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진 전주 KCC 감독(왼쪽), 유재학 울산 모비스 감독│한겨레
둘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만났다. 1973년 서울 상명초등학교에서다. 전창진(56) 감독이 농구를 하기 위해 숭례초등학교에서 유재학(56) 감독이 다니던 상명초등학교로 전학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유 감독은 “창진이는 키가 굉장히 컸다. 거인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전 감독은 “재학이는 참 똘똘해 보였다. 운동 능력도 뛰어났다”고 돌아봤다.
두 친구는 용산중학교에 같이 진학해 가드(유재학)와 센터(전창진)로 호흡을 맞췄다. 당시 중학생에게는 쉽지 않던 “‘2대2 픽앤롤 플레이’도 척척 해냈다”고 두 감독은 입을 모았다. 전 감독은 “그때 농구가 가장 재밌었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그 후에는 언제나 라이벌 팀에서 맞수 대결을 펼쳤다. 상명초를 거쳐 용산중에 다니던 두 감독은 자연히 용산고등학교에 진학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유 감독이 용산고 대신 라이벌 경복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중학생 스타로 각광받던 유 감독에 대해 경복고에서 거액의 스카우트비를 줬다는 헛소문까지 나돌았다. 유 감독은 “삼촌들이 경복고 출신이 많아 경복고로 갔을 뿐이다. 거액을 받고 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딱 과일 한 상자 받았다”고 말했다.
“대학만큼은 꼭” 다짐했지만…
둘은 “대학만큼은 꼭 같은 학교에 가자”고 다짐했다. 처음에는 둘 다 연세대를 택했다. 입학 3개월 전부터 연세대 체육관에서 겨울 훈련도 함께 소화했다. 당시 유 감독은 술을 한 잔도 못하는 전 감독한테 술을 가르친다면서 “선술집도 숱하게 다녔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전 감독이 입학 직전에 갑자기 라이벌 고려대로 방향을 틀었다. 연세대 측이 진로가 결정되지 않은 당시 송도고 졸업 예정자 정덕화 선수에게만 관심을 기울이자,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전 감독이 고려대로 진로를 바꾼 것이다. 전 감독은 “그때 내가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재학이와 또 헤어졌다”며 웃음 지었다.
실업팀도 유 감독은 기아자동차, 전 감독은 삼성전자를 택했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부상 때문에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유 감독은 1986년 기아자동차 창단 멤버로 실업 무대에 데뷔했다. 1988~1989시즌 농구대잔치에서는 최우수선수상(MVP)을 거머쥐고도 무릎 부상으로 만 27세의 이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마쳤다.
전 감독 역시 1986년 삼성전자에 입단했지만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입단 1년 만에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그런데 두 감독 농구 인생 최고의 라이벌전은 프로농구 사령탑 대결이다. 유 감독과 전 감독은 한국 프로농구의 대표적인 ‘명장’이다. 둘은 국내 프로농구 400승을 첫 번째와 두 번째로 돌파한 사령탑이고, 플레이오프 통산 40승을 돌파한 ‘유이한’ 감독이다. 정규 시즌에서 유 감독은 최초로 400승을 달성했고, 전 감독은 최소 경기 만에 400승 반열에 올랐다. 감독상도 나란히 5번씩 받았다.
유 감독은 프로농구 통산 최다승(644승), 프로농구 최다 챔피언(6회)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전 감독은 최근 4년간의 공백에도 유 감독에 이어 통산 최다승 2위(426승)이고, 통산 승률(0.582)에선 유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비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두 감독은 숱하게 맞대결을 펼쳤다. 두 감독이 가장 뜨거운 승부를 펼친 시즌은 2009~2010시즌이다. 정규리그 1위 자리를 놓고 마지막 날까지 숨 막히는 접전을 펼쳤다.
2010년 3월 7일, 프로농구 2009~2010시즌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가 부산과 창원에서 같은 시간에 열렸다. 부산에서는 전 감독의 홈팀 KT가 KT&G를 상대했고, 창원에선 유 감독의 원정팀 모비스가 홈팀 LG와 맞붙었다. 전날까지 전 감독의 KT와 유 감독의 모비스는 39승 14패로 공동 1위였다.
마지막 승부에서 두 팀은 나란히 이겼다. 두 팀은 똑같이 40승 14패가 됐다. 나란히 한 시즌 팀 최다승 타이기록을 세웠다. 두 팀은 상대 전적도 3승 3패로 같았다. 마지막으로 두 팀 간의 득점과 실점을 계산했다. 모비스는 472득점, KT는 424점으로 모비스가 48점 앞섰다. 프로농구 초유의 일이었다. 결국 모비스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유 감독이 활짝 웃었다. 반면 전 감독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를 두고 차라리 두 팀이 단판 승부로 정규리그 우승팀을 가리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전 감독은 얼마나 상처가 깊었던지, 이듬해 프로농구 개막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앞으로 이기는 경기도 끝까지 한 골이라도 더 넣겠다”며 아픔을 곱씹었다. 이런 강력한 의지 덕분인지 전 감독의 KT는 이듬해인 2010~2011시즌 41승 13패로 정규리그 우승은 물론, 당시 한 시즌 최다승 기록까지 세우며 1년 전 아픔을 씻어냈다.
▶학창 시절 유재학 감독과 전창진 감독의 모습│한겨레
하위권 처지면 서로 보약·전화 위로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도 두 감독의 진한 우정이 알려지면서 잔잔한 감동이 전해지곤 한다. 2006~2007시즌 때 일이다. 유 감독의 모비스가 1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전 감독의 동부는 하위권에 처졌다. 당시 전 감독은 원인 모를 무기력증에 빠진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했다. 도대체 원인을 모르니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동부와 모비스의 경기가 열린 어느 날, 전 감독이 유 감독에게 자신의 ‘병’을 털어놓았다. 유 감독은 “창진이가 마음고생이 심할 것”이라면서 며칠 뒤 “용하다고 해서 하나 구했는데 몸조리 잘하라”며 약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이듬해엔 상황이 뒤바뀌었다. 동부가 선두였고 모비스는 꼴찌를 다퉜다. 그때 전 감독은 “재학이도 성적이 좋아야 할 텐데…”라며 마음을 쏟고, 틈만 나면 전화로 위로했다.
그런데 농구 팬들은 두 감독의 명승부를 지난 4년 동안 볼 수 없었다. 전 감독이 2015년 5월 KGC인삼공사 사령탑 취임을 앞두고 승부조작 및 도박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고, KBL은 전 감독에게 무기한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경찰 수사 결과는 애초 검찰 기소 단계에서 채택되지 않아 전 감독은 대부분의 혐의를 벗었다. 다만 검찰은 전 감독을 단순도박 혐의로 약식기소했는데, 이조차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면서 실정법상의 모든 혐의에서 벗어났다.
KBL은 최근 KCC 사령탑으로 등록한 전 감독에 대해 무기한 자격정지 징계를 해제했다. 이로써 전 감독은 4년 만에 다시 농구 코트로 돌아왔다. 아울러 두 감독 간 우정의 라이벌 대결 ‘시즌2’를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김동훈_ <한겨레>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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