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노기 대장장이가 자신이 만든 호미를 들어 보이고 있다.
선풍기가 돌아간다. 여러 대가 한꺼번에 돈다. 선풍기에는 기름때가 잔뜩 묻어 있다. 기름때뿐 아니다. 쇳가루와 먼지도 함께 진득하게 묻었다. 오랜 세월의 흐름을 짐작하게 한다. 더운 기운이 ‘확확’ 난다. 풀무질 때문이다. 쇠를 달구는 가마의 열기를 올리는 풀무질은 간헐적으로 계속된다.
둔탁하게 쇠와 쇠가 부딪친다. ‘딱딱딱딱’. 쇠는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 담금질이다. 그리고 매질이다. 붉게 달궈진 쇳덩이는 담금질과 매질을 통해 점차 모습을 찾아간다. 대장장이의 이마에 굵은 땀이 흐른다. 이마뿐 아니다. 육체에 있는 모든 땀구멍에서는 달궈진 몸뚱이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수분을 열심히 내뿜는다. 달궈진 쇠를 고정하는 집게를 잡은 팔뚝은 오랜 노동의 숙련과 단련이 ‘뚝뚝’ 묻어난다. 강인함이 있고, 단호함이 있다.
비교적 넓은 대장간은 한낮의 폭염이 들어오길 주춤거릴 정도로 가마에서 내뿜는 열기가 강력하다. 그리 더운 대장간에서 묵묵히 일하는 대장장이는 두 명이다. 서로 이야기가 없다. 아무런 대화 없이 각자의 일을 한다. 오직 힘들게 돌아가는 오래된 선풍기의 회전 소리를 배경으로 쇠를 단단하게 만드는 담금질과 매질의 소리만 실내 공간을 채운다.
▶영주대장간의 작업장
눈짓·몸짓만으로도 손발 척척
두 대장장이가 쇠를 다룬 지 모두 50여 년이 지났다. 평생을 대장간에서 보낸 셈이다. 농경사회에서는 최고의 공장이었던 대장간은 컴퓨터가 지배하는 현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업장이다. 젊은 대장장이도 거의 없다. 이 영주대장간의 대장장이는 모두 60대 이상 어르신들이다. 오랜 연륜 탓인지 서로 간 ‘언어’라는 소통의 수단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그냥 눈짓만으로도, 약간의 몸짓만으로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하다.
영주대장간은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대장간이다. 무려 40여 가지 농기구를 생산한다. 낫·호미·쇠스랑·식칼·초랭이·도끼·거름대·작두 등 농업에 필요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기구는 모두 생산한다. 이 영주대장간은 국내에서보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유가 있다. 세계적인 전자상거래 사이트 ‘아마존’에서 팔리는 대박 상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명품 농기구를 만든다. ‘MADE IN KOREA’가 선명히 찍힌 농기구를 아마존에 올리는데 최고의 제품으로 꼽힌다. 그 농기구는 바로 호미다.
▶불에 달궈진 쇠붙이를 잡는 집게들
아마존 원예용품 ‘톱10’에 ‘영주대장간 호미(Youngju Daejanggan ho-mi)’라고 이름을 올렸다. 한 해 3000개 이상이 팔린다. 아마존뿐 아니다. 이베이 등 해외 쇼핑몰에서도 잘 팔린다. 한국에선 6000원 하는 호미 한 자루가 해외에선 20달러(2만 3000원)에 팔린다. 주문량을 생산량이 따라가지 못한다. 정원을 대부분 가꾸는 미국인들에게 호미는 ‘신기’했다.
‘ㄱ’자로 꺾인 원예 기구가 그들에겐 처음이다. 써보니 손목에 힘을 많이 주지 않아도 땅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다. 유튜브에서 호미를 쓰는 동영상이 유포되며 짧은 시간에 호미는 정원을 가꾸는 미국인들의 애호품이 됐다.
▶석노기 대장장이는 아마존에서 호미 주문이 쇄도하자 한국의 아주머니들이 아마존 밀림 속에서 주문
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판매 대행사에서 10년 전부터 납품
김을 매는 데 주로 쓰이는 호미는 한민족 고유의 연장이다. 서양에는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 호미는 서유구(1764∼1845)의 <임원경제십육지>에 동서(東鋤·동쪽 나라의 호미)라고 표현됐다. 부등변 삼각형인 날의 한쪽 모서리에 목을 이어 대고 거기에 자루를 박은 독특한 형태의 연장인 호미는 통일신라시대의 안압지 출토 유물에 이미 있었다. 고려시대의 호미는 오늘날의 호미와 똑같은 모양이었다. 호미를 땅에 콕 찍어 잡아당기면 흙밥이 잘 뒤집어진다. 어떤 농기구도 이렇게 효율적으로 인간의 노동력을 땅에 전달하지 못했다.
영주대장간의 주인은 석노기(65) 대장장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의 진학을 포기한 채 대장장이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50년 이상의 경력자다. 그러니 그가 만드는 호미에 ‘최고 장인 석노기’라는 도장을 새기는 데 부족함이 없다. 아마존 납품은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그의 농기구 판매를 대행하던 회사에서 아마존에 납품을 10여 년 전부터 시작했고, 2018년 호미를 다루는 동영상이 유포되며 대박 났다.
