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평생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아홉 살 때부터 음식 장사를 한 엄마는 1년에 딱 이틀 쉬었다. 설과 추석 당일. 아빠는 철마다 계모임을 따라 제주도, 중국 등으로 여행을 갔지만 엄마는 “하루 쉬면 손님 뺏긴다”며 여행을 멀리하며 살았다. 그러한 엄마의 삶을 지켜보는 딸들의 마음은 당연히 편치 않았다. 계절마다 빨주노초 등산복을 입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친구 부모님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왜 우리 엄마만 저렇게 힘들게 살까.
무료 숙박권이 생겼다는 거짓말로 여행 계획을 만들어도 엄마는 떠나는 당일까지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 결국 각종 변명을 하며 여행을 파투 냈다. 매번 이유도 각양각색이었다. 꿈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홀연히 나타난 게 불안해서 못 가겠다, 갑자기 20명 단체 예약이 들어왔다 등. 교통편과 숙소 예약을 다 하고 휴가 일정까지 받아두었는데 엄마가 이렇게 나오면 자식들도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전화로 고성이 오갔다.
나- 그래, 평생 그렇게 답답하게 살아!
엄마- 그러니까 내가 처음부터 안 간다고 했잖아! 뼈 빠지게 키워놨더니 엄마를 가르치려 들어!
어렵게 떠난 국내 여행지에서의 추억도 악몽처럼 남았다. 음식 장사를 하는 엄마는 입맛이 까다로워서, 다른 식당에 손님으로 방문할 때는 ‘블랙컨슈머’가 된다. 추천받아 찾아간 부산의 해물찜 식당에서는 ‘너무 싱겁다’며 초장을 달라 하더니 직접 조리를 해서 경상도 해물찜을 전라도식 해물찜으로 둔갑시켰고, 무리해서 예약한 고급 호텔의 숙박 가격을 듣고는 그 돈이면 칼국수가 몇 그릇이냐며 ‘니들이 그래서 돈을 못 모은다’고 잔소리를 시작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쉬어본 적 없는 엄마는 삶을 즐기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무릎이 안 좋아서 오래 걷지 못하는 엄마에게는 많이 걸어야 하는 여행지는 전부 극기 훈련이나 마찬가지라 산 좋고 물 좋은 풍경이라고 해도 차로 이동할 수 없으면 오래 구경할 수가 없었다. 밖에서 돈 쓸 때마다 ‘이건 칼국수 몇 그릇’으로 치환되는 사람에게 여행은 당연히 즐겁지 못한 경험일 수밖에 없으리라.
10평 남짓한 작은 칼국수 가게가 엄마 세계의 전부인데 우리는 그걸 바꿀 수가 없었다. 대신 엄마는 가끔 나에게 ‘그때 거기가 어디였지?’라며 우리가 묵었던 호텔의 위치를 묻는다. 우리가 돈 쓰는 게 싫어 앞에서는 싫다 싫다 하고는 뒤에선 단골손님들에게 자랑하고 있었다. “우리 딸이 억지로 끌고 갔는데, 그 호텔 가봤어? 거기가 수영장에서 바다가 보이더라고. 이름이 뭐냐고? 잠깐만 우리 딸한테 물어볼게.” 여행은 싫지만 자랑은 좋아하는 엄마 인생에서 여행이란 어쩌면 당신 대신 딸들이 도달해주길 바라는 또 다른 어딘가일지도 모르겠다.
김송희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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