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도 입도 마음도 즐겁게 '태극 패션' 발길 북적

2019.09.09 최신호 보기


l▶천부항의 일몰은 울릉도에서 손꼽히는 절경이다. 천부항 해변 풀장에서 어린아이들이 지는 해를 바라보며 물놀이하고 있다.

울릉도가 뜬다. 아니, 이미 떴다. 관광과 힐링, 미식의 집합 공간에 ‘독도 효과’라는 애국심이 더해지며 울릉도 관광객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 일본과 외교적·경제적 마찰이 심해지면서 독도와 울릉도를 다녀오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태극기를 손에 들고, 태극기 수건을 목에 두르고 울릉도를 누비는 태극 관광 패션은 이제 익숙하다. 서울과 강릉을 오가는 KTX는 울릉도 여객선이 출발하는 강릉을 더욱 쉽게 접근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3월 울릉도를 일주하는 도로가 처음 개통되며 울릉도 관광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울릉도에 공항도 건설 중이다. 울릉 관광은 이제 서울에서 반나절이면 가능하게 됐다. 실제 올 들어 울릉도 방문객은 2018년보다 30% 이상 늘어나며 역대 최대였던 2013년의 41만 5000명을 뛰어넘어 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8월 17일부터 2박 3일간 울릉도와 독도를 찾았다. 광복절이 막 지났지만 울릉도 가는 여객선은 진지하면서도 진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맑은 바다 날씨가 독도 접안에 대한 희망으로 들뜨기도 했다.

l▶저동항 방파제에서 본 울릉도 동해바다의 일출, 밤새 오징어를 잡은 배가 저동항을 향해 들어오고 있다.

관음도 연륙교 아래로 바다가 아찔
8월 17일 새벽 6시 1분, 서울역에서 강릉행 KTX는 정확하게 정시에 출발했다. 2시간 3분 만에 서울과는 공기가 전혀 다른 강릉에 도착했다. 강릉항에서 9시 20분에 출발하는 울릉행 여객선을 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출발 30분 전에 멀미약을 마신다. 다행히 동해 바다가 잠잠하다. 뱃멀미의 고통에서 해방된 채 3시간 만에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했다. 허기진다. 저동항 근처의 식당부터 찾았다. 식당은 많으나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기가 어렵다. 성수기라 그런지 혼밥 손님을 받지 않는다. 2인 이상이어야 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고 한다. 문득 몇 년 전 따개비밥을 맛있게 먹은 뒷골목 식당이 생각났다. 허름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인 할머니가 반긴다. 정성이 가득 담긴 따개비밥으로 위장을 호사시켰다. 6년째 식당을 한다는 할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던 다른 할머니가 숙소는 정했느냐고 묻는다.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하니 정갈한 민박집을 소개해준다며 따라나서라고 한다.
저동항 여객선 터미널 바로 뒤에 민박을 정하고 일주도로 관광에 나섰다. 일주도로가 생기면서 2시간 간격으로 왼쪽과 오른쪽으로 도는 일주버스가 생겼다. 버스에 올라타니 운전기사가 목적지를 묻는다. 거리에 따라 요금이 다르기 때문이다. “관음도에 갑니다.”
저동항에서 차로 불과 10분 거리인 관음도까지 가는 도로는 일주도로 건설에서 가장 늦게 완공된 난공사 구간. 울릉도 섬 일주도로는 1963년에 울릉도 종합개발계획으로 시작해 1976년 첫 삽을 떴다. 2001년도 9월에 내수전~섬목 구간 4.75km를 제외한 39.8km만 연결됐다. 미개설 구간 공사를 위해 2008년 11월 국비 지원을 받으며 연결 공사를 시작해 입안 56년 만인 2019년 3월 29일 개통식을 했다.

