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호 성공회대 교수 | 한겨레
“한국이 일방적으로 한일청구권협정 위반 행위를 하고 국교 정상화의 기반이 된 국제조약을 깼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거듭된 주장이다. 일본 정부는 2018년 10월 30일 선고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 배상판결이 ‘국제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징용 피해자 등에 대한 보상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한국 측에 제공된 유무상 경제협력을 통해 모두 해결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 있지 않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를 8월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오랜 역사와 정치, 경제, 외교까지 뒤얽혀 있는 이 복잡한 문제를 양 교수가 세세하게 살피고 일본의 억지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일본과 다른 해석에 근거해 배상 판결을 내린 대법원 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하는 일본의 주장은 근거가 뭔가. 어떤 국제법을 어떻게 위반했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일본 주장의 근본 배경에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존재한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1951년 9월 8일 일본과 48개국 사이에 맺어진 전후 평화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연합국의 군정기가 끝나고 일본은 주권을 회복해서 다시 독립국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48개국 안에 끼지 못했다. 결국 배상청구권에서도 한국은 배제되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에도 한국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주장했지만, 일본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은 청구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당시 일본이 한국에 준 5억 달러(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는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이 아닌 독립 축하금과 경제협력 등의 명목이었다. 한국은 이 돈을 받고 이후 청구권을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 일본의 주장이다. 이렇게 수립된 ‘1965년 체제’로 인해 식민지배의 적법성과 배상문제는 양국 간에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봉인된 것이다.
대법 판결 ‘식민지배 불법성’ 적시
하지만 한국 대법원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확히 지적했다. 이에 따라 1910~1945년 일제에 의해 불법적으로 이뤄진 강제동원은 배상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판결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일본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1965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대법원 판결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기초한 1965년 체제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한국과 일본의 청구권협정에 대한 해석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불완전한 협정이고, 그런 불완전한 협정에 의거해서 개인들의 청구권 해소를 법적으로 확정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 헌법에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식민지배에 대한 개인들의 청구권이 소멸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 주장은 국제법의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 1999년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일본 정부에 강제노동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고 피해자 구제에 노력하라는 공문을 보낸 적이 있고, 국가 간 협상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될 수 없다는 게 2000년대 이후 국제법의 흐름이다.
-아베 정권은 한국 정부에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런 식의 요구는 적절한가.
=한국에는 삼권분립이 있고, 당연히 행정부는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맞다. 그런데 아베 정부는 한국 정부에 “즉각 국제법 위반의 상태를 시정하는 것을 포함하여,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본 입장은 조약 대 조약이기 때문에 국내 사법이 국제법, 말하자면 국가 간의 조약을 뒤집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일본이 우려를 표현할 수는 있지만, 한국이 여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해 달라 또는 여기에 관여해 달라는 것은 적절한 요구가 아니다. 그건 내정간섭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것은 분명 구분해야 한다.
▶8월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일본 보복적 수출규제 조치 철회 촉구 결의안이 가결되고 있다. | 한겨레
“식민지배 배상 논의한적도 없어”
-8월 2일 일본은 끝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했다. 그럼에도 경제보복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제외는 일종의 진주만 공습이며, 뒤에서 비수를 꽂는 행위다. 우리 대법원에서 일본 기업에 대해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아직은 일본 기업이 손해난 것이 하나도 없다. 일본 기업에 대한 자산 압류는 사법적인 절차 때문에 내년 1월로 미뤄진 상태다. 대법원 판결로 일본이 걱정하는 것은 알겠는데 걱정을 하게 했다는 것만 가지고 이렇게 보복성 수출 규제를 하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비도덕적이다.
이것은 자유무역 질서에도 반한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11조에 걸리는 이야기이다. 어떤 나라에 대해서 차별적으로 무역량을 줄이거나, 납기일을 늦추거나, 다른 나라에 대해서 차별한다면 다 GATT 규정에 걸리는 상황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경제 보복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지금 실질적으로 수입이 안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장기화할 경우 일본도 여기에 걸려들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실무적인 선에서는 논의가 돼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 측이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일본의 자세가 상당히 문제가 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없애고 ABCD군으로 나눴다. A군은 기존 화이트리스트 국가이고 B군에 한국이 들어가 있다. 일본은 겉으로는 A군하고 B군은 별로 차이가 없다고 얘기는 하지만 한국으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 것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발언 또는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한데 그런 것을 위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하고 일본의 경제산업성이 대화를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일방적으로 일본이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도 국제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WTO라든지 아니면 아세안+3라든지 그다음에 최근에 중국에서 개최됐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서 일본 측을 강하게 압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일본 책임이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일본은 왜 부정하는가. 왜 현금화 차단에 집착하는 건가?