▶석노기 대장장이(오른쪽)가 동네 어르신과 오후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6월 28일 영주대장간에서 만난 석 씨의 표정은 밝았다. 평생 쇠만 두드렸는데 이제 세상이 알아주기 때문이다. 평생을 고집스럽게 살아온 자신에게 자부심이 생긴 것은 당연하다. 인터뷰를 하는데 딸이 휴대전화에서 동영상을 돌려 아버지에게 보여준다.
“아버지, 얼마 전에 찍어간 동영상이 뉴스에 나와요.” 뉴스는 한국말이 아니다. 영어다. <로이터>가 와서 취재한 영주대장간을 소개하는 뉴스다. 짧지 않은 길이의 뉴스에는 대장간 모습과 땀을 흘리며 담금질하는 석 씨의 모습, 그리고 호미를 설명하는 리포팅이 이어진다.
“초등학교 졸업 이듬해인 1968년부터 대장장이로 살았습니다. 그러니 50년이 넘네요. 하하.” 석 씨에게는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다. 고향이 논산인 석 씨는 가난한 농사꾼의 3남 1녀 중 막내.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때 육성회비를 내지 못하자, 담임선생님은 집에 가서 육성회비를 가져오라고 재촉했다. 매일매일 계속되는 재촉이 듣기 싫었다. 가난한 집안이라 부모님에게 달라고 말해도 소용없음을 어린 나이에도 충분히 알았다. 그래서 학교를 가지 않기 시작했다. 졸업식에도 안 갔다. “졸업 처리는 됐겠죠. 확인은 안 했어요.”
당연히 중학교 진학은 포기했다. 마침 가까운 인척이 대장간을 운영했다. 놀지 말고 와서 기술을 배우라고 했다. 먹고 재워주고 일당을 줬다. 돈을 모았다. 기술도 배웠다.
“어린 나이에 꿈을 가졌어요. 비록 남들처럼 공부를 계속하지 못하지만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돈을 벌어 내 대장간을 갖자고 다짐했어요. 남들처럼 장가도 가고, 내 집을 마련하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대장장이로는 1등이 되자고 결심했어요. 그것이 내 꿈이었지요.”
▶석노기 대장장이가 만든 호미에는 ‘최고 장인 석노기’ ‘MADE IN KOREA’가 새겨진다.
7번 가마 들락날락 담금질, 매질 수천 번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23세 때 영주에 대장간을 세웠다. 보증금 2만 원에 월세 3000원의 좁은 공간이었다. 좁지만 열심히 일했다. 5평으로 시작한 영주대장간은 매년 규모를 키워갔다. 세월이 흐르며 전국에 대장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농업이 기계화되고, 농업인구가 줄어들며 대장간에서 만든 철제 농기구의 수요가 감소한 탓이다. 대장간도 간판에 ‘대장간’이라는 이름을 피했다. ‘농기구 연구소’ 등의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대장간이라는 이름이 낙후하고 전근대적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석 씨는 대장간이라는 이름을 고수했다.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기술도 있었고, 대장장이로 자부심도 있었어요. 아이들 사춘기가 되면 아버지가 대장장이라는 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당부했어요. 나쁜 짓 하나 하지 않고, 떳떳하게 돈 벌었다고 이야기했어요.”
▶가마 불에 달궈지는 낫
그가 만드는 호미의 재료는 화물차에 주로 쓰이는 판스프링이다. 판스프링은 강철판 여러 개를 겹겹이 쌓아 차량 바닥에 부착해 충격을 흡수하는 쇳덩어리로 만든 장치다.
석 씨는 스프링 공장이나 재활용업체에서 가져다 쓴다. 스프링을 제작하고 남은 자투리 스프링이나 폐차 스프링을 재료로 쓰는 것이다. 재질 자체가 견고해 호미 재료로 제격이다. 먼저 판스프링을 호미 크기에 맞춰 사각형으로 자른다. 그리고 이 사각형 쇳덩어리를 가마 불에 넣었다가 빼내 두드리고, 다시 불에 넣었다가 빼내 두드린다. 불에는 7번 정도 들어갔다 나오고, 기계로 매질은 수천 번 한다. 호미 형태가 잡히면 겉면을 가공해 매끈하게 만든 뒤 나무 손잡이를 끼운다. 손바닥만 한 쇳덩어리가 호미 한 자루로 바뀌는 시간은 30분 정도다. 대장간에서 일하는 70대 동네 어르신 한두 명이 도와주면 하루 100여 자루를 만든다. 그래도 주문을 따라가지 못한다.
“영주대장간의 호미가 인기 있는 이유는 손으로 일일이 두드려가며 만들기 때문에 다른 호미보다 날이 정교하고 튼튼합니다”라고 석 씨는 설명한다. 싸구려 중국산과는 차이가 크게 난다는 것이다.
2008년 불에 탄 숭례문을 복원할 때 석 씨는 나무에 박는 대못을 제작했다. 전국의 각종 축제 때도 단골 초청 손님이다. 서울역사박물관과 남산골한옥마을에서도 대장간 시연을 했다. 2018년에는 경북 최고 장인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영주대장간에서 만들지 못하면 전국 어느 대장간에서도 만들지 못합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농기구지만 혼을 담아 만듭니다.” 자부심이 대단하다. 기름때와 땀으로 찌든 그의 티셔츠 등판에는 ‘서울올림픽 개막 3주년 기념’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28년 된 티셔츠다.
글·사진 이길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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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