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여왕… 20만 평 ‘녹색 바다’에 자연체험학습장 ‘치유 숲’

2019.08.26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l▶아버지 김익로 선생이 조성해놓은 숲을 딸 김은정 씨가 대를 이어 힐링의 숲으로 가꿔 가고 있다. 김은정 밀브릿지 대표가 전나무 숲속에서 아버지의 숨결을 느끼고 있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시다. 시인은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보았다. 그리고 그 햇살에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또 나무의 그늘을 사랑한다고 읊조린다.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고도 했다. 그늘, 나무, 햇살, 아름다움….
그것을 보고 싶었다. 느끼고 싶었다. 강릉행 KTX를 탔다. 1시간 40분 만에 도착한 진부역. 택시를 탄다. 15분 만에 도착한다. 방아다리 약수터다.
방아다리 약수라는 이름은 이곳이 어느 화전민이 디딜방아를 놓고 살던 곳이었는데, 곡식을 찧던 어느 날 암반이 파인 곳에서 약수가 솟아오르기 시작해 그렇게 이름 붙었다고 한다.

잠시 전설을 따라가본다. 한 노인이 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백방으로 약을 써봐도 아무 효험이 없었다. 우연히 이곳에 이르러 잠이 들었다. 꿈에 백발이 성성한 풍채 좋은 노인이 나타났다. “제 인생을 가련하게 생각하시어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초 있는 곳을 가르쳐주시오”라고 호소하니, “네가 누워 있는 자리를 파보아라” 하고는 사라졌다. 노인은 잠에서 깨어나 있는 힘을 다해 땅을 파헤치니 지하에서 맑은 물이 솟아올랐다. 물을 마셨더니 정신이 맑아지고 힘이 났다. 며칠을 머무르면서 물을 마시자 마침내 병이 나아, 산신단을 모시고 크게 제사를 지냈다 한다.

l▶방아다리 약수터의 쇳물 맛 나는 약수는 위장병에 특히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아다리 약수 유명…40m 높이 전나무 빽빽
약수터 물을 마셔본다. 녹물처럼 붉고 사이다처럼 톡 쏜다. 강한 맛이다. 위장병에 좋다고 한다. 철분과 탄산이 주성분이다. 샘 안에서는 보글보글 물방울이 오르고, 샘 주변의 돌들은 붉은 녹물이 짙게 배어 있다.
차에서 내려 약수터까지 오는 300m 구간에는 높이 40m가량의 전나무가 마치 사열병처럼 양쪽으로 가지런히 서 있다. 전나무뿐 아니다. 잣나무, 소나무, 가문비나무, 박달나무, 주목나무 등이 울창하다. 공기가 상쾌하다. 폐에 깨끗한 산소가 가득 스며드는 느낌이다. 숲길을 만끽해본다. 천천히 걷는다. 숲속에 설치한 편한 의자에 누워본다. 하늘이 전나무 가지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숨을 깊이 쉰다. 햇살이 숲을 가른다.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잎새가 바람에 쓸려 부딪치는 소리도 들린다. 그늘도 있다. 시인이 왜 그늘을 사랑한다고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l▶전나무 숲속에 자리 잡은 그네와 긴의자.

약수터 주변에는 용당과 산신각이 있다. 백발에 흰 수염이 무성한 산신의 초상은 인자하다. 산신의 손길을 느끼며 앉아 있는 호랑이도 정겹다. 화려한 단청 없이 자연스러운 나무의 색과 결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당우가 멋스럽다. 숲길을 걸어 올라간다. 나무 의자를 겸한 그네가 있다. 살짝 앉아 흔들어본다. 눈을 감는다. 몸의 움직임에 숲속의 공기가 따라 움직인다. 서서히 나와 자연은 하나가 된다. 이 시간이 영원할 수 있을까?
이 숲은 개인이 조성했다. 무려 20여만 평(약 661,157m²)의 산에 나무를 심었다. 황폐했던 산에 한 개인이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산에 나무를 심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집 안의 정원에 심는 것도 아니고 산 전체에 나무를 심고 또 심었다. 한때 ‘산림왕’으로 불렸던 고 김익로(1922~1993) 선생의 피와 땀이 서린 숲이다. 사유지였던 이 일대 임야는 1975년 오대산 국립공원으로 편입됐다. 3년 전 김익로 선생의 딸 김은정(55) 씨가 허가를 받아 ‘밀브릿지’라는 이름으로 자연체험학습장을 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꼽히는 승효상 씨가 자연 친화적인 건물을 지었다. 숙박 시설과 식당 등을 품은 밀브릿지는 입소문이 나며 산림욕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방아다리’라는 이름을 그대로 영어로 옮겼다. 약수터 근처 카페에서 김 씨를 만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었다.

l▶밀브릿지의 상징인 전나무 숲길을 한 부부가 다정히 손잡고 걷고 있다.

