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미 베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총감독이 6월 18일 서울 서초동 유나이티드 아트리움 1층에 위치한 '엘림 클래식 아트리움'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곽윤섭 기자
김봉미 베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총감독
2003년 헬무트 릴링 슈투트가르트 바흐 오케스트라·합창단 동양 여성 최초 지휘, 2008년 신진여성문화인상 첫 수상, 2010년 헝가리 국제 지휘자 콩쿠르상 여성 최초 수상, 2011~2012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오페라 지휘 유일 여성 지휘자….
‘최초, 유일, 금녀의 벽을 허문….’ 김봉미(44) 베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총감독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들이다. 여성으로서 보기 드문 클래식 지휘자라는 길을 택한 김 감독은, 작곡가 겸 지휘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접했다. 당시만 해도 여성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될 줄은 몰랐다. 피아노, 바이올린 등 여러 악기를 두루 전공한 뒤 자연스럽게 지휘봉을 잡았다. 이제는 ‘여성’ 지휘자란 타이틀보다 오페라 전문 ‘지휘자’라는 점에서 더 크게 주목받는다. 클래식계에 큰 획을 그은 지휘자인 그를 6월 18일 서울 서초동 유나이티드 아트리움에서 만났다.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이라는 걸 의식하기보다 음악 하나만 바라보며 걸어왔습니다. 불평등이라는 벽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아마 제 성격 탓인 듯한데 그냥 막무가내로 덤볐다고 할까요.”
▶김봉미 베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총감독의 공연 모습
“반주와 지휘, 별개로 나눌 수 없어”
피아노 수재였던 김 감독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대를 거쳐 독일 에센 폴크방 국립음대 피아노과에서도 톱을 달리는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품어온 지휘에 대한 동경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여자가 가기에는 너무 힘든 길’이라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른 여성들이 가지 않았던 길에 도전했다. 이후 수많은 거장을 배출한 데트몰트 국립음대에 장학생으로 입학, 독일 정부로부터 전 학기 장학금을 받으며 오케스트라 지휘과에서 공부했다.
“주변에서 ‘왜 피아노에서 지휘로 전공을 바꿨냐’고 많이들 묻습니다. 하지만 반주와 지휘는 별개로 생각할 수 없는 개념들이거든요. 지휘를 하기 위해서는 작곡과 피아노 연주는 물론 앙상블 등도 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어요. ‘뭘 하든 완벽해야 한다’는 성격 탓에 꽤 오랜 시간을 음악 공부에 매달렸는데, 당시에는 그것도 모자라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돌아봐도 그 시간과 노력이 아깝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음악이라는 학문의 이론과 실전을 완벽히 섭렵해나가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지는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는 노력의 성과는 놀라웠다. 바흐 음악의 거장 헬무트 릴링으로 잘 알려진 슈투트가르트 바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동양 여성 최초로 지휘하기도 했다. 또한 빌레펠트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독일 빅밴드 오케스트라와 현대 작곡가 콘서트에서 협연해 호평을 받고 음반도 발매했다. 쥐트베스트 필하모닉과는 2년에 걸쳐 독일 주요 3개 도시를 순회 연주하기도 했다. 이렇게 클래식 음악 본고장에서 큰 족적을 남긴 그는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고국 한국에서 여성 지휘자의 길을 개척하겠다고 마음먹은 것.
▶김봉미 베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총감독이 공연이 끝난 뒤 관객석을 향해 손뼉을 치고 있다.
“아버지, 음악인 필수 덕목 인품 보여줘”
그러나 문제는 있었다. 국내에서 지휘자로 활동하기엔 이렇다 할 연고나 인맥이 없었다.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클래식계는 여전히 보수적인 편이었다. 여성에게는 활동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일이 허다했다. 그는 또다시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했고,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KBS교향악단, 대전시립교향악단, 부산시립교향악단, 창원시립교향악단, 서울필하모닉, 시흥교향악단 등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비롯해 초청 음악회, 오페라 등 수백 회의 지휘 활동을 하며 지휘자로서 명성을 쌓아나갔다. 특히 2012년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 지휘자상을 받으며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지휘자로 인정받았다.
