 회의를 통해 “기존 국제질서 변동·국제무역 침체 추세·기술 발전의 가속화 등 한반도를 둘러싼 국내외 여건이 녹록지 않다. 변화에 주도적으로 대응하며 협력 기회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신북방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위원장은 특히 국토교통부 중심으로 작성된 인프라 기업 진출 관련 방안에 대해 “도로·철도·공항, 플랜트, 스마트시티 등 첨단 인프라 분야에서 북방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며 “2022년까지 북방 해외건설 수주액 150억 달러 달성, 투자개발사업 계약 7건 추진 등 기업들의 해외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를 지원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권 위원장은 “지난 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후 지역별로 맞춤형 경협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북방위원회 주도로 한·러 혁신센터가 인천 송도에서 출범했고, 7월 24일에는 제3차 한·러 기업협의회도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