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8년 ‘9·13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한 지 11개월 만에 민간택지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기로 하는 추가 대책을 내놓았다. 분양가 상한제는 새 아파트 분양가를 적정 수준에서 엄격히 관리하겠다는 정책이다.
최근 서울 강남 재건축을 중심으로 일부 지역 새 아파트의 높은 분양가가 일대 집값을 끌어올려 주택시장 과열로 번질 우려가 커지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치솟는 분양가를 누그러뜨리고 집값을 안정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서울 등 수도권에서 시세 대비 20~30% 저렴한 새 아파트가 공급될 수 있어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내 집 마련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토교통부는 8월 12일 더불어민주당과 당정협의를 거쳐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기준 개선 추진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은 우선 특정 지역을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는 조건을 완화했다. 현행 ‘직전 3개월간 해당 지역 주택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 초과한 지역’으로 된 지정 조건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으로 바꿨다. 현재 투기과열지구는 서울 25개 구와 경기 과천·광명·하남시, 성남 분당구, 대구 수성구, 세종시 등이다.
강남4구 등 서울 전역 적용될 듯
이번 대책의 핵심은 그동안 사실상 유명무실했던 상한제 적용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현실화한 것이다. 투기과열지구 중 △직전 1년 평균 분양가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웃돌거나 △직전 2개월 청약경쟁률이 5 대 1을 넘거나 △직전 3개월 주택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하면 상한제 적용 심의 대상이 된다. 투기과열지구에서 선택 요건 3가지 중 하나만 충족해도 국토부 산하 주거정책심의위원회 결정을 통해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것이다. 최근 청약경쟁률이 과열되고 분양가가 뛴 곳이 많아 투기과열지구 전역은 기본적으로 상한제 심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10월 초 주거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첫 대상 지역을 선별하기로 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현재 청약시장 판도를 고려할 때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를 포함한 서울의 상당수 지역이 청약경쟁률 요건을 충족할 것으로 내다본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2019년 6월 말 기준 최근 1년간 서울의 민간아파트 분양가는 전년 동월 대비 21.02% 올랐다. 청약경쟁률 선택 요건을 적용해도 서울 전역이 충족되기는 마찬가지다. ‘부동산114’ 조사를 보면 최근 6, 7월 서울지역 평균 청약경쟁률은 각각 12.42 대 1, 18.13 대 1로 두 달 연속 10 대 1을 넘었다. 이에 따라 주택법 시행령이 발효되는 10월 초까지 청약경쟁률과 분양가격 변동을 다시 검토하더라도 서울을 비롯한 투기과열지구 상당수는 요건을 충족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부동산업계는 민간주택 분양가 상한제가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내 집 마련 기회를 더 줄 것으로 전망한다. 무엇보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의 새 아파트 분양가가 지금보다 크게 내릴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자체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주요 단지 분양가가 현 시세보다 최대 30%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문기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서울 지역 세 곳의 아파트를 대상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시세 대비 70~80%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연말 분양 예정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는 주변 아파트 시세가 3.3㎡당 4000만 원대로,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면 일반 분양가가 3.3㎡당 3000만 원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초점 맞춰
정부는 이번 대책을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했다. 이문기 실장은 “무주택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부담을 완화하려면 부담 가능한 수준의 분양가 책정이 필요하다”면서 “최근 1년간 서울 아파트 분양가격 상승률은 21.02%로 기존 주택가격 상승률 5.74%에 비해 약 3.7배 높았다”고 설명했다. 비싼 분양가격이 주변 집값 상승을 견인해 무주택 실수요자의 부담을 높인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이와 함께 재개발·재건축 아파트도 ‘입주자 모집공고’(분양) 승인신청 시점부터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현행 시행령에서는 정비물량의 경우 관리처분 인가를 신청하는 공공택지 아파트부터 상한제를 적용했지만 분양을 준비 중인 민간택지 재개발·재건축 아파트에까지 적용 범위를 넓힌다는 것이다.
또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의 전매제한 기간은 시세보다 분양가가 낮을수록 길게 설정해 단기 시세차익 실현을 막기로 했다. 분양가가 인근 시세 이상이면 5년, 80~100%이면 8년, 80% 미만이면 10년까지 전매가 제한된다. 또 수도권 공공분양주택과 마찬가지로 일정 기간 거주 의무기간도 두기 위해 주택법 개정을 연내 추진하기로 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관련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은 입법예고 뒤 국무회의를 거쳐 10월 확정·시행된다.
김청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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