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근거 없이 안보와 통상 연계해 ‘자충수’

2019.08.16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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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는 희한한 통상정책이다. 자유무역주의를 채택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와 교역에 새로운 장벽을 치는 이유는 자국의 특정 집단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특정 집단의 이익 보호가 전체 국가경제 이익 증진에 도움이 되는 것이 확실해야 그나마 내부 동조라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한국에 대한 통상정책은 자국의 보호 대상이 없다. 오히려 한국과 거래하는 자국 기업들의 이익을 침해하고 일본 경제성장에도 하방 압력을 넣는 자충수다.

l▶서울 서대문형무소 인근 대로변에 걸려 있는 일본 아베 정권을 반대하는 현수막 | 한겨레

2차 아베 내각이 출범한 2012년 이후 일본 경제는 장기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올 통로를 대외교역 확대에서 찾고 있다.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로 민간 소비는 살아나기 힘들고, 국내총생산(GDP)의 200%가 넘는 막대한 국가부채로 인한 재정지출 확대로 성장을 견인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유례 없는 통화팽창으로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대외 교역의 가격경쟁력을 높이고 성장률도 끌어올린다는 게 이른바 ‘아베노믹스’의 실질적 요체다.

한국 반도체 위축, 일 무역수지 직접 영향
그러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는 아베노믹스의 이런 성장전략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일본 재무성이 최근 발표한 경상수지 동향(속보치)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1~6월) 일본의 무역수지 흑자액은 2242억 엔으로 2018년 같은 기간보다 87.4%나 줄었다. 일본산 반도체 제조장비와 부품, 자동차 부품의 대(對)한국·중국 수출 부진이 흑자 감소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일본 재무성 분석이다. 일본의 전 세계 상품 수출에서 한국 시장의 비중은 미국,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크다. 올해 일본의 대한국 수출액은 총 2조 6088억 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0%를 기록했다. 2016년 상반기 한국 수출 증감률(-13.0%)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다. 특히 반도체 제조장비와 부품·소재의 한국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6.5%, 22.8% 감소했다. 세계시장의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의 투자와 생산이 위축되자 일본 무역수지가 곧바로 영향을 받는 구조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는 고순도 불화수소를 비롯한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의 수출규제 강화 정책을 강행했다. 스스로 무역수지 악화를 부추기는 꼴이다.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 기조에 그나마 도움을 준 여행수지도 타격을 받는다. 일본식 회계 기준으로 2018년 회계연도(2018년 4월~2019년 3월)에 일본의 여행수지는 사상 최대 수준인 2조 4890억 엔의 흑자를 기록했다. 여기에는 한국인이 일본 여행에서 쓴 돈이 크게 기여했다. 2018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754만 명, 지출액은 51억 7000만 달러(약 5498억 엔)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한국 내 반일 감정이 고조되면서 일본 여행객이 급감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일 여행 절벽의 경제적 피해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한일 갈등이 내년까지 지속될 경우 한국인의 일본 여행이 외환위기 직후 수준으로 줄고, 이에 따라 일본 지방의 관광산업과 기타 내수 관련 산업에 영향을 주어 내년 일본 경제성장률은 0.1%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반대로 일본인의 한국 여행도 줄어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에는 0.05%포인트 하락 요인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수치상 성장률 감소 폭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2배 높다. 하지만 최근 10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한국 3.1%, 일본 0.7%)을 고려한 체감성장률 감소 충격은 일본이 한국보다 9배 더 클 것으로 현대경제연구원은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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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객관적 검증 요구에 묵묵부답
이처럼 경제적 타격이 불 보듯 뻔한데도 수출규제를 강행하는 이유로 일본 정부는 ‘안보’를 내세운다. 구체적 근거도 없고 명분도 없지만 어쨌든 일본 정부 관계자들이 공식·비공식 통로로 들먹이는 게 ‘안보상 이유’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대상국)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 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한 8월 7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안전보장 관점에서 수출관리 제도를 적절히 실시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 운용의 재검토일 뿐, 일한 관계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는 없으며 경제보복이나 대항 조치는 더욱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실상을 호도하는 어불성설이다.
우리나라는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 국가 안보를 위한 다자간 수출통제 체제에 선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 무기 전용 가능성이 있는 물자의 수출 예방과 감시, 통제 및 관리에서 모범적이며 효율적인 이행 국가로 꼽힌다.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을 위한 ‘3대 국제협약’(핵확산금지조약, 화학무기금지조약, 생물무기금지조약)과 4대 수출통제 체제(바세나르체제, 미사일기술통제체제, 핵공급자그룹, 호주그룹) 등 모든 국제협약 또는 규범의 회원국이다. 특히 2004년 유엔 안정보장이사회가 무기 비확산과 수출통제 규정을 정비하는 결의(안보리 결의 1540호)를 채택한 이래 대부분 국제회의체에서 의장국을 역임하기도 했다. 일본이 이런 한국을 상대로 근거도 없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지금까지 축적된 국제규범과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에 전략물자 수출 관리에 대한 객관적 검증을 요구했으나 아직 묵묵부답이다. 우리 정부가 제안한 검증 방식은 유엔 안보리 전문가 패널 또는 적절한 국제기구를 통한 공정한 조사 의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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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미아·수입 석탄재, 압박 카드
전략물자 수출통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카드를 꺼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8월 12일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은 기존 고시에서 ‘가 지역’(백색국가)에 들어간 일본을 ‘가의 2 지역’을 신설해 재분류하는 내용이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전략물자 국제 수출통제 체제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게 제도를 운영하고 있거나 부적절한 운영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국가와는 긴밀한 국제공조가 어려우므로 이를 고려한 수출통제 제도의 미세 조정이 필요하다”고 고시 개정 이유를 밝혔다. 백색국가 배제로 일본에 대한 수출규제가 강화될 수 있는 품목은 1138개 전략물자다. 정부는 이번 고시 개정이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맞대응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일본도 바세나르체제(WA) 등 4대 국제체제에 가입했지만 국가 간 정보교환을 하도록 권고한 국제체제 조항이 지켜지지 않거나 실제 제도 운영과정에 부적절한 사례가 발생한 경우에는 백색국가에서 배제할 수 있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고시 개정안은 20일 동안 의견수렴과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9월 중순부터 시행된다. 성윤모 장관은 “의견수렴 기간 중 일본 정부가 협의를 요청하면 한국 정부는 언제 어디서건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국장급 협의조차 거부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연장 여부도 일본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카드 가운데 하나다. 지소미아 연장 시한은 8월 24일이고, 그로부터 나흘 뒤인 28일에는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한 일본의 수출무역 관리령 개정안이 시행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은 지소미아 연장을 원하고 있어 우리의 선택만 남았다”며 “어떤 선택이 국익에 합당한지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입 석탄재에 대한 환경안전 심사 강화도 일본을 겨냥한 조치다. 환경부는 8월 8일 “오염 우려가 계속해서 제기되는 수입 석탄재에 대해 수입 통관 때 환경안전관리 절차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시멘트 부재료 등으로 활용하는 수입 석탄재에서 일본산의 비중은 2017년 이후 99.9%이다. 지금까지는 수입업자가 선정한 공인 검사기관의 방사능 검사 성적서와 성분 분석서를 통해 인공방사성 핵종인 세슘, 요오드 농도가 0.1㏃/g 이하이고 납 등 중금속 함량이 현행법상 재활용 기준 이내라는 점을 증명하면 수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지역 환경청이 석탄재 통관 때마다 방사선량을 간이로 측정하고 시료를 채취해 중금속 성분 검사 등을 직접 전문 검사기관에 의뢰할 계획이다. 3개월에 한 번씩 해온 수입업체 방문 점검도 매달 실시하기로 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출 문제에 대한 외교적 대응도 강화한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8월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는 2018년 8월 일본의 오염수 해양방출 계획에 대한 정보를 최초로 입수한 직후, 2018년 10월 일본 측에 우리의 우려와 요청 사항을 담은 입장서를 전달하고, 양자 및 다자적 관점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해나가자고 제안했다”고 그간의 경과를 처음 공개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국제기구 및 피해가 우려되는 태평양 연안 국가들과도 긴밀히 협력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문제에 적극 대응해나가려 한다”고 밝혔다.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출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오염수 현황, 향후 처리 계획에 대해 국제사회에 성실히 설명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으나 실제 진전은 거의 없다.