=아베 정권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쪽의 배상을 이토록 강하게 거부하는 것은 ‘이것이 한일청구권협정의 틀을 허무는 것인 동시에 여기서 물러설 경우 북한이나 동남아시아 나라 등과의 식민지배 청산 문제에서도 일본이 크게 밀리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어떻게든 이 부분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생각인데, 그렇지만 그것은 잘못됐다. 2000년 이후로는 국가의 외교 보호권이라는 것이 개인 청구권을 소멸시키고 없다는 것은 일본 측도 확인한 것이고, 그것은 국제법적인 국제 사회에 있어서 일반적인 흐름이다. 이런 흐름에 대해서 역사의 피해자가 20년간 싸워온 것, 그다음에 식민 통치의 과정에서의 엄청난 그 피해와 가혹 노동, 이런 것들을 검토하면서 하나씩 문제를 풀어가야지, 이것을 그냥 역사 문제를 수출 규제로 해서 한국의 목줄을 죄는 식으로 하게 되면 더욱 한국 국민들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꼬이게 하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하는 것을 꼭 지적하고 싶다.
-일본 내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인식을 하고 있나?
=여러 목소리가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경제산업성이 이것을 주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경제산업성의 주류들은 이것을 강제징용에 대한 보복 조치로 끌고 가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반대하고 있다. 그러니까 관리라는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좋지만, 정치가들이 나서 가지고 이 문제를 경제를 보복하면서 하는 것은 반대하고 있다. 외무성도 이것은 도대체 강제징용 문제는 역사 문제인데, 역사 문제를 역사 문제로 대응해야지, 왜 이것을 다시 또 수출규제라는 자유무역에 반하는, 질서에 반하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굉장히 우려가 크다. 아베 진영이 단독으로 무리한 수로 끌고 가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8월 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상황점검회의를 하고 있다.| 청와대
“일본 주장 중재위는 요즈음 안 쓰는 제도”
-제3국이 참여하는 중재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일본의 주장은 타당한가?
=중재위원회는 요즘은 사실 쓰지 않는 제도이다. 1965년 체결한 한일청구권협정의 분쟁 해결 절차에 따른 것이다. ‘청구권협정’ 제3조 1항에는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2항 이하에는 1항에 의해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에 대해 결정할 중재위원회의 구성 및 그 결정의 효력에 관해 규정되어 있다. 중재위원회는 지금까지 한번도 구성된 적이 없다. 무엇보다도 한일병합 합법성 판단 차이로 시작되자마자 깨질 가능성이 크다.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로 해결하자는 의견도 있는데.
=국제적인 사법기구의 통제를 받지 않고 한일 양자 간에 해결한다는 게 우리의 기본 입장이다. 누가 이기든 간에 후폭풍이 있을 수밖에 없는 데다가 선례가 되면 독도 문제를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져가자고 할 때 거부할 논리가 옹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인도적인 문제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 나이가 대부분 90대 중반인데 국제사법재판소 결과가 나오려면 3, 4년은 걸린다. 그동안 상당수 생존자가 사망할 수 있다.
“미국 중재 필요하지만 우리가 주도해야”
-지금 상황에서 국제 여론은 누구한테 유리하나?
=지금 일본은 굉장히 부담을 느끼고 있다. 지난 아세안+3에서도 싱가포르라든지 중국이 구체적으로 일본의 처사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그래서 상당히 당황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RCEP도 WTO도 마찬가지고 사실 한일 양국이 포함된 다자적인 경제체제라는 건 있다. 여기서 장소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계속 ‘일본 때리기’를 한다면 일본은 지금까지 자유무역체제의 선두주자였다는 자부심이 있고 그것을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를 해왔다. 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일본이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의 가장 중요한 목표 내지 기치는 자유무역인데 그것을 주장하는 일본이 가까운 이웃나라이자 협력관계가 가장 중요한 한국을 상대로 하고, 나아가 한일 양국관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생산체체,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런 것들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본이 지금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느냐는 점에서는 저는 굉장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국제사회에서의 여론전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이트리스트 같은 경우 시행까지 3주 정도 시간이 있다.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일본 자체가 입장이 강하기 때문에 흐름 자체를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나 8월 말까지 남은 시간을 활용해야 될 필요는 있다. 미국에게 적극적으로 중재를 요청하거나 이미 실무선에서는 많은 중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을 좀 더 보류할 수 있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상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나오지 않으면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중재가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가 한일 양국 관계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또 한편으로 필요하다. 미국의 중재는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문제는 한일 양국 간의 문제이고, 이 문제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어나가야 히는 과제가 분명히 있다.
심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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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