l▶울릉도는 3월 일주도로가 완전히 개통되며 육지 관광객이 크게 늘고 있다. 해안가 도로에서본 삼선암

관음도는 섬목과 연륙교로 연결된 무인도. 길이 140m, 높이 37m의 연륙교는 7년 전 만들어져, 다리 아래의 파도치는 바다가 아찔하게 보인다. 섬 둘레가 약 800m로 쉽게 한 바퀴 돌 수 있다. 멀리 죽도가 보이고 동백나무, 참억새, 부지깽이나물 등이 자생하는 야생식물의 천국이다. 울릉도 3대 절경 중 하나로 꼽힌다.
한 손에 작은 태극기를 들고 정겹게 연륙교를 건너는 두 명의 젊은 여성들과 같이 걸었다. 서울의 간호대학 4년생인 둘은 졸업을 앞두고 울릉도 여행을 왔다. “일본에 대한 감정이 나빠졌어요. 문득 울릉도와 독도에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함께 훌쩍 떠났죠.” 둘은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망망한 동해 바다를 즐긴다. 따갑게 내리쬐는 한여름의 태양도 그들에겐 소중한 젊은 날의 추억일 뿐이다.

l▶울릉도에서 배로 15분 거리에 있는 죽도에는 단한 가족이 산다. 죽도에서 더덕을 키우는 김유곤(50) 씨와 4년 전에 결혼한 이윤정(44) 씨가 아들과 함께 집 정원에서 포즈를 잡았다. 4월부터 11월까지 죽도에서 살고 겨울엔 포항에서 지낸다.

나리분지 원시림 숲길 따라 터벅터벅
한 시간가량 관음도 산책을 마치고 순환버스를 기다리며 호박식혜를 마신다. 울릉도 특산물이라고 한다. 시원하고 달달하다. 마침 봉고차를 몰고 육지 손님을 맞는 울릉도 주민이 빈자리가 있다며 타라고 한다. 인심이 좋다. 다음 여정은 천부항. 해중전망대가 있다. 수심 6m의 지하에서 바닷속을 유영하는 물고기들을 볼 수 있다. 바다와 접해 있는 수영장에서는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자녀들의 물놀이를 지켜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곳은 일몰을 보기에 적합한 곳. 일몰 시간인 오후 7시 1분까지는 두 시간이 남았다. 버스를 타고 나리분지로 향한다. 성인봉(984m)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중간에 자리한 나리분지는 면적 1.5~2.0㎢, 동서 길이 약 1.5km, 남북 길이 약 2km의 분지. 칼데라 화구가 함몰해 형성된 화구원이다. 개척 당시 울릉도의 특유한 자연조건에 맞춰 지은 가옥 구조인 너와지붕을 한 전통가옥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한 숲길을 천천히 걸어본다. 저절로 힐링이 되고 있음을 절실히 느낀다.

l▶저동항에서 오징어 손질을 하는 어부 부부. 새벽2시인데 정겹게 이야기를나누며 작업을 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천부항에 오니 서쪽 바다로 해가 진다. 오후 7시. 멀리 삼선암과 코끼리 바위 등을 배경으로 숨 막히는 저녁노을 풍경이 바다 위에 펼쳐진다. 구름이 약간 가리긴 했지만 동해의 일몰을 감상하기에 충분했다. 해가 져도 바닷가 수영장에서는 개구쟁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저동행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몸이 처진다.

l▶죽도에서 멀리 관음도를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대풍감 해안도로는 한국 10대 비경
간단히 저녁을 먹고 더위와 새벽부터 이어진 긴 거리의 여행으로 지친 몸을 누인다. 새벽 1시에 알람을 설정한다. 울릉도의 오징어배 작업을 보고 싶어서였다. 알람 소리에 일어나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 서둘러 저동항 방파제로 향한다. 바람이 시원하다. 먼 바다 위 오징어잡이 배에서 비추는 환한 전구 불빛은 오징어들을 마구 불러들일 것 같다.
저동항으로 오징어배 한 척이 들어온다. 새벽 2시. 70대 노인 어부는 모두 세 박스의 오징어를 부둣가에서 기다리던 부인에게 건넨다. 할머니는 칼로 능숙하게 오징어 배를 가르고 내장을 분리한다. 배 정비를 마친 할아버지도 곧바로 할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아 오징어 해체 작업에 합류한다. 내장을 비운 오징어는 줄줄이 가늘고 긴 대나무 막대에 꿰여 해풍에 건조된다. “언제부터 오징어를 잡으셨나요?” “젊을 때부터 계속이야. 두 아이 시집 장가 다 보냈지.”

