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 11호의 파일럿인 버즈 올드린이 달 위에서 작업을 하는 모습. 사진은 닐 암스트롱이 찍었다.│한겨레
2009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천문의 해’였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찰해 목성에서 4개의 위성(달)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게 뭐가 대단한 일일까 싶지만 엄청난 일입니다. 망원경이란 도구를 사용해서 인간의 시야를 확장시켰다는 것뿐만 아니라 누구도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되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감히 대항할 수 있는 실질적 증거를 찾았기 때문이죠.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했는데 목성에 위성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건 아니라는 뜻이거든요. “이것 봐라!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이라고 해서 완벽한 게 아니라고. 그러니 이제 그의 권위에서 벗어나 잘 따져보자고!”라고 말할 근거가 생긴 것입니다.
둘째 이유는 인간이 달에 발을 디딘 지 40년이 되는 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좀 그럴싸하지가 않아요. 일단 인간이 달에 간 것과 천문학은 좀 거리가 있잖아요. 항공우주공학의 해도 아니고 말입니다. 게다가 기념하려면 50주년은 되어야지 40주년을 기념하자는 것도 어색하고요.
결정적 순간에 항상 여성이…
올해 2019년은 유엔이 정한 ‘화학원소 주기율표의 해’입니다.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만든 지 15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3월은 잠잠했습니다. ‘수헬리베붕탄질산’으로 시작하는 주기율표에 흥미를 갖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요. 오히려 아폴로 달 착륙 50주년이 각광을 받았습니다. 7월 20일 전 세계 신문과 방송이 크게 다뤘죠.
아폴로 11호에는 세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죠.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과 최초의 달 착륙자 닐 암스트롱의 이름은 거의 보통명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착륙선 이글호 조종사 버즈 올드린의 이름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의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 스토리>가 큰 몫을 했습니다. 약간 단순하지만 패기 있고 힘센 인형의 실제 캐릭터거든요.
아폴로 11호 우주인 가운데 세 번째 사람의 이름이 기억나시나요? 세 번째 사람은 달에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사령선 컬럼비아호의 조종사였습니다.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에 내려 걸어보고 성조기를 꽂고 사진을 찍고 시료를 채취하는 동안 달의 뒤편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었죠. 그의 사명은 중요했습니다. 달에 내린 두 사람을 안전하게 지구로 데려와야 했으니까요. 그 사람의 이름은 마이클 콜린스였습니다.
아폴로 11호의 달 여행은 닐 암스트롱의 말처럼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었습니다. 세 영웅 뒤에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헌신이 필요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잊혀졌습니다. 특히 여성의 이름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잘 아시잖아요.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여성이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1969년 7월 20일 휴스턴, 15시 06분. 달착륙선 이글호가 사령선 컬럼비아호에서 분리된 지 3시간이 지났을 때입니다. 이글호의 하강 엔진이 감속하기 시작했을 때 “삑삑삑삑” 경고음과 함께 “1202”라는 오류 번호가 컴퓨터 모니터에 떴습니다. 아폴로의 세 우주인은 물론 휴스턴 통제소 사람들도 1202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습니다. 휴스턴에서 2500km 떨어진 MIT공대의 마거릿 해밀턴만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최상의 컴퓨터 성능이 요즘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의 1000분의 1도 안 됐습니다. 심지어 ‘소프트웨어’라는 말도 없었을 때입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MIT에 우주선의 위치와 속도를 계산하는 프로그램을 요구했습니다. 3년 뒤에는 자동조종 기능을 추가해달라고 요청했죠. 이때 MIT는 해밀턴이라는 풋내기 직원에게 긴급 대피 프로그램을 맡깁니다. 사용될 일이 없는 기능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착륙용 연료 단 20초 분량만 남아
해밀턴은 조종사들이 실수할 수 있듯 프로그래머도 실수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만약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재부팅하고 이때는 우주비행사의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프로그램만 다시 실행하는 기능을 삽입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리는 경고 번호를 정했지요. 그것이 바로 1202였습니다. 만약 1202가 없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폴로 11호의 컴퓨터는 결정적인 순간에 꺼졌을 것입니다. 달 착륙 시도는 중단되고 아폴로 11호는 다시 지구로 귀환해야 했습니다.
자동조종 기능을 계획할 때 우주비행사들은 여기에 반대했습니다. 이들은 컴퓨터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 반드시 자기 손으로 조종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조종사의 자존심이었습니다. 이들은 심지어 아폴로 11호가 출발하면 컴퓨터를 꺼버릴 것이라고 이야기하기까지 했습니다. 이글호가 착륙하기 위해 고도 3000m까지 하강했을 때 암스트롱은 달 표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수많은 운석 구덩이와 바위가 보였기 때문이죠. 암스트롱은 ‘자세 고정’ 모드를 켰습니다. 컴퓨터에 의존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수평 이동만 조종했습니다. 마침내 가로 세로 30m 정도의 적당한 착륙 장소를 찾아 안전하게 착륙했습니다. 그리고 침착하게 근사한 말을 합니다. “휴스턴, 여기는 고요의 바다 기지다. 이글은 착륙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정말 초조했을 것입니다. 이때 착륙용 연료는 단 20초 분량만 남아 있었거든요.
아폴로 영웅들이 비웃었던 자동조종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아폴로 11호의 영광은 없었습니다. 프로그램을 한땀 한땀 기록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올해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하지 못했습니다. 세 영웅 뒤에는 무려 40만 명이 있었습니다.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이 NASA를 방문했을 때 복도에서 빗자루를 든 청소 노동자를 만났습니다. 케네디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인류를 달로 보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지구에는 지금까지 약 1000억 명의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 가운데 단 12명만이 달에 발을 디뎠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40만 명의 진짜 영웅이 필요합니다.
이정모_ 현재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생화학을 전공하고 대학교수를 거쳐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지냈다. <250만 분의 1>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내 방에서 콩나물 농사짓기> 등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과학 도서와 에세이 등 60여 권의 저서를 냈고 인기 강연자이자 칼럼니스트로도 맹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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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