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정상 판문점 회동 평화의 ‘새끼손가락’

2019.07.15 최신호 보기


l▶게티이미지뱅크

분명 내 것인데도 어쩌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들여다본 손가락이다. 까칠까칠한 굳은살과 일상에 쫓긴 듯 거무튀튀한 흔적만이 무심한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에, 대단한 것도 아니건만 툭하면 마주보며 걸었던 내 새끼손가락은 지금 여기에 있는데 내 단짝의 그 자그맣던 손가락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오랜만에 여유로운 산책길에서 만난 저녁노을을 바라보자니 ‘석양무한호(夕陽無限好) 지시근황혼(只是近黃昏)’(석양은 한없이 아름다운데, 어쩌나 황혼에 가까운 것을)이라는, 어느 당나라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어제까지도 잘 몰랐던 그 시간이 지금은 왜 이리도 소중하게만 느껴질까.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건만 크든 작든 약속을 할 때 왜 우리는 하필 새끼손가락을 걸었을까?

한의학에서 말하는 인체의 12경락 중 심장 경락이 겨드랑이 극천혈에서 새끼손가락의 소충혈까지 이어지는데,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심장을 걸고 한 약속인 만큼 반드시 지켜지리라는 서로의 순수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불가피한 이유와 사연도 물론 있을 수 있겠지만 가능한 한 약속이 지켜지는 세상이 어쩌면 더 아름답고 바람직한 세상일 것이다.

‘사랑이 물거품 되는/ 가벼운 세상이라 말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새끼손가락 걸어/ 사랑의 약속을 하는/ 연인들이 있을 것이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다’라는 정연복 시인의 글이 가슴에 와닿는 시간에, 참으로 놀랄 만한 약속의 광경이 판문점에서 펼쳐졌다. 온 세상의 시선을 한데 모은 판문점에서 3국 정상의 만남은 그토록 바라던 우리 모두의 환희이자 바로 이런 것이 평화라는 그동안의 약속이었는지도 모른다.
재선을 염두에 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이미지 쇄신을 위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그리고 대통령이 되고부터 초지일관 남북 화해와 평화를 강조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은 그저 매스컴을 통해서만 보고 들었을 뿐 그 깊은 속내까지는 다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66년 만의 놀라운 변화요,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대한민국을 위한 인내의 결과이자, 가장 가깝게만 느껴지는 자유와 평화에 대한 확실한 믿음의 약속이라는 것이다.

판문점의 역사적인 순간에 대한 평가와 관점이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방증일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축제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축복이라는 평화를 위해 3국 정상이 분단의 현장에서 걸었던 그 믿음과 확신의 새끼손가락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미국이 있고,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북한이 있듯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있기 때문이다.
핵도 없고 금강산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평화가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우리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세 분이 걸었던 새끼손가락의 믿음과 확신이라는 평화의 약속은 그래서 오늘보다 내일이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온 세계 온 세상의 뜨거운 시선들이 작지만 강한 그 새끼손가락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곽필순 경기 안성시 비봉로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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