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시트’ 주인공 살린 한국 건물의 외벽

2019.08.19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l▶미스 반 데어 로에가 디자인한 시그램 빌딩은 유리로 마감된 모더니즘의 매끈한 표면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여름 휴가지에서 극장에 갔다. 시원한 극장에서 스릴 있는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은 피서법이리라. 요즘 한창 인기 있는 <엑시트>를 봤다. 재난 영화 장르다. 재난 영화들을 보면 늘 등장인물은 어딘가에 매달려 있다. 중학교 때 극장에서 처음으로 본 재난 영화인 <타워링>은 정말 굉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TV에서는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해주었다. 이 두 명화는 1970년대에 제작된 최고의 재난 영화다. 두 영화는 내 또래 세대에게는 또렷이 각인되어 있다.
이 영화들에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매달린’ 장면이 이따금씩 등장한다. 사람들은 어딘가에 매달려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는 모습에서 극도의 스릴을 느낀다. ‘매달린다’는 행위는 위기의 삶, 언제든지 밑바닥으로 떨어질수 있다는 불안한 인간의 삶을 잘 반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때로 절벽 같은 곳에 매달리는 꿈을 꾼다. 사람들이 이런 꿈을 많이 꾼다면 불안과 스트레스가 만연한 것이리라. 그래서 남녀 주인공이 영화 내내 매달려 있는 <엑시트> 같은 영화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마침 또 암벽등반이라는 스포츠가 대중화되었다.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삶은 예전보다 더 위태로워졌는데, 여가 시간에도 암벽등반으로 스스로 위태로운 상황을 만들어 즐기는 것이다. 여러모로 <엑시트> 같은 영화가 제작될 만한 환경을 갖춘 것 같다.
암벽등반을 취미로 즐기는 두 주인공은 영화 내내 매달리고 기어오른다. 이런 장면을 계속 보다가 건물을 기어오르는 것은 디자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l▶벽돌 건물을 오르는 클라이머. 유튜브 영상 캡처

기어오르는 것과 디자인의 관계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기어오르는 것은 암벽이 아니라 건물이다. 맨손으로 어딘가를 오르는 클라이밍은 반드시 기어오르는 그 대상에 약간이라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 인공물이 아닌 자연의 암벽은 풍화작용으로 자연스럽게 손과 발로 버틸 수 있는 형태가 만들어진다. 반면 건물의 벽은 정확하게 수직이다. 인공적으로 만들었으므로 비빌 언덕이 존재할 수 없다. 이론상으로 그렇지 실제로는 다르다. 예를 들어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린 건물의 벽에는 아래 벽돌과 위 벽돌 사이에, 또 옆 벽돌 사이에 약간이나마 버틸 만한 공간이 생긴다. 암벽등반 역시 그렇게 아주 작은 틈을 찾아 기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암벽이 아니라 건물 오르기는 클라이밍(climbing)과 구분해 ‘빌더링(buildering)’이라고 한다. 유튜브에서 이 단어를 검색하면 클라이머들이 대부분 벽돌 건물을 기어오른다. 그러니까 매끈한 시멘트 건물이나 유리벽을 기어오르는 클라이머는 없다. 그런 곳에는 틈이 없기 때문이다. 유튜브의 빌더링 영상은 주로 유럽이나 미국, 남미 도시들에서 벌어지는 현장을 보여준다. 그 영상들을 보니 서양에는 벽돌 건물이 굉장히 많다. 벽돌로 지은 작은 집과 작은 다리들이 주로 클라이머들의 공략 대상이다. 서양에서 흔히 보이는 고전 양식의 건물들 역시 틈이 존재한다.

반면 벽돌이나 돌로는 높은 건물을 짓기 힘들다. 높은 건물은 대부분 철근 콘크리트 또는 강철 기둥으로 건물을 지탱하고 외벽은 콘크리트나 유리로 마감한다. 이런 형식의 건물은 새로운 기술과 재료의 탄생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형식은 늘 내용을 규정한다.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기술이 생기자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양식, 즉 새로운 의미의 건물이 출현한다. 유리와 콘크리트로 마감한 매끈한 벽은 과거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디자인이다. 이것이야말로 모더니즘 디자인의 정수이고 본질이다. 그것이 축소된 모습은 스마트폰에서 늘 구경하고 있다. 장식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표면이다. 이런 표면의 의도는 최대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절제다. 모더니즘 건물이 이전 역사주의 건물과 달라진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말을 덜 하겠다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촌스럽다는 의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게 매끈한 벽은 기어오를 수 없다. 클라이머들에게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모던한 건물이 서양 도심에는 오히려 많지 않다는 것이다. 도시의 중심은 모더니즘이 창궐하기 이전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들로 채워져 있다. 도시의 클라이머들은 어디든지 기어오를 벽을 찾아낼 수 있다. 반면 전후 개발도상국의 지위에 있었던 나라들에서 오히려 모더니즘 세례를 받은 도시를 볼 수 있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마감재는 콘크리트와 유리다. 그럼 과연 이런 도시에서는 빌더링이 어려운 걸까?
천만의 말씀. 영화 <엑시트>를 보면 도입부에서 아슬아슬한 빌더링 장면이 펼쳐지는 곳은 잔치가 벌어지는 작은 규모의 컨벤션 홀이다. 이런 사업을 하는 분들은 주로 서양의 고전 양식을 사랑한다. 그리하여 건물은 돌로 마감되었지만, 표면 밖으로 튀어나온 장식적 요소가 많다. 웨딩홀 플라자 따위의 이름이 붙은 다목적 컨벤션 건물들에서는 흔히 장식적인 벽기둥(pilaster)과 부조 비슷한 장식벽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생긴 작은 틈이나 돌출부가 기어오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l▶입체적인 간판은 건물을 더 잘 기어오르게 해준다.

간판이 많은 것은 그만큼 삶이 팍팍하기 때문
또 하나 크게 의지할 만한 것이 있다. 한국의 건물은 대개 콘크리트나 돌로 매끈하게 마감한 뒤 그 위에 뭔가를 덮는다. 바로 간판이다. 영화에서도 두 주인공이 어떤 건물에서는 아주 쉽게 매달리고 기어오른다. 건물 벽에 설치된 간판이나 업소를 홍보하는 조형물을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대개 조형물을 타고 올라간다. 이런 것들은 업소가 살아남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서양의 고전 양식 건물을 동경해 건물 표면에 장식을 함으로써, 또는 먹고살려고 건물 표면이 울퉁불퉁해짐으로써 한국의 건물은 빌더링 대상으로 최적화된다. 한국인들은 건물 표면을 통해 뭔가 말을 하려는 욕구가 강한 것이다. 이렇게 세련되지 않게 외치는 이유는 그만큼 삶이 팍팍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인이라고 왜 절제의 미학을 모르겠는가! 아무튼 그런 외침이 영화 속 주인공을 살린 이유가 되었다.

l김신_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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