김 감독을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 중심에는 음악가로서 자신과 같은 길을 걸은 아버지가 있었다. “세월을 되짚어보니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큰 바탕이 됐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음악적인 업적들도 업적이지만 무엇보다 당신의 인품을 존경했습니다. 아주 작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것을 그 사람의 큰 장점으로 봐주셨어요. 그래서 그 재능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일종의 마중물 역할이 되어주셨죠. 제가 대학 강단에서 제자를 많이 키워내면서도 아버지만큼 잘하지는 못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존경심이 들더라고요. 사실 음악이라는 게 혼자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동료, 파트너들과 협력해나가야 하고 제자와 후계자도 키워내는 것이 음악인의 사명입니다. 이를 위해 음악인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인 인품을 아버지가 지니셨다고 생각합니다.” 김 감독의 아버지는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지휘자 고(故) 김성득 씨다. 김 감독이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을 당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김 감독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유명한 성악가들의 반주를 해주곤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 어깨너머로 지휘법을 터득했다. 간혹 아버지가 늦는 날에는 아버지를 대신해 연주자들을 지휘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겪은 경험이 이후 음악 생활에 큰 힘이 됐다. “지휘자의 길이라는 게 일반 연주자의 그것과는 또 다른 독특한 부분이 있고, 나름의 고민거리와 어려움도 많은 편이에요. 그런데 지휘자로서의 운명을 내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 감독은 오늘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을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으로 돌린다. 그런 김 감독에게도 힘들었던 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여성 지휘자로서 겪어야 했던 차별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특히 공연 당일이 되면, 시각과 다투는 일(지휘)을 해야 하는 저는 굉장히 날카롭고 예민한 상태가 됩니다. 오로지 내가 지금 연주하고 있는 이 음악, 내가 연주해내야 하는 무대만 눈에 보이거든요. 공연 날 처음 만나는 무대 스태프가 ‘왜 여자 주제에 지휘를 해’라는 식의 말을 할 때도 있는데 그런 반응에 하나하나 신경 쓸 겨를조차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한때 공연계에서는 제가 그렇게 성격 안 좋다고 소문이 났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김봉미 베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총감독이 공연 전 리허설을 하고 있다.│김봉미
“양악과 국악 컬래버레이션 등 새 시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해명하고 포장하려 들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온 마음을 다하면 결국에는 진심이 통한다고 김 감독은 말한다. 처음엔 ‘여성 지휘자’라는 편견이 없을 수 없겠으나, 음악 작업을 하면서 그런 편견들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지휘가 재미있는 것은, 음악을 만들어갈수록 그만큼 거짓이 사라지게 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순수해질 수밖에 없는 자리이고 가식이나 포장이 불가능한, 다시 말해 진심이 금방 드러날 수밖에 없는 자리라는 겁니다.”
오로지 무대만 생각한다는 김 감독이 무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바로 듣는 음악, 보는 음악, 소통하는 음악. “음악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가 먼저겠지요. 그다음 제가 무대에 등장하면 ‘어! 여자 지휘자네’라는 반응이 나올 텐데, 그것을 음악적인 관심으로 바꿔야 하죠. 그런데 역으로 반응이 오롯이 음악적인 것들뿐이라 해도 그 무대에서 소통은 마찬가지로 힘들 거예요. 시각적인 것들과 관련되는 소통은 바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모습들입니다. 즉 지휘자가 지닌 카리스마, 단원들 연주에서 오는 소리의 깊이, 그리고 진심으로 연주에 빠져드는 연주자들의 모습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또 관객들이 서로를 보는 시선들도 있거든요. 나 말고 다른 관객들은 어떻게 무대에 빠져들고 있는지 하는 것들입니다. 결국 이 세 가지가 맞물리면서도, 어느 것 하나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음악의 질적 최대치를 끌어내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실제 김 감독은 공연에서 지휘뿐 아니라 해설도 곁들여 모든 관객이 무대에 집중할 수 있게 노력한다. 김 감독은 아울러 프로그램 기획 등에도 많은 고민을 해 관객과의 소통을 극대화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는 베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만의 특징이다. “보통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에서는 오케스트라 심포니가 먼저 들어가고 그다음 협연자와 메인 솔리스트가 차례로 들어간 뒤 서곡을 시작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에요. 하지만 저희 정기연주회는 창단 때부터 다른 곳에서 하지 않는 방식의 스테이지 연출을 해왔습니다.
예를 들면 국악과 양악을 컬래버레이션하기도 했고, 여러 소프라노를 한데 모아 클래식 공연의 형태를 띠면서도 관객들이 봤을 때는 드라마처럼 보이게 연출한 음악도 선보였습니다. 또 금관악기들을 모아서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시도한 것도 다른 데서는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2018년에는 클래식 명곡의 핵심 대목만 뽑아서 메들리로 공연해보았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꾸준히 우리 공연을 찾는 관객들은 ‘올해는 또 어떤 무대를 보여줄까’ 기대하고 오십니다. 매번 새로운 무대를 기획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점점 커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기분은 너무 좋습니다.”
▶김봉미 베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총감독이 공연 전 리허설을 하고 있다.│김봉미
“타협이 안 되는 건 굳이 안 바꿔”
지휘뿐 아니라 해설, 프로그램 기획까지 도맡는 김 감독의 궁극적인 꿈이 궁금해졌다. 그는 딱 잘라 ‘티켓 매진’이라고 말한다. “티켓 매진이라는 단어에는 정말 많은 뜻이 포함돼 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대중에게 많이 친숙해졌다지만 아직 문화로 자리 잡지는 못했잖아요. 제 바람은 오케스트라 공연이 대중의 메이저 문화로 자리 잡는 겁니다. 그래서 관객이 공연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티켓 매진으로 이어지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도록 매번 새롭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꼭 다시 찾고 싶은, 또 보고 싶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30분 만에 티켓 매진’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웃음)”
공연에 모든 걸 쏟아부어야 오히려 힘이 덜 든다고 말하는 김 감독은 ‘적당히 하라’는 주변의 말에는 절대 타협할 수가 없다. “주변에서는 (저에게) ‘앞으로 수없이 많은 공연을 할 텐데 공연마다 그렇게 ‘올인’하다 지휘자로서 수명이 짧아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냐’고 걱정들을 해요. ‘롱런하려면 적당히 어느 선을 유지해야 하지 않겠냐’는 조언이라고 볼 수도 있죠. 그렇게 고집스럽게 비치더라도 이 부분은 타협이 잘 안 되네요. 타협이 안 되는 건 굳이 안 바꾸려고요.” 김 감독이 ‘여성’ 지휘자라는 편견을 깨고 ‘최고의’ 지휘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을 향한 그만의 ‘고집’이 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강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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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