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진 & 윤민수 ‘술이 문제야’│메이저9
7월 초 기준으로 스트리밍 차트를 보면 1위부터 10위까지 아이돌 음악은 청하의 ‘스내핑(Snapping)’과 방탄소년단(BTS)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뿐이다. 나머지는 장혜진 & 윤민수의 ‘술이 문제야’, 벤의 ‘헤어져줘서 고마워’, 다비치의 ‘너에게 못했던 내 마지막 말은’, 송하예의 ‘니 소식’,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 김나영의 ‘솔직하게 말해서 나’, 황인욱의 ‘포장마차’ 같은 곡들이 차지하고 있다.
▶다비치 ‘너에게 못했던 내 마지막 말은’│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
분명 최신곡들인데 막상들어보면 15년 전쯤에 즐겨 듣던 음악 같다. 싸이월드의 BGM 같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 솔로로 시작해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마무리되는 이 노래들은 남자든 여자든 안정감을 주는 보컬로 속삭이듯 시작해서 고음으로 치솟는다. 감정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에 가사는 모두 실연이나 어긋난 사랑에 대한 내용이다. 자꾸 네 생각이 나고, 집에 가는 길이 힘들고, 혼자 술이나 마시는 내가 한심하고, 어쩔 수 없는 이별이 가슴 아프고, 너처럼 좋은 여자(남자)와 헤어지고 방황하는 내가 너무 힘들다.
보통 이런 노래들은 ‘촌스럽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최신곡’이라는 말은 가장 최근에 나온 음악이란 뜻 외에도 맥락적으로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곡’이란 뜻을 가지기 때문이다. 일렉트로닉 팝의 최신 유행을 반영하려고 애쓰는 아이돌 음악과 새롭고 신선한 비트와 플로(flow)가 경쟁력이 되는 힙합과 달리, 이런 유의 발라드는 클리셰로 시작해서 클리셰로 끝난다.
여기엔 대략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먼저 ‘트렌드’가 대중문화의 기본 속성이라는 관점이다. 우리 생각에 팝 컬처란 최신 트렌드의 시장성을 검증하는 장(field)일 것이다. 새로운 드라마, 새로운 영화, 새로운 음악, 새로운 패션이 시장에 등장할 때 어떤 것들은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어떤 것은 냉담한 반응과 함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다.
▶김나영 ‘솔직하게 말해서 나’│네버랜드엔터테인먼트
대중문화는 보수와 혁신의 권력투쟁
팝 컬처는 그런 과정과 맥락 속에서 발전해왔고, 그중 좋은 것들은 ‘최신 트렌드’라는 ‘현상’으로까지 비화한다. 하지만 혁신적인 문화상품은 20세기 내내 손에 꼽을 만큼 등장했다. 21세기라고 다르지 않다. 팝 컬처의 속성이 ‘최신’이라는 생각에는 일종의 착시가 있는 셈이다.
대중문화의 속성은 혁신에 있지 않다. 오히려 보수에 가깝다. 문화산업은 대체로 혁신적인 시도에는 돈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시장성’이라는 말에는 그들이 시도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모든 것의 리스트가 포함돼 있다. 팬들 역시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새로운 시도를 반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소수다. 이들은 새로운 것이라면 일단 환영하고 그것을 과대 포장하는 경향도 있다. 대중문화는 이런 보수와 혁신의 지지층이 각자의 지분을 지키거나 늘리기 위해 벌이는 권력투쟁의 장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클리셰들이 시장에 꾸준히 등장할 뿐 아니라 차트 상위권을 점령할 수 있을까? 두 번째 관점은 바로 뇌과학이다. 2010년대의 과학자들은 음악이 어떻게 인간의 뇌를 자극하고 어떤 효과를 만드는지 깊이 연구하면서 새로운 정보를 밝혀내고 있다. 청각 피질을 자극하는 노래는 우리 뇌 속에서 하나의 덩어리로 변환된다. 리듬과 멜로디, 하모니가 모두 버무려지는 셈이다.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가사에 집중하면 우리 뇌에서는 전운동 피질과 두정엽 피질, 전전두엽 피질이 활성화된다. 뿐만 아니다. 노래는 뇌의 쾌락 회로를 자극해서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같은 신경화학물질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음악을 들으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다. 음악이라는 하나의 덩어리 정보는 뇌의 신경계를 자극하고, 자극받은 뇌는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하는 신경화학물질을 토해낸다. 이게 계속해서 반복된다.
핵심은 이런 현상이 보통 12세에서 22세 사이에 가장 활발하다는 점이다. 이때 듣는 음악이 거의 평생 뇌리에 남는 이유다. 또한 앞서 언급한 노래들이 15년 전 노래처럼 촌스럽지만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당시 사춘기를 보낸 세대가 현재 주요 음원 서비스의 사용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황인욱 ‘포장마차’│하우엔터테인먼트
촌스럽지만 차트 상위권 오르는 이유
오래전부터 익숙한, 다소 촌스럽게 들리는 멜로디에 요즘 자신의 상황처럼 느껴지는 가사가 결합되어 향수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보면 10~20년마다 ‘유행’이 돌고 돈다는 속설은 사실에 가깝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할 때 대중문화를 접한 세대가 기획자가 되고 의사 결정권자가 되는 데 그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릴 때 강렬하게 반했던 어떤 문화를 지금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면서 트렌드라는 걸 만들어낸다.
사실 음악산업에서 대중적 취향은 늘 탐구의 대상이었다. 오랫동안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감이 좋고 경험이 많은 기획자나 매니저에 의존해왔다. 취향 조사와 트렌드 리포트를 참고해 음반이나 영화, 아이돌 그룹을 기획하지만 그게 늘 옳은 건 아니다. 반면 시장조사 같은 말과 무관하게 단 한 명의 크리에이터 관점과 취향을 밀어붙인 창작물이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한다. 물론 대체로 실패에 가깝다. 도대체 알 수 없는 것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앞서 얘기한 문화 이론이나 뇌과학의 연구 결과 등은 이런 막막함을 없애기 위한 나름의 방편일 것이다.
이제 ‘동시대의 음악’을 얘기해보자. 그건 ‘유행가’이기도 하고, ‘실험적인 음악’ 혹은 ‘차트 상위권 음악’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동시대의 음악이란 음악 장르의 역사, 산업과 미디어의 진화, 구세대와 신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복잡한 맥락 위에 놓이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동시대의 음악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음악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한 나름의 관점을 세우는 일 그 자체일 것이다.
차우진_ 음악평론가. 미디어 환경과 문화 수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한국의 인디 레이블> 등의 책을 썼고, 유료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서 <음악 산업, 판이 달라진다> 리포트를 발행했다. 현재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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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