재산 대부분 사회 환원 유언
“어렵고 무서운 분이었어요.” 평범한 아버지는 결코 아니었다. “아버지는 일찍부터 사업가로 성공했어요. 할아버지는 평양에서 이름난 포목상이었고요. 아버지는 경기상고를 나와 원주금융조합에서 7년간 근무하셨어요. 일제 말기 강제 노역을 피해 오대산에 숨어 들어가셨대요. 당시 동양척식회사가 무자비하게 우리의 산림을 훼손하는 것을 보고 가슴 아파하셨대요. 그래서 나중에 돈을 벌면 산을 사겠다고 결심하셨대요. 더 이상 산림이 망가지지 않게 막아야겠다고 생각하신 거죠.”

해방 이후 아버지는 월정사와 계약을 맺고 사찰림에서 나온 나무로 목기를 생산했다고 한다. 전국을 석권하며 돈을 벌었다. 1959년 9월 한반도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사라호 태풍은 그에게 더 큰 돈을 벌 기회를 주었다. 벌채 허가 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던 시절, 태풍으로 인해 훼손된 나무로 생선을 담는 어상자를 만들어 판 것이다. 벌채 허가 절차가 생략된 것이다. 돈방석에 앉은 셈이다. 그는 그 돈으로 산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당시 평당 10원에서 100원이 고작이었다. 그는 강원도 평창, 충북 제천 일대 6일장을 돌며 산을 샀다. “당시 땅문서를 들고 김익로를 찾아가면 값도 후하게 쳐주고,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결제해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해요. 그렇게 산을 사서 아버지는 이듬해 봄에 나무를 심으셨어요. 해마다 평균 10만 주를 심으셨다고 해요.”
5공화국 출범 전 전두환의 계엄사령부는 그에게 재산 헌납을 강요했다. 끝내 거부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삼청교육을 받으며 버텼다. 세무사찰도 버티며 자신의 산을 지켰다고 한다. 그야말로 인생을 걸고 키운 숲인 셈이다.

l▶밀브릿지 입구 모습

전나무 숲에 들어갔다. 딸은 아버지가 애써 심은 나무들을 쓰다듬는다. 전나무가 빽빽한데 그리 굵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사연이 있다. “전나무가 굵지 않은 이유가 있어요. 국립공원으로 편입되며 재산권 행사가 제한됐고, 간벌을 하지 못했어요. 나무를 심고 10~20년 사이에 나무의 간격을 넓히기 위해 솎아내는 간벌을 하지 않으면 나무가 굵게 자라지 못해요. 촘촘한 면적에서 한정된 영양분을 나눠야 하기 때문이죠.” 아쉽다고 한다.
김익로 선생은 산림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고등학교를 세우고 싶었다. 부지도 마련했으나 허가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1957년 제천의 대제중학교를 인수했다. 자신이 번 돈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의지를 생전에 가족들에게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l▶전나무 숲을 찾은 탐방객들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재산권 제한돼 간벌 못해 나무 야위어”
무남독녀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김 씨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으나, 아버지가 별세한 이후 교육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교육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고 지금은 대제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아버지는 평생 가꾼 나무를 결코 돈으로 계산하지 않으셨어요. 직접 심고 가꾼 오대산의 숲이 잘 보존돼 후손들의 쉼터가 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아버지 생전에 이 지역을 대규모 위락단지로 만들려는 한 재벌이 큰돈을 내며 팔라고 했지만 한마디로 거절하시는 아버지 모습을 보며 자란 딸이기에 전나무 숲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다르다.

l▶고 김익로 선생의 생전 나무 가꾸는 모습

김 씨는 밀브릿지 설립 허가를 받는 데 10년이 걸렸다. 비록 사유재산이지만 국립공원의 일부이기에 서두르지 않았다고 한다. 탐방객들이 몸으로 자연을 느끼며 편하게 휴식을 하고, 교양적 욕구도 충족할 수 있는 숲속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김 씨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치유 공간으로서 밀브릿지가 자리 잡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무와 숲, 그리고 자연과 대(代)를 이은 인연이 진하게 다가온다.

글·사진 이길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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