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7월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내 경제인 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일본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는 조처를 하고, 아무런 근거 없이 대북제재와 연결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양국의 우호와 안보협력 관계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10일 청와대에서 삼성, 현대차, LG, SK, 롯데 등 5대 그룹을 포함한 자산 규모 10조 이상 대기업 30개사와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단체 4곳이 참석한 경제계 주요 인사 초청 간담회에서 일본 정부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에 관해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조처를 합리화하기 위해 한국 정부의 대북제재 실행 문제와 불화수소 유출, 사린가스 전용 등을 제기하고 끌어다 붙인 것을 반박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수출 제한 조치의 철회와 대응책 마련에 비상한 각오로 임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도 화답해주길 바란다. 더는 막다른 길로만 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전례 없는 비상 상황인 만큼 정부와 기업이 상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민관 비상대응체제를 갖춰야 한다”며 “주요 그룹 최고경영자와 경제부총리, 청와대 정책실장이 상시 소통체제를 구축하고, 장·차관급 범정부지원체제를 운영해 단기적 대책과 근본적 대책을 함께 세우고 협력해나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책도 내놓았다. 문 대통령은 △수입 다변화와 국내 생산 확대 지원 △인허가 등 행정절차 최소·신속화 △기술 개발, 공정 테스트 등에 필요한 예산의 추가경정예산 반영 등을 제시했다.
‘핵심 부품 소재 국산화’ 강조
또한 문 대통령이 이날 강조한 것 가운데 하나는 ‘핵심 부품 소재 국산화’였다. 문 대통령은 “이번 일을 우리 주력산업의 핵심 기술, 핵심 부품, 소재, 장비 국산화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특히 특정 국가 의존형 산업구조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부품·소재, 장비 산업의 육성과 국산화를 위해 관련 예산을 크게 늘리고 세제와 금융 등 가용 자원도 총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부품·소재 공동개발이나 공동구입을 비롯한 수요 기업 간 협력과 부품·소재를 국산화하는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더욱 확대해달라”고 대기업에 협력을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앞서 7월 8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일본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조처에 대해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양국 모두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국 기업들에 피해가 실질적으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협력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전례 없는 비상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경제계가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이라며 “상황의 진전에 따라서는 민관이 함께하는 비상대응체제 구축도 검토해야 한다. 청와대와 관련 부처 모두가 나서 상황 변화에 따른 해당 기업들의 애로를 직접 듣고 해결 방안을 함께 논의하며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당장 외교적 해법을 통한 맞대응에 나섰다. 외교부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 이사회에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긴급 의제로 상정했다고 7월 9일 밝혔다. 백지아 주 제네바 대표부 대사가 회원국을 상대로 일본의 규제 강화가 자유무역 원칙에 반한 부당한 조치라는 점을 집중 부각했다.
정부는 7월 23~24일 제네바에서 열리는 WTO 일반이사회에서도 일본 경제보복 조치의 부당성을 강조할 계획이다. 2~3개월에 한 번씩 열리는 일반이사회는 상품·무역이사회보다 높은 대사급이 참석하는 회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에서 업계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중장기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며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WTO 제소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공기관은 공정경제 실현의 마중물 책임”
문 대통령은 7월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정경제 성과 보고회의’에서 “공정한 경쟁이 보장돼야 혁신과 포용 속에서 경제활력이 살아나고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높아질 것”이라며 “공공기관의 공정경제 실현의 마중물로서 민간 기업의 불공정거래를 줄이도록 앞장서서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공공기관의 거래 조건은 민간 기업들 간의 거래에도 중요한 근거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며 “정부는 공공기관의 맞춤형 거래 관행 개선을 시범 적용을 거쳐 모든 공공기관으로 확대하고, 나아가 민간까지 확산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회의는 2018년 11월과 2019년 1월에 이은 세 번째 공정경제 전략회의로, 문재인정부 2년 동안의 공정경제 추진 성과를 점검하기 위해 마련됐다. 문 대통령은 “공공기관 예산은 국내총생산 대비 35∼40% 수준인 600조 원 이상으로, 수많은 협력 업체와 하도급 업체가 공공기관과 직간접적으로 거래관계를 맺고 있다”며 “특히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분야에서 여러 산업 생태계의 최상위에 있기 때문에 공정거래 확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른바 ‘룰 메이커’로 경제 행태, 거래 행태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공정거래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공공기관에 이익이 되도록, 공공기관과 임직원의 성과 평가에도 반영하도록 하겠다”며 “공공기관의 공정거래는 시장의 신뢰를 세우는 일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공정경제 법안들의 신속한 처리를 위해서도 당정이 적극 협력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강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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