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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는 온통 재개발 중이다. 골목길을 따라 난 조그만 집과 가게, 옛날 목욕탕은 곧 사라질 전망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곧 없어질 그 골목길에 사는 할머니가 떠올랐다. 몇 해 전 우연히 알게 된 독거노인이신데, 가끔 반찬 통을 그 집 앞에 놓아두고는 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 혹시 할머니가 그대로 사시나 궁금해서 찾아갔다. 계시지 않으면 이번에도 반찬만 놓아두고 올 생각이었다. 때마침 할머니가 계셔서 오랜만에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 그 집이 헐리면 세입자인 할머니는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
한 달 전에는 딸이 사는 서울 집에 갔다가 우연히 또 다른 할머니를 보았다. 등이 반달처럼 굽은 할머니는 한여름에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폐지가 쌓인 리어카를 몰고 계셨다. 기력이 없어서인지, 어디가 아프신 건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입을 벌리셨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가는 숨소리와 함께 나올 뿐이었다. 차비를 조금 드렸는데 할머니는 한사코 받지 않으려 하셨다.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거절하시는 것 같았다. 계속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자 할머니는 그제야 고맙다는 표정으로 차비를 받으셨다. 언젠가 또다시 만나게 되면 할머니 손을 잡고 기력이라도 회복할 수 있게 소머리국밥집에 가려 했는데, 딸의 집에 있는 3주 동안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가끔 설거지를 할 때 그 할머니 생각이 났다.
젊은 시절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나 또한 어느덧 60대가 되었다.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지만 결혼한 뒤 무대에 설 수 없었다. 대신 찾아간 곳이 어르신 학교였다. 교회 노인대학에서 어르신들에게 고전무용을 가르쳤다. 할머니들도 학생이 되면 똑같다. 선생님에게 유독 더 관심받고 싶은 할머니, 무대 중앙에 서고 싶은 할머니, 다른 학생을 질투하는 귀여운 할머니도 있다. 내가 봉사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과분한 사랑도 많이 받았다. 검은 비닐봉지에 요구르트랑 초코파이를 넣어 살짝 주고 간 어르신 학생, 선생에게 주겠다고 김치를 머리에 이고 오신 할머니 학생도 계셨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 사는 할머니, 독거노인의 삶이 남의 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요즘 인터넷에서 노인을 비하하는 표현을 접하면 세태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내 세대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자녀 세대에게 물려주지 못한 책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특정 계층에 대한 비하가 결국 혐오 현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외국인 노동자, 난민, 이주 여성에 대한 부정적 시선처럼, 노인들에게 가해지는 ‘틀딱이(틀니를 착용하는 극우 성향의 노인을 낮춰 부르는 말)’ 같은 비하적인 언어 표현은 혐오의 결과다. 청춘이 영원하지 않듯 모든 삶은 늙음으로 수렴된다. 청년은 장년이 되고, 장년은 노년이 된다. 조금은 서로를 측은히 여기고, 품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세대 갈등이 완화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싶다.
이순복 부산 해운대구 우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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