l▶경기도 수원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일본 수출규제 관련 지역별 설명회 | 연합

WTO 체제의 자유무역 질서 어긋나
안보 문제를 통상정책과 연계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자유무역 질서에 맞지 않는 흐름이다. 이웃 나라와 교역 확대는 국가의 부를 키우는 수단이자 안보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효과적 방안이기도 하다. 독단적이고 자의적인 수출규제나 통상보복은 오히려 안보를 위협하는 불씨가 된다. 안보의 개념을 군사적 위협 중심에서 식량, 에너지, 환경, 인권 등으로 확장하면 경제보복 성격의 통상정책은 더욱 위협적이다. 아베 총리는 6월 28~29일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세계 각국 지도자들에게 “자유롭고 개방된 경제가 글로벌 평화와 번영의 초석이 된다”고 주창한 바 있다. 그래놓고 이틀 만에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른 한국과 갈등을 외교적으로 잘 수습하려면 안보 개념에 대한 한일 정상 간 의견 조율부터 필요한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안보 개념은 명확하다. 광복절을 사흘 앞두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한 문 대통령의 발언에 잘 드러난다.
“우리 선조들은 100년 전 피 흘리며 독립을 외치는 순간에도 ‘모든 인류는 평등하며 세계는 하나의 시민’이라는 사해동포주의를 실현했습니다. 적대적 민족주의를 반대하고 인류애에 기초한 평등과 평화공존의 관계를 지양하는 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우리의 정신입니다. (중략)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경제 강국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옹호하며 사람을 중시하는 평화 협력의 세계 공동체를 추구해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와 연대하면서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박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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