l▶학포 바닷가에서 한 낚시꾼이 릴낚시를 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웃음소리가 허허롭다. 얼마나 많은 삶과 죽음의 고비를 넘기신 웃음일까?
오징어 해체 작업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숙소로 귀환했다. 눈꺼풀이 무겁다.
다음 날 오전에는 독도행 여객선을 탔다. 이미 나흘 동안 비바람으로 독도 접안이 불가능했다. 이날은 날씨가 매우 맑았다. 독도행 여객선은 두 시간 항해 끝에 독도에 다가갔다. 그러나 스피커를 타고 나온 선장의 안내는 모두를 불안케 했다. “부두의 너울성 파도가 심해 접안이 어렵습니다.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부두에는 독도 경비대원들이 거수경례를 하며 승객들을 기다린다. 몇 차례 접안을 시도했으나 실패. 접안을 포기하고 배에서 독도를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는 안내에 모두들 크게 실망한다. 그러나 서둘러 배 위로 올라간다. 다들 태극기를 흔들며 동해 끝 외로운 섬에 대한 애정을 표시한다. 목말을 태운 어린아이와 독도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아버지는 표정을 애써 밝게 한다. 전국에서 모인 인터넷 카페 ‘독도사랑’ 회원 50여 명은 아쉬움 속에 독도를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분위기가 숙연하기도 하다.

l▶울릉도에 가면 꼭 먹어야 할 따개비밥(왼쪽)과 꽁치물회

“독도 보려고 뱃멀미를 참아가며 왔는데 독도 땅을 밟지도 못하다니….” 대구에서 온 70대 할머니는 손에 든 소형 태극기를 하염없이 흔든다.
독도의 잔상을 깊이 새긴 채 승객들은 자리에 와 앉는다. 그나마 날씨가 좋아 선명하게 본 것에 만족하는 느낌이다. 독도에 접안할 수 있는 날은 1년에 150일 정도.
저동항에 돌아와 택시를 대절해 일주도로를 한 바퀴 돌아본다. 가수 이장희 씨가 울릉도에 자리 잡고 기념관과 콘서트홀을 지은 ‘울릉천국’의 정원에서는 연인들이 정겹게 사진을 찍는다.
울릉도 서북쪽 끝의 대풍감 해안도로는 한국 10대 비경으로 꼽힌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 망망대해와 파도, 절벽의 어우러짐에 잠시 빠져본다.

l▶파도가 높아 접안을 못한 독도 관광객들이 독도를 배경으로 배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일몰은 천부항, 일출은 저동항
서쪽과 남쪽 해안도로를 달리면 도동항에 도착한다. 이미 해가 진다. 도동항과 저동항 사이의 행남 해안도로를 걷다가 보면 바다 절벽을 배경으로 횟집이 나타난다. 7080 가요를 배경음악으로 커다란 자연산 홍합과 각종 신선한 횟감이 소주잔과 어우러져 분위기를 들뜨게 한다.
울릉도에 오면 동해 일출도 꼭 봐야 한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뜨는 해다. 19일 일출 예정 시간은 오전 5시 35분. 일찍 일어나 저동항 방파제로 갔다. 다행히 구름이 별로 없다. 장엄하게 뜨는 해의 붉은빛이 바다를 물들인다. 밤새 오징어를 잡은 배가 붉은빛의 바다를 가르며 항구로 들어온다. 눈이 시리다.

글·사진 이길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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