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 오후 서울 은평구의 한 마트에 일본 제품을 팔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한겨레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해 정부가 대응 수위를 날로 높이고 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조치가 임박해지면서 정부 기류도 날이 서는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확대 움직임에 대해 연일 경고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7월 15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결국에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둔다”며 “일본 정부는 일방적인 압박을 거두고 이제라도 외교적 해결의 장으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는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높은 성장을 도모하는 시기에 우리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가 한국 경제의 핵심 경쟁력인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제한으로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일본의 의도가 거기에 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우리 기업들이 일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우리는 과거 여러 차례 전 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했듯이 이번에도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라며 “오히려 일본과의 제조업 분업체계에 대한 신뢰를 깨뜨려 우리 기업들은 일본의 소재, 부품, 장비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수입처를 다변화하거나 국산화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7월 1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일본 경제보복 대책 당청 연석회의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발언하고 있다.│한겨레
“일본, 선린관계 근간 흔드는 무모한 도전”
일본의 ‘제3국 중재위 설치’ 제안에 대한 청와대 반응도 정부의 강경해진 기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일본 제안에 대한 답변 시한을 이틀 앞둔 7월 16일 “특별한 답은 없을 것이다. (일본의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상황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동의하지 않은 해결 방식을 추가로 검토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정부는 원만한 외교적 해결 방안을 일본 정부에 제시했고, 한국 정부는 이를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한 바가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피해자가 합의하는 방안 이외에 다른 것은 안 된다. 예를 들어 ‘2+1’ 방안 같은 것은 기본적으로 피해자들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2+1’ 방안은 최종 승소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겐 한국과 일본 기업이 함께 조성한 기금으로 배상하고, 나머지 피해자들에겐 한국 정부가 배상하는 방식이다.
국회에서 열린 ‘일본 경제보복 대책 당·청 연석회의’에서도 강경 기류가 드러났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7월 16일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부당한 조치를 즉각 중단하고 이제라도 외교적 해결을 위한 우리 노력에 적극 동참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일본 경제보복 대응책 마련을 위해 열린 당·청 연석회의에서 이같이 말하고 “우리는 일본 정부가 이번 조치를 철회할 때까지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실장은 “일본 정부가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바세나르 협정을 거론하며 수출제한 조치를 취한 것은 1965년 국교 수립 이후 힘들게 쌓아온 한일 우호 선린 관계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심각하고 무모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방적인 무역규제 조치는 양국이 함께 추구하는 세계 자유무역 원칙에도 근본적으로 배치된다”며 “정부는 최근 일본 정부가 불행했던 과거사와 관련한 이견을 이유로 양국 관계를 폄훼하는 언행을 서슴지 않고 있음을 깊은 우려, 실망과 함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의에 함께 참석한 김상조 정책실장은 “정부는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외교적 노력을 통해 조속한 해결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되는 등 모든 가능성을 열고 이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전 부처가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현장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며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 피해 최소화 대응방안 논의
이와 함께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원·대응방안을 논의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7월 17일 “일본이 수출통제조치를 철회하고 협의에 나서 줄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경제활력대책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대화단절로 현 상황이 악화되는 것은 한일 양국은 물론 세계경제 전체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일본의 특정국을 향한 부당한 수출통제조치는 국제무역 규범 측면에서나 호혜적으로 함께 성장해 온 한·일 경협관계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홍 부총리는 “일본은 자유무역질서에 기반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의 최대 수혜자이며, 6월말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자유공정무역, 비차별적이고 안정적인 무역환경 조성’을 강조한 선언문이 채택된 바 있다”면서 “그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조치로 일본 스스로 이제까지 키워온 국제적 신뢰가 손상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수출규모가 6000억 달러, 일본은 7000억 달러를 넘는 국가들로서 양국은 경제영역에서 상호협력을 바탕으로 자유무역체제의 모범을 보여주었는데, 이번 조치는 한·일 호혜적인 경협관계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중소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긴급경영안정자금’과 전문가 컨설팅 등의 지원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우선 중기벤처부는 7월 15일부터 전국 12개 지방청에 ‘일본 수출규제 애로신고센터’를 설치·운영하고, 7월 9일부터 유관 기관과 민간단체가 참여하는 ‘일본 수출규제 대응 TF’를 가동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애로신고센터에 피해 현황을 접수하면 중기벤처부와 범정부 TF가 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정책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아울러 중기벤처부는 일본 수출규제로 매출 감소 등 구체적인 피해를 본 기업에는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한다. 이를 위해 중기벤처부는 매출 10% 이상 감소 등과 같은 긴급경영안정자금의 지원 요건을 완화하고 지원 횟수 제한에도 예외를 두기로 했다. 또 민간 전문가를 활용해 수출규제 회피, 대체 수입선 확보 등과 관련한 컨설팅을 신규 운영할 계획이다. 중기벤처부는 이와 관련해 이번 추가경정예산안에 긴급경영안정자금 1080억 원과 컨설팅 지원사업 비용 36억 원 등을 신청한 상황이다. 김영환 일본 수출규제 대응 TF팀장(중소기업정책실장)은 “현장의 중소기업과 긴밀히 소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번을 계기로 소재·부품·장비 분야 글로벌 수준의 중소벤처기업이 육성될 수 있도록 가용한 모든 정책수단을 최대한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주요국과 국제기구 통한 국제 공조 노력
정부는 또 일본 정부와의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방안과 함께 주요국과 글로벌 신용평가사, 국제기구 등을 통한 국제 공조에도 만전을 기하기로 뜻을 모았다. 3박 4일간의 미국 워싱턴DC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7월 14일 “(미국 방문에서) 당초 생각했던 목표를 충분히 이뤘다고 생각한다”며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잘 설명했고, 미국 측 인사들은 예외 없이 이런 우리 입장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이날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이번에 백악관 인사들, 상·하원 의원들을 두루두루 만났다. 일본의 조치가 동북아 안보협력에 미칠 영향에 다들 우려를 표명했고, 개인적으로 (방미 결과에) 만족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실질적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WTO 일반이사회(General Council)에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가 정식 의제로 올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우리 정부의 요청에 따라 오는 7월 23∼24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WTO 일반이사회에서 일본 수출규제 조치가 정식 의제로 논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 자리에서 일본 수출규제 조치의 문제점과 부당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할 예정이다. 앞서 정부는 7월 8~9일 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일본 조치의 문제점을 WTO에 처음으로 공식 문제 제기한 바 있다. 당시에는 해당 문제를 추가 의제로 긴급 상정했다. WTO 일반이사회는 전 회원국 대표들이 WTO 중요 현안들을 논의·처리하는 회의다. 산업부는 “각료회의를 제외하고는 WTO 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에 해당하는 일반이사회에서 일본의 조치가 공론화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며 “일본 조치의 문제점에 대한 WTO 회원국들의 이해를 높이고 공감대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심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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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