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최근 발표했다.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이 노동 존중 사회로 가는 첫걸음’임을 내세운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움직임이자, 일본의 무역 보복이 진행 중인 가운데 유럽연합(EU)마저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을 근거로 전문가 패널 소집 요청을 하는 등 추가 통상마찰이 우려되는 상황을 대비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공익위원 권고안이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기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보고, 경영계는 핵심협약 비준 자체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어서 국회 통과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고용노동부는 7월 30일 결사의 자유에 관한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제87호와 제98호의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등 3개 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고용노동부가 이날 내놓은 개정안은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가 4월 발표한 공익위원 권고안을 토대로 한 것이다.
경사노위 공익위원 권고안 토대로
노동조합법 개정안의 핵심은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의 자유를 확대한 것이다. 지금도 실업자와 해고자는 산별 노조 등에는 가입할 수 있고 기업별 노조에서도 단체교섭 등에는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별 노조에 조합원으로 가입하는 것은 금지되는데 개정안은 이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대신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활동이 기업 운영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사업장 출입과 시설 사용에 관한 노사 합의나 사업장 규칙 등을 지키도록 하는 등 보완 장치를 뒀다.
공무원노조법과 교원노조법 개정안에는 퇴직 공무원과 교원, 소방공무원, 대학 교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5급 이상 공무원의 노조 가입도 허용하되 직무에 따라 지휘·감독이나 총괄 업무를 주로 하는 사람은 가입이 제한된다.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사용자의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규정도 삭제했다. 다만, 사용자가 노조 전임자의 급여를 지급하더라도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를 넘지 못하도록 해 과도한 급여를 주지는 못하게 했다. 현행 근로시간면제제도의 기본 틀을 유지한 것이다.
이번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해고자 9명이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법외노조가 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개정법에 따라 노동부에 조합 설립 신고를 별도로 내어 노조법상 노조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 전교조는 기업노조가 아닌데도 교원노조법과 시행령 때문에 법외노조가 되어 대법원에 관련 소송이 계류 중이다. 그동안 노조 가입 자격이 주어지지 않은 소방공무원도 노조를 조직할 수 있다.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노동자 단결권과 함께 단체교섭과 쟁의행위에 관한 내용도 담고 있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노조가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사업장 내 생산시설과 주요 업무시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것을 금지했다. 또 노조 임원 자격은 자율적으로 결정(규약)하도록 하되, 기업별 노사관계 현실을 고려해 기업별 노조 임원은 재직자로 한정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이들 조항이 기존 결사의 자유를 후퇴시킨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날 양대 노총은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이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에 반하는 내용이 포함된 ‘노동법 개악’이라고 날을 세웠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대로 노동법 개악을 밀어붙이면 노동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정부의 노동정책은 파탄 났다”고 반발했다. 파업할 권리에는 ‘회사 부지를 점거하여 사용자를 압박하는 것’도 포함되는데 생산·주요 업무시설의 점거 금지 조항은 자칫 파업권의 핵심을 침해할 소지가 있고, 단체협상 기간 연장도 노조의 협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노동계는 우려하고 있다. 개정안이 국제노동기구의 ‘기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다.
비준하지 않은 4개 중 3개 비준 추진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해고자·실업자 노조 가입에 대해 “자동적으로 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도 보다 강화되고 활성화돼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와 근로시간면제 한도 완화에 관한 사안도 노사관계의 건전한 발전과 도덕적 해이 방지 등의 차원에서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고 반발했다. 또 “생산활동 방어기본권 차원에서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제도 개선 등도 반드시 연계해 해결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은 핵심협약 기준을 반영한 법 개정을 수반해야 한다. 핵심협약 8개 가운데 한국이 아직 비준하지 않은 것은 4개다. 정부는 이 가운데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 제98호와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제29호 등 3개의 비준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7월 22일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제87호, 제98호, 제29호의 비준을 외교부에 의뢰했다. 외교부 검토가 끝나면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대통령 재가를 거쳐 정기국회에 비준 동의안이 제출된다.
고용노동부는 유럽연합이 한국이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것을 이유로 한·EU FTA의 분쟁 해결 절차 최종 단계인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요청한 만큼, 핵심협약 비준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는 “수출 비중이 큰 우리나라로서는 유럽연합과 분쟁이 현재 경제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하지 않을까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 관련 잠재적 분쟁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소한다는 점에서도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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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