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환경연대가 2010년 진행한 프로젝트 ‘With a Cup’. 일회용 컵, 페트병을 줄이고 수돗물을 받아 잘 끓여서 내 컵에 담아 먹자는 운동이었다. 연예인들이 자신이 쓰던 컵을 들고 와서 사진 촬영을 했다. | 여성환경연대
뜨거운 아스팔트 위, 얇아진 옷차림과 한 손에 시원한 음료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부쩍 늘었다. 여름이 다가온 것이다. 바다로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며 설레는 마음 한편에 불편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들고 있는 일회용 플라스틱컵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내가 놀러 갈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건 아닐까’ 하는 끔찍한 상상을 한다. 언제부터인가 일회용 플라스틱컵은 나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에게 많은 ‘편리함’을 선물하는 플라스틱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1863년 미국 상류층에 당구가 유행했다. 그 시절, 당구공은 ‘코끼리의 상아’로 만들어졌다. 인간의 욕심은 항상 끝이 없다. 코끼리의 상아는 멸종위기에 처했고 당구는 계속 하고 싶었다. 뉴욕시 앨버니 거리에는 이러한 광고가 붙는다. “상아의 대용품을 만든 사람에게는 상금 1만 달러를 드립니다.” 그리고 5년 후, 1868년 존 하이어트가 ‘셀룰로이드’를 발명하면서 당구공의 대체 물질을 최초로 만들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가 아는 플라스틱에 이르렀다. 2차 세계대전, 레이더 케이블로 사용된 플라스틱은 전쟁이 끝난 후 가정용 용기로 상용화되면서 100년이 채 안 되어 우리의 삶을 정복해버렸다. 플라스틱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데 보통 100~500년이 걸린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현재 썩은 플라스틱은 지구상에 단 하나도 없는 것이다. 북태평양 미드웨이섬은 ‘플라스틱 섬’이라 불릴 만큼 육지를 넘어 해양까지 플라스틱이 모두 집어삼키고 있다.
영화 한 편에 난리 난 중국, 수입 금지
2018년 4월, 중국이 전 세계의 폐플라스틱 수입을 금지시켜 일명 ‘쓰레기 대란’이 일어났다. 우리 집 분리수거함도 늘 플라스틱류와 비닐(엄연히 비닐도 플라스틱류에 포함된다)로 넘치는데 그것을 수거하지 않는다고 오피스텔에 안내문이 붙고 길거리에는 먹다 만 음료가 담긴 플라스틱컵들이 산을 이루며 한국은 며칠간 떠들썩했다. 하루만 지나면 깨끗해져 있던 분리수거함과 길거리가 며칠간 쓰레기로 뒤덮여 악취까지 났다. 그렇게 우리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눈으로 처음 마주한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갑자기 모든 폐플라스틱의 수입을 금지시켰을까? 바로 영화 한 편 때문이었다. 영화 <플라스틱 차이나>(Plastic China, 2016, 왕구량)는 중국에선 상영 금지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충격은 일파만파 퍼져 폐플라스틱 수입국 1위이던 중국이 수입 금지를 내리고 말았다. 간단한 내용은 이러하다. 중국의 한 시골 마을에 세계의 모든 쓰레기가 모아진다. 그곳에 살고 있는 11세 소녀 ‘이제’는 쓰레기를 분류하다 운이 좋을 땐 장난감을 줍기도 한다. 이제네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삶은 쓰레기로 뒤덮여 온갖 오염과 위험에 노출된 채 우리의 쓰레기를 감당해내고 있다. 세계가 버린, 내가 버린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한눈에 보여주며 큰 영향을 끼쳤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여성환경연대는 2010년 ‘위드 어 컵(With a Cup)’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일회용 컵, 페트병을 줄이고 수돗물을 받아 잘 끓여서 내 컵에 담아 먹자는 운동이었다. 많은 연예인이 동참하면서 촬영 때도 자신이 쓰던 컵을 들고 와서 즐겁게 촬영한 적도 있다. 그리고 9년이 지난 지금 일회용 플라스틱컵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중국의 폐플라스틱 수입 금지로 우리에게도 큰 변화가 생겼다. 카페에서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 금지’ 포스터를 한 번씩은 보았을 것이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매장에서 먹을 땐 머그잔에 주곤 했다. 소비자가 일회용 컵을 사용할 때 보증금을 지불하고 이를 매장에 반납할 경우 돌려받는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가 2002년 시행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9년 폐지되면서 인건비보다 값싼 플라스틱컵으로 무조건 주었다.
