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계절이 있다. 그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계절이란, 딸기우윳빛으로 물든 벚꽃을 보며 누군가를 너그러이 사랑할 수 있는 봄일 수도 있고 열대야가 별빛처럼 쏟아져 내리는 한낮의 여름일 수도 있으며 어느새 떨어진 낙엽을 보며 울긋불긋 홍조로 가득한 두 뺨을 연상케 했던 어느 가을일 수도 있다. 불현듯 차가운 바람 사이로 빠져나간 따뜻한 온기를 놓치지 않고 서로의 손을 꼭 잡았던 그해 겨울이 떠오를 때, 모래알처럼 작고 반짝이는 계절의 빛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호시절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계절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오늘의 삶보다 내일의 삶이 더 나을 거라는 시절의 빛이 계속 비추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계절이 변화할 때마다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곤 한다. 잘 지내고 있는지, 별일은 없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등 일상의 대화만큼이나 지극히 평범한 언어로 묻는 나의 안부 속에서, 타인의 상냥한 모습을 상상한다. 어쩌면 타인의 계절이 담긴 모습을 상상하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타인에게 안부를 물을 때 최대한 편지처럼 다정한 메시지를 보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포개진 옷처럼 소소하게 겹친 서로의 시간들을 떠올릴 때면 ‘아직 우리가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늘, 다정하게 묻는 안부 편지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은 사계절이 주는 호사 같은 선물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며칠 전, 어제 만난 사람처럼 반갑게 안부 인사를 건네고 싶었던 타인에게 그동안 잘 지냈냐고 물어보고는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 두 볼이 빨갛게 익어가는 주근깨 소녀가 되어버렸다. 잘 지내고 있다는 말에, 어쩌면 안전하게,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까지 들켜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조금은 생존하느라, 여전히 살아내느라 힘들었을 것 같은 세계에서 잘 지내줘서 다행이라며 안도감을 느꼈다.
아직도 날씨가 많이 덥지 않냐는 물음에 나는 덥긴 해도 이따금씩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서 다행이라고, 안부의 연락을 먼저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보냈더니 역시 타인도 나와 같은 마음이어서 ‘먼저 물어봤어야 했는데…’라며 말하는 사람에게 나는 깊은 애정을 담아 말해주고 싶었다. 누가 먼저 안부를 묻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나는 계절의 힘을 믿는다. 이 계절의 힘은, 나에서 우리로 연결해주는 눈부신 근사함을 가지고 있다. 각자 저마다 아름다운 계절이 있음을 믿으시길. 그래서 그 아름다움 믿고 살아갈 때에 조금씩 옅어져가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느끼는 안부를 한 번씩 떠올려주시길. 서서히 점철돼가는 공간 안에 서로가 있었기를.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운 계절과 시절을 보내고 있을 모두에게 언제나 파이팅!
임지현 서울 강동구 천호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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