카페 내 사용 금지… 보증금제 부활 추진
현재 환경부는 2018년 7월부터 카페 내 일회용품 사용 금지를 시작하고 보증금제 부활을 준비 중이지만 몇몇 국회의원의 반대로 3년째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보증금제가 부활하면 머그잔이나 텀블러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할인 혜택과 유사한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일회용 컵 사용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일회용품 사용 금지로 카페 매장에서 가장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소비자가 아닌 ‘설거지옥’에 빠진 아르바이트생일 것이다. 우리는 직접 카페 종사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몇 명의 목소리를 아래에 담았다.
“점심때 손님이 몰리면 유리컵으로 드시던 분들도 나갈 땐 일회용 컵에 드려야 해서 바빠요. 사실 쓰레기를 버리면서 마음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는데 이런 정책이 생겨서 정말 좋았어요.”
“제일 힘든 건 클레임이에요. 관련 법규가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아예 가버리는 사람도 있어요.”
“더 바빠진 건 사실이에요. 그래도 그 법 덕분에 일회용 컵을 안 쓰게 됐다고 하면 불편한 기색은 있지만 수긍하는 경우가 많아서 알려지고 홍보가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않을까요?”
종사자 인터뷰를 통해 변화의 최전방에 있는 이들이 분명 ‘설거지옥’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엄청난 육체적 노동과 감정노동이 더해진 것은 맞다. 하지만 ‘쓰레기를 버리는 횟수가 줄었다’ ‘이 정책이 다시 흐지부지 사라지지 않고 제대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걱정과 격려를 끝인사로 전했다.
올해 6월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카페 총 매장 수가 1222곳 증가했는데도 일회용 컵 사용량은 2408만 개 줄었고, 매장당 일회용 컵 사용량을 비교하면 전년 7만 6376개에서 올해 6만 5376개로 약 14.4% 감소했다. 그러나 테이크아웃만 운영하는 길거리 매장은 일회용 플라스틱컵 관리 사각지대에 있다. 일반 카페에서 환경부 정책을 실행하지 않을 경우 경고만 받을 뿐 법적 제약이 없어 여전히 매장 내 일회용 컵을 쓰는 곳이 있다는 현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플라스틱 빨대는 아예 규제 빠져
이제는 더 이상 기다려줄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 플라스틱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회용 컵은 줄이는 문제가 아닌 ‘쓰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일회용 컵은 재활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놀랍지 않은가.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가능하니 깨끗이 씻어 분리수거하라고 배운다. 실제 일회용 플라스틱컵 재활용률은 5%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정성 들여 분리수거한 이 일회용 플라스틱컵들은 선별장에서 외면받는다. 우리는 모두 플라스틱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들도 다 각자의 이름이 있다. 보통 일회용 컵에는 폴리스티렌(PS),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가 쓰이는데 일회용 컵 재질이 통일되지 않아 양질의 재활용이 어려워 따로 일회용 컵 분리수거를 하는 업체가 없을뿐더러 재질별로 나누는 인건비가 더 들기 때문에 그냥 버려지곤 한다. 현재 환경부가 PET로 재질 단일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회용 컵과 함께 이야기되는 ‘빨대’도 예외일 수 없다. 자원 재활용법에서 규제하는 일회용품 목록에서 빠졌기 때문에 관리도 할 수 없고 부피도 작고 가벼워 비용 대비 경제적 가치가 떨어져 재활용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매년 전 세계에서 8000만 톤의 빨대가 바다에 버려진다. 대안은 있다. 요즘 휴대가 가능한 스테인리스, 유리, 대나무, 쌀 등을 이용한 다양한 다회용 빨대가 나오고 있으니 꼭 필요한 경우엔 ‘대안 빨대’를 권한다.
이쯤 되면, 일회용 컵 줄이기 노력을 하는 플라스틱 없는 카페를 응원하게 된다. 우리나라 일회용 컵 사용이 국민 1인당 연간 512개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보면 플라스틱 없는 카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일찍이 심각성을 깨닫고 이런 카페를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 있다. 텀블러 이용 시 할인을 1000원이나 하는 곳, 나아가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고 휴지 대신 손수건을 이용하는 카페가 생겨났다. 여성환경연대는 이런 카페를 모아 ‘플라스틱 없다방’ 지도를 만들고 플라스틱 없는 카페 안내를 위한 이용 안내 포스터도 만들어 배포했다. 우리 이용자들이 모두 나의 컵, 텀블러를 이용하고 카페는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조금 더 힘을 내준다면 이번 여름휴가에 일회용 컵이 바다에 넘실대는 모습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플라스틱 없는 카페, 그리고 휴가를 누리기 바란다.
박선미 여